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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은 심상
고향의 아침
-내 마음에 평온함을 선물해준 아침 풍경
by
최명진
Sep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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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은 수다에 피로가 몰려도
차마 포기하지 못하는 내 호기심.
한가위 보름달을 뿌옇게 뒤덮었던 흐린 하늘이
아침으로 이어져 여전히 희뿌연 아침...
간밤에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려
슬리퍼 질질 끌고 손으로 눈곱 떼어내며 대문 밖으로 나선다.
사람이 아쉬운 털북숭이 강아지가 혼신을 다해
꼬리를 쳐도 네게 머물 수만은 없음을 이해해 다오.
어둠으로 채 제 색을 내지 못했던 풍경들이 하나 둘
초점을 잃은 눈으로 알알이 박히는 아침.
아버지도 내 발걸음에 함께 해주신다.
가까이 있는 논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내가 그토록 담고팠던 노오란 벼이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 풋내기 대학 때의 비밀을 올곧게 지켜주고 있는
전봇대도 멀리서 나를 향해 인사를 한다.
이슬 함빡 머금은 벼이삭이 햇살에 달궈진 만큼 무게를 더해
겸손한 자세로 맞아주는 싱그러운 아침.
고 옆으로 빼꼼 얼굴을 내미는 닭의장풀... 여전히 귀엽다.
부모님의 알곡으로서가 아닌 비둘기의 알곡으로 수난을 당해야 했던
율무도 고개를 숙인 채 나를 맞아주었다.
비둘기 떼의 습격에 올해는 거둘 것이 없을 것 같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아리게 스며들었다.
늘 함께 있어서 담아주지 않았던 풍경들.
아침을 은은한 들깨 향으로 채워준 들깨꽃이 반긴다.
옹기종기 모인 작은 꽃들 사이로 그보다 더 앙증맞게 내려앉은 이슬.
혹여 꽃잎 떨어질까 걱정되어 살며시 담아본다.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좋아하는 내겐 참으로 유용한 이가 아니던가.
잎은 삼겹살을 먹는 우리에게 헌신하고,
알곡은 향기롭고 구수한 맛을 더해주니
들깨 같은 인생을 살아봄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옆으로 이미 많은 부분을 내어준 청고추, 홍고추, 늦은 고추꽃이
자신들도 있다고 눈길을 보낸다.
작년에 보령에는 가뭄이 심해 제한급수까지 했었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덜 하지만 여전히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청천호도 갈증에 바닥을 보일 듯 말듯한데...
그런 영향인가.
올 추석엔 햇밤을 올리지 못했다고 한다.
올밤이 해마다 성글지만 굵은 열매를 선사하곤 했는데
올해는 가뭄때문에 밤송이가 나무에서 통째로 말라버려
단 한톨의 밤도 수확하지 못했다고 하니 가뭄의 정도를 알겠다.
그나마 늦밤은 밤송이가 영글어가고 있으니 수확이 가능하리라.
아버지 화단의 주인공은 언제나 장미다.
사계절 어여쁘게 피는 장미.
올해도 늦은 꽃이 어여쁘게 피었다.
처음 송이를 올릴 때보다는 그 영양이나 고운 정도가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살포시 앉은
송이는 곱기만 하다.
아버지 하면 떠올리는 흑장미는 여전히 최고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같은 장미인데도 유난히 흑장미가 주는 고고함은 내 눈길을 당기곤 한다.
어렸을 땐 차마 아버지의 꽃밭에서 뿌리를 내리기 어려웠던 채송화.
그들의 설운 사연을 알고 있어서인지
화단 끝에서 그래도 악착같이 자리를 잡고 피어오른 채송화를 보니
기특하기도 하고 어여뻐서 다시 담는다.
조금만 힘을 가해도 허물어질듯한 담장 너머로 들어온 대추나무가지...
예전의 대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대추...
튼실해서 좋기는 한데 이상하게도 정이 가지 않는다.
내게 있어서 잘지만 다닥다닥했던 그 대추가 첫정이 들어서인지 좋다.
예전의 호박은 못생긴 둥근 호박이었는데 이제는 엄마도
미끈하고 어여쁜 호박을 먹는구나...
사람이 그리운지 누군가가 오기만 하면 발아래 차이도록
들러붙어 과하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그 앞으로 잘 여문 고추가 해를 기다리며 누워있다.
늘 보아도 정겨운 내 시골 친정집 풍경이다.
습관처럼 집 주변을 돌며 풍경을 담는 딸을
너무도 당연한 듯 바라보는 아버지....
난 그 아버지의 딸이다.
감성쟁이 딸...!!!
부모님이 계시기에 가능한 시골의 사랑스러운 풍경.
어찌 아니 담겠는가...
이 역시도 내 사랑의 표현방식인 것을.
부모님의 건강과 행복을 영양제로 선물하고 싶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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