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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미역국의 노예가 되다
-아들의 생일을 맞이하여...
by
최명진
Aug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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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어섰으니 이미 아들의 생일날이 되었다.
혹여 늦게 일어날까 봐 걱정이 되어 미역국을 끓였다.
야간자습을 하는 아들의 시간에 맞춰 아들이 좋아하는 잡채도 했다.
늦은 밤이지만 자신을 위해 만든 잡채를 맛나게 먹어주는 아들이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장애가 있는 동생 때문에 '도심의 원시인'처럼
성장해온 아들이다. 가슴이 아리다...!!!
올해는 그나마 아들의 미역국을 끓이고 생일을 기억할 만큼
여유가 생긴 것일까?
음력으로 생일을 보내는 아들의 생일은 늘 내가 장애학생을 위한
계절학교로 분주한 시기에 돌아오곤 했다. 그것도 가장 예민한
1박 2일의 캠프 기간 즈음에.
혹여나 있을 안전문제 때문에 그땐 신경이 가장 예민할 대로 예민한 시기이다.
다른 일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때이다.
그 분주함이 내 일생일대의 커다란 오점을 남긴 것은 몇 해 전이었다.
아들의 생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억을 했던 것 같다.
문제는 정작 기억해야 할 아들의 생일 전날에 까마득히 잊은 거였다.
늦게 퇴근해왔고 늦은 밤에야 아들의 생일을 기억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땐 어느 곳에 가서도 소고기를 살 수가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생일에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주는 것은 내 철칙이었는데
어쩌다 이런 난관을 만났단 말인가.
우여곡절 끝에 소고기가 아닌 냉동실에 있던 바지락으로 아쉬운 대로
생일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아들은 많이 화가 나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엄마가 정신없어
자신의 생일을 잊은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을 드러낸 정도였다.
난 바지락 미역국으로 주어진 숙제를 겨우 땜질하고 바쁘게 준비하고
계절학교 캠프에 갔었다. 당연히 그날 밤도 아들을 위해 케이크를 사주지
못했다. 남아있는 아빠가 그 자리를 대신해주긴 했지만.
문제의 발단은 몇 달 후 있는 연년생 동생의 생일날에 일어났다.
생일 전날 생일을 겨우 기억하고 난 가까운 정육점에 가서 미역국을
끓일 목적으로 소고기 한 근을 산 것이다. 무얼 사왔느냐는 큰아들의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동생의 생일이어서 소고기를 샀다고 하자 아들의 얼굴은
서운함으로 일그러졌다. 아들의 얼굴을 보고 난 겨우 몇 달 전 상황을 떠올렸다.
자신의 생일엔 깜빡해서 바지락 미역국을 끓여주더니 동생의 생일엔
그 밤에 가서 소고기를 사온 엄마에 대한 나름의 차이를 느꼈나 보다.
순간 나도 미안한 마음은 들었지만 거기까지였다.
다음해 아들의 생일엔 정신을 바짝 차려서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줬다.
녀석은 유난히 소고기 미역국을 좋아할뿐더러 내 상식선에서 소고기로
국을 끓인 것이 최고의 국이라는 경험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아들은 어느 순간 장난처럼 내게 그런다.
"엄마, 전 바지락 미역국이 정말 싫어요. 소고기 미역국이 정말 좋아요.
그런데 엄마는 일에 바빠 제게 바지락 미역국을 끓여주셨지요... 기억할게요."
이런 미안할 데가...
그 이후로 나는 소고기 미역국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아들도 커다란 악의를 담고 이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받아들이는 내가 마음으로 큰 아픔을 느낄 뿐이다.
한 살 어린 동생의 장애로 인해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양보한 아들의 생일을
잊은 한심한 엄마~~!!
투덜거리는 말투지만 서운함을 표현해주는 아들이 고맙고 미안하기만 하다.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말을 가슴에 담아두고 두고두고 곱씹는 것처럼
울 아들도 바지락 미역국에 대해 나의 미안함을 자극하고 싶을 때 이용할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충분히 내가 미안하니까.
아들의 미역국을 끓여놨을 뿐인데 마음이 가뿐하다.
마치 숙제를 끝내 놓은 아이처럼 두려움이 사라졌다고나 할까.
동생 때문에 많은 유년시절의 추억을 혼자 간직한 나의 소중한 아들...
나는 야간자습을 마치고 돌아온 아들에게 수고했다며 허그 하는 것으로
내 사랑을 전할 뿐이다. 그래도 그것으로 마음이 통하는 우리 모자.
미역국을 끓이는 엄마를 보며 아들이 미소를 짓는다.
나도 아들을 향해 미소 짓는다.
우리 둘의 미소는 염화미소, 내 마음속엔 미안함에 대한 트라우마...
사랑하는 나의 아들~~!
어느덧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구나.
주어진 환경을 무던히 잘 견디고 함께해준 나의 베스트 프렌드.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
엄마는 오늘도 바보처럼 울 아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으로 마무리해.
어떤 상황이든 울 아들이 만나는 환경에서 웃음과 사랑이 가득 묻어나길...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너의 모습에
엄마 아빠는 최고의 사랑과 믿음을 보낸다.
아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자식 사랑을 돌아보게 하는 친정아버지의 으름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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