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순간, 긴 여운

-열대야가 남긴 것들

by 최명진


제법 밤이 깊은 이 시간,

현재 온도 31도~~!!!

그나마 지난 며칠에 비해서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바람이 스며 조금 낫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현실의 온도는 30도를 상회하고 있다.

그래도 몸이 피곤하면 어찌어찌하면 잠이 들지만

초저녁 피로에 찌들에 선잠을 잠시 자고 난 후의 후유증과

날이 밝으면 맞아야 할 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벌써 이 시간(새벽 2시가 다가오고 있다).



지난 휴일을 돌이켜보니 누구의 말처럼 오히려 사무실에 있는 것이

더 휴식이었다.

에어컨이 있는 사람은 전기요금폭탄에 오금이 저려오고

에어컨이 없는 사람은 온 집안을 잠식한 열대야에 옴짝달싹 못하고

열대야의 여름밤을 맞으니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런 열대야가 준 새로운 풍속도가 생겼다.

어쨌거나 살아야 하기에 선택한 새로운 풍속들...

일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생각해보니 나름 의미가 있다.



그 첫 번째가 영화 관람이었다.

원래는 가족과 함께 조조영화를 즐겨봤는데

열대야로 인해 조조가 아닌 밤 영화를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운데, 너무 더운데 집에서 무언가를 하기엔 한계를 느낄 때

선택한 것이 바로 영화 관람이었다.

적당히 두 시간여를 시원하게 지낼 수 있으며

팝콘과 음료로 먹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함께 보고 난 후의 여흥도 즐길 수 있으니

열대야로 찌든 한여름밤을 보낼 수 있는 좋은 팁이 아닌가 한다.



두 번째로 가족 드라이브다.

저녁을 먹고, 혹은 늦은 저녁을 밖에서 먹고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시원함을 선물하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는 것이다.

집에는 없는 에어컨이 차에는 있고, 공간 자체도 좁으니

시원함을 즐기는데 나름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도심의 야경을 즐기는 재미도 나름 쏠쏠하다.

특히 도심 한복판에서의 느낌과는 판이한 외곽의 밤공기와의 조우는

나름 여유로운 즐거움을 주곤 한다.



세 번째로는 시내행이다.

집에서 가까운 구도심으로 나가서 데이트를 즐기는 것.

굳이 비싼 곳을 선택할 이유는 없다.

시원하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저렴한 음식을 찾아

집에서 먹을 수 없는 맛난 음식도 먹고 더위도 식히는 일석이조의 시간.

어쩌다 보니 큰 아들은 돈가스를, 작은 아들은 치즈 오븐 스파게티를

선호하여 먹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 부부는 상황에 따라서 선택을 한다.ㅎㅎㅎ

작은 아들은 복지관이며 외부체험을 통해서 오히려 다양한 음식을 먹지만

학교라는 족쇄가 강하게 채워진 큰아들은 오히려 기회가 적다.

이렇게나마 함께하는 것이 또한 의미로운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어지는 순간의 꿀팁~~!!

시내에 가면 저렴하게 음료를 마실 수 있는 곳들이 제법 된다.

그중의 한 곳을 선택해 여름철에 먹으면 나름 더위를 삭히는

것들을 주문하여 함께 마시는 것이다.

시내에서의 짧은 데이트도 공부에 찌든 고3 아들에게는

용할 휴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의 모습도 구경하고,

아이쇼핑을 하면서 수다도 떨 수 있음도 좋다.




으능정이에 가면 스카이로드가 있다.

구도심의 한가운데서 나름 휘영 찬란한 영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시원한 영상을 볼 수도 있고 가끔은 사랑의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

마침 음료를 마시고 나오는데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문자가 뜨길래

나는 얼른 사진과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동동동 떠가는 나의 문자와 사진~~!!

"사랑하는 울 아들~!!!"

때로는 철없는 사춘기 소녀처럼 구는 내 행동이 가족에겐 웃음을 선사하니

나는 그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세 남자가 동시에 확인하고 웃는다. 싫지 않은 표정이다. ㅋㅋㅋ

그것으로 되었다.





지난 광복절에는 더위를 참다못해 밤 11시에 결국 밖으로 나갔다.

빙수를 사주겠다는 남편의 의지는 결연했지만(?)

그 시간이면 문을 연 곳은 그다지 많지 않은 시간이었다.

드라이브 겸 간다면 '옛터'가 좋지만 엉겁결에 나온 상황에선 좀 멀었다.

어찌할까 하다가 눈에 띈 곳이 롯데리아였다.

그곳에도 여름을 견딜 수 있는 메뉴들은 있을 것이고

영업 마감 시간도 조금은 자유로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두 아들은 팥빙수, 치즈 빙수를 주문했고

난 공간의 시원함을 빌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참새네 방앗간에 왔으니 기본은 먹어야 한다는 두 아들,

햄버거와 포테이토까지 맛나게 먹는 아들들.

나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대야로 잠조차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날들의 연속.

그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여유와 웃음은 어떻게 만들까?

그냥 매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꺼리를 찾으면 된다.

기본이 되지 않아 어려우면 차선을 선택하고,

차선이 어려우면 삼선을 선택하면 된다.

선택은 딱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선택에서 조금은

여유롭게 즐길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영화관 산책, 시내 데이트, 드라이브, 연극 관람...

누군가는 도대체 언제 쉬느냐고 하는데 이것이 내게 있어서 쉼이다.





내겐 늘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들이 있다.

내게 주어진 일이 그것이고, 장애가 있는 아들, 그리고 가족이 또한 그렇다.

장애로 인한 제한적인 경험과 외출이 늘 마음에 걸리기에

가능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니 의외로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가능한 것들이 있다. 그것을 찾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에 따른 어려움은(주변의 시선) 감수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초대권으로 함께 한 남편과의 오붓한 연극 관람도 좋았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어주는 일상...

짧은 순간, 긴 여운이 주는 삶의 이유.

주어진 환경에서 충분히 즐기고 다음을 기약하는 여유로

그렇게 살고 싶다.


다음에 꼭 보고 싶은 연극 [염쟁이 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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