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렌즈에 담은 심상
그대가 오시었네요.
-접시꽃 당신
by
최명진
Jun 6. 2016
아래로
특별한 인연이 아니었는데...
내 눈에 뜨였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인연이 되어
그렇게 가슴으로 스미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사람이든, 책이든, 꽃이든, 버려진 물건이든...
그래서 옷깃을 스치는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스레 느끼곤 한다.
차를 타고 스치듯 달리다 만나는 아쉬운 인연도 있고
때론 감사하게도 차를 멈춰 그들을 담을 수도 있는 귀한 인연도 있다.
이맘때면 얼굴을 보여줄 이들을 떠올리곤 한다.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인연들이 낚시처럼 줄줄이 엮여나올 때
나도 모르게 그들을 향해 가곤 했었는데...
때론 그 인연이 다 된 것처럼 좀처럼 가기 어려워진 곳도 있고
새로운 인연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한다.
언제 어느 곳에서 인연을 만들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기에 무심히 내딛는 행보조차도 귀한 인연의 시작이다.
주민센터에 갔다가 어느 집 담장에 곱게 피어오른 접시꽃을 발견,
그리고 사무실 가는 길에 만나는 주차장에서 소박하지만 정갈하게 꽃을 피운
접시꽃을 만났다.
그들을 담자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는데도 눈앞에 놓고도 며칠을 보낸 뒤
겨우 기울어져가는 저녁에 몇 컷을 담을 수 있었다.
허물어져가는 담장을 배경으로 꼿꼿하게 꽃대를 올려 핀 접시꽃.
석양의 배경이 또한 운치 있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상에 인연 아닌 인연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럼에도
뇌리에 저장되는 인연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장애학생을 위한 자기결정 능력 증진을 위한 [ 피플 퍼스트]에서
대구로 체험학습을 간 아들을 마중하러 대전역으로 향하는 길...
천변에 수줍게 빗물을 머금은 접시꽃을 만났다.
급작스런 더위에 색조차 바랜 꽃들이 안타까웠는데
조금이라도 목을 축일 수 있는 꽃들을 보니 반갑고 싱그러웠다.
하상에 주차를 했으니 아들과 잠시 산책을 해보리라 마음을 먹고
그 자리를 떠났다.
꽃을 유난히 좋아했던(?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다...) 아들에게
꽃 이름을 물으니 '접시꽃'이라고 답을 한다.
아들에게 데이트를 요청하고 그렇게 천변을 따라 그들을 담았다.
하천으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드는 동그라미 파동....
총총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그 파동이 아름다워 다시 멈추길 반복.
아들도 이런 내게 익숙한지 내가 말을 하는 대로 멈추어 그들을 바라본다.
든든한 아들이 받쳐주는 우산 아래에서 난 나름의 여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인연이 주는 소중함까지...
이쯤이면 떠오르는 당연한 시 한 편.
도종환의 접시꽃 당신....
드디어... 그대가 오시었네요....
접시꽃 당신
-도 종환-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덩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 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 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 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 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 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 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이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 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영원히 있습니다.
keyword
접시꽃당신
인연
접시꽃
3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최명진
취미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포토그래퍼
해바라기를 사랑하는 발달장애인 아들을 둔 엄마의 세상 만나기
팔로워
1,062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하나 맛 봤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