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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아들과 엄마의 세상만나기
'좋은 지원?'에 달린 물음표를 사랑한다
-'지켜보기'에 대한 당연한 지원을 말하다.
by
최명진
May 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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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다 보니 세상의 모든 것은 장애가 아니면 비장애이다.
내가 당연히 가능한 것들이 아들에겐 당연히 안 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꼈고
도대체 무엇을 어찌하면 될까 고민에 고민을 하는 시간들이 연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장애계가 지금까지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겠지만 그 중심엔 장애인 당사자가 있음을 말하고 싶다.
자신들의 부당함을, 불편함을, 요구를 힘써 외쳤기 때문에 가능한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어떤가?
장애와 비장애로 말을 하면서 입장 바꿔 불편함을 서로 물으며 상대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돌아본다면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결정에 자신의 의지와
욕구는 뒤로 한 채 그냥 졸랑졸랑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 의해 살아야 하는가?
만약 그 장애인이 당신이라면 당신은 어떨까?
그 삶이 충분히 행복할까? 그 삶이 설렘과 두려움이 희석되어 있다 하여도
내 삶이기에 기꺼이 감당하는 우리와 그들의 삶은 자체가 달라야 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란 것이다.
그들도 발달장애인이기 전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설에서의 신체장애인들의 탈시설은 일반인도 어느 정도 수용이 가능하다.
그들은 신체에 장애가 있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발달장애인과
가장 다른 부분일 것이다. 그에 반해 발달장애인은 신체는 건강해 보이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들의 탈시설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립생활이란 기존의 생각의 틀로서는 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만 돌아보면 우리의 삶 역시도 다른 이들과 보이지 않는 관계로 이어져
살아지는 것을 생각한다면 발달장애인의 독립생활에 물음표를 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편견의 가장 굴곡진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좋은 지원?]이란 책을 만난 것은 어쩜 내게 있어선 시대의 흐름에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다만 아쉽고 미안한 것은 이미 일본에선 충분히 고민하고 고려되는 것들이 우리에겐 너무도 신선하고 대단해 보인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발달장애인의 자조모임을 지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교육을 통해 만나게 된 책이다. 특히 너무도 당당하게 아무도 모르는 비법을 알려주듯 확고하고 당당하게
좋은 지원에 대해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서술하는 방식이 아닌
지금까지 축적된 경험을 담담하게 서술함으로써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답을
구하도록 한 물음표가 내겐 최고의 감동이었다.
세상에 덧셈 뺄셈처럼 단 하나만의 답만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렇게 고민하지 않을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어떻게 정해진 답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모범답안처럼 이렇게 하면 좋다는 방향은 있을 수 있겠으나 백양 백색의
사람들에게 방향이 적용되는 데는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양성'에 대해서 일정한 몇 개의 틀에 맞춰 적용하는 것은 가장
비인권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대신 이 책에서 말하듯 '진정 좋은 지원이란 무엇일까?'를 화두로 던져두고
경험에 의한 상황들을 서술하면서 무엇이 가장 좋을지에 대해서 스스로 방법을 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인권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자립생활'이라고 말할 때는 세상이 '중증'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당연히 포함된다.
'지원'이 있다면 누구라도 지역에서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다. 불가능한 이유는
지원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하지는 않다...
제도가 생기게 된 계기나 바람직한 존재방식에 대해 되묻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자립생활운동, 즉 당사자 운동은 지원자와 전문가의 대행, 대변에 대해 비판하면서
지원을 주체적으로 조정하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현재 여전히 '경제적 자립' '신변적 자립'을 중시하는 제도 설계와 사상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 '자기 결정. 자기 선택'을
말하지만, 그 안에 숨겨진 귀중한 의미를 어떻게 찾아나갈 것인가.
지원은 '서비스'가 되고, 장애인. 가족은 '이용자'가 되는 한편으로,
양쪽이 분리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적장애인에게는 집단 생활인 그룹홈이 기본이고, 개별 지원에 의한 자립생활을
지탱하는 제도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개호. 활동보조 안에서 '지켜보기'라는 부분을
좀 더 중시해도 좋을 것 같다.
-[좋은 지원?]의 서문 중에서....
장애인이 자립생활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은 '가능'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장애인들 중에서도 '가능한 사람'과 '불가능한 사람'으로 구별을
하게 된다. 얼마 정도 가능할 것인가를 묻기 전에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발달장애인의 '돌발행동'이란 것은 지극히 비장애 입장에서 본 행동이고,
장애 당사자 입장에선 '자신의 의지 표현'이 되는 것처럼
지원이라는 이름에 당사자의 의사와 욕구, 생활이 우선되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지원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모르기 때문에' '의사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를 존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의사/의지"에 대해서는, 비장애인이 평소에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다. '자립생활'의 조건은 우선 '생활'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가두기'의 기본은 '감시'이며, '지켜보기'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지켜보기'란 아래와 같이 당사자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위험한 행위를
방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켜보기의 필요성
-당사자가 좋아하는 일을 하도록 하는 지원(좋아하는 일을 절제하게끔 하는 지원도 포함)
-최소한의 일상생활 지원(식사, 청소, 세탁, 목욕, 쓰레기 배출 등)
-의사소통(친한 사람의 입장에서 함께 이야기하는 일)
-혼란과 초조함을 달래거나 해소하기 위한 지원
-위험한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지원
가두기가 아닌 지켜보기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당사자가 필요한 신체 개호나 가사 원조 등이 생길 경우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대기
시간으로서 지켜보기의 필요성에 대해서 현행의 법에서는 정의가 자리 잡혀 있지
않기 때문에 많은 자치단체가 필요한 시간에 대해 좀처럼 많은 시간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다....
-[좋은지원?] 중에서...
우리의 활동보조 현실은 어떤까.
부모나 활동보조인이나 당사자의 입장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지원하고 있는가.
당사자의 자립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일상생활 지원과 지켜보기가 필요하지만
당면한 현실에서 충분한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부모나 활동보조인은
게으르고 독하고 나쁜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지켜보기에 대한 충분한 공감과 그 시간의 필요성이 보편적으로 지원 안에 들어간다면
충분히 좋은 지원에 의한 당사자의 자립생활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들도 생활인이기에 그들의 삶에 무엇보다 주도적인 사람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역할은 어디까지인가?
지체장애인 뿐 아니라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과 자조모임이 활성화 되고 있는 이즈음에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져진 물음표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함께 살아가는 나의 아들을 포함한 발달장애인에게 진정 좋은지원이란 무엇인지
충분히 지켜보면서 소통하고 함께할 수 있는 날이길 바래본다.
정해진 틀로부터 탈출해야만 또 다른 길이 보이지 않을까.
그 길을 위해 오늘도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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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자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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