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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EGG 안티에그 May 17. 2022

여성복과 남성복은
구분될 수 있는가

젠더리스 패션이 일군
사회적 규범의 전복


Edited by 희량


패션은 언제나 젠더와 관계가 깊었다. 남성복(Menswear)과 여성복(Womenswear)은 구분해놓았으면서, 그 구분을 허무는 젠더리스(Genderless),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 디자인은 예전부터 꾸준히 등장해왔다. 왜 패션은 젠더 구분 혹은 비구분에 집착할까? 왜 특히 패션에서 젠더 구분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질까? 그리고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패션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젠더리스 패션,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Fendi Spirng 2022 Menswear)



패션에서 만나는 개인과 사회


이미지 출처: Unsplash


패션은 개인적이다. '입는다'는 개인의 행위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패션의 기능적인 측면 때문에 패션을 예술로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덕분에 보편적인 접근성과 개인적인 표현을 보장할 수 있다. 패션으로 누구나 개인적인 이야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패션에는 개인의 경험, 취향, 가치관, 사회적 배경, 계층, 소속집단 등이 나타나며, 이를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고 구성할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낼 때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패션은 사회문화적 배경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남성복과 여성복의 구분이나, 서구적 복식구조가 보편화되어 있다는 점 등 현대의 복식에는 분명한 규칙이 존재한다. 즉, 개인의 표현은 사회적 규범 내부에서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아의 표현과 사회적 규범이 일치하거나 충돌하는 등 자아와 세상에 대한 관계를 포착할 수 있다.


"그들의 자기표현 방법은 이상하리만큼 (...) 타자들의 요구와 일치한다."

_앨리슨 밴크로프트, 『패션과 정신분석학』


이번 글에서 필자는 패션에서 표현되는 사회적 규범 중 젠더(gender), 사회적 성별에 주목하려 한다. 사회는 긴 시간 동안 여성과 남성을 구분해왔고, 그에 따른 의복 규칙 또한 명확히 구분했다. 패션에는 이분법적인 젠더관이 깊이 반영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 성에 부여된 고정적인 역할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젠더에 대한 사회의 주문은 분명했고, 패션은 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선명한 사회적 규범 안에서는 개인의 정체성이 충돌하는 지점이 있다. 여기서 패션이 어떻게 활용되고, 무엇을 표현하는지 살펴보려 한다.



패션과 젠더의 깊은 관계


이미지 출처: Unsplash


젠더 규범과 개인의 충돌을 살펴보기에 앞서, 패션과 젠더의 관계에 대한 궁금증을 짚고 가려한다. 패션은 왜 젠더를 명확히 구분하는 데 사용되어 왔을까? 왜 여성복과 남성복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수용해왔을까? 왜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입어 왔던 걸까?


이와 관련해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수행성(gender performativity)'을 이야기한다. 젠더는 본질적으로 규정된 정체성이 있다기보다 젠더를 상징 및 전달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이 있어야 완전히 구현된다는 것이다. 즉,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성과 여성성은 단단하게 결속된 개념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며, 행위에 의해 연결되는 관계다. 여성으로 태어났다고 여성성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버틀러는 젠더는 가변적인 개념이며, 고정된 주체 없이 수행을 통해 구현됨을 강조했다.


한편, 패션은 사회적 관습, 계층, 소속 집단 등 개인의 정체성을 '수행'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사회적 규범에 대한 수용을 표현하고,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다. 단순한 의복양식에 그치지 않고 스타일, 행동양식 등 총체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그만큼 패션은 젠더 수행을 가장 수월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패션과 젠더는 오래 전부터 깊이 결착되어 온 관계다.



크로스드레싱


크로스드레싱, 이미지 출처: 영화 <대니쉬걸>


그러나, 패션은 사회적 규범에 저항하는 대표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소수자가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표현하며 규범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인 것이다. 그 저항의 표현이 바로 크로스드레싱(Cross-dressing, 옷 바꿔입기)이다. 크로스드레싱은 생물학적 성별의 반대 성별의 것으로 규정된 복장을 입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생물학적 여성이 남성복을 입고, 생물학적 남성이 여성복을 입는 것이다. 크로스드레싱은 게이와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 집단이 그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활용해온 방식이다. 이분법적인 성 구분과 이성애라는 젠더 규범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크로스드레싱은 규범에 불일치하는 의복 양식을 보여주며, 젠더 규범이 아주 약한 기반 위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점을 폭로한다. 크로스드레싱이 지적하는 오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도전한다. 크로스드레싱이 주는 충격은 여성복과 남성복의 구분,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분명하기 때문에 생긴다. 사회가 젠더에 부여한 복장, 행동양식, 스타일이 고정적으로 구분되어왔기 때문에 그것을 비틀고 꼬았을 때의 아이러니가 특히 눈에 띄는 것이다. 이 충격은 우리가 성과 젠더를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 기준에 맞춰 구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그리고 기준에 벗어난 복장을 통해 젠더 구분을 아주 불명확한 개념으로 만들어버린다.


둘째,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젠더 사이의 관계는 모호하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여성과 여성성, 생물학적 남성과 남성성 사이의 관계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성이 남성성을 드러내는 복장을 입고, 남성이 여성성을 드러내는 복장을 입는 순간, 젠더 규범이 정의하는 생물학적 성과 젠더의 관계가 어긋나버린다. 주디스 버틀러의 주장을 떠올려보자.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젠더 특성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닌, 반복적인 수행에 의해서 나타난다. 크로스드레싱은 규범과 일치하는 젠더 수행을 거부해버리고, 성과 젠더 사이의 얄팍한 관계를 지적한다.



드랙


퍼포먼스 중인 드랙킹 아티스트 '아장맨', 이미지 출처: 이룸


나아가 드랙(Drag)이라는 행위예술이 있다. 크로스드레싱에서 퍼포먼스까지 더해진 연극적인 개념이다. 복장을 과장하기도 하고, 젠더 수행을 모방하고 연기하며 크로스드레싱이 전할 수 있는 충격을 더욱 확대한다. 젠더 구분이 분명한 옷을 입고, 젠더 역할을 수행하는 연극을 통해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젠더, 젠더 수행으로 이어지는 젠더 형성과정의 단단한 결속을 해체한다.


드랙은 단순히 반대의 성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꼭 드랙킹이 여성을 연기하는 남성이고, 드랙퀸이 남성을 연기하는 여성으로 구분되는 것도 아니다. 성소수자만이 드랙 아티스트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꾸민 남성이 있는가 하면, 북실한 다리털과 잘록한 허리가 공존하는 상태로 여성복을 입기도 한다. 젠더와 관련해서 가장 재미있는 현상이 아닌가. 사회가 젠더를 기준으로 구분한 외적인 요소들이 있는데, 그걸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것이다.


드랙은 크로스드레싱에 퍼포먼스를 더해 더욱 입체적인 방식으로 젠더의 경계를 뒤흔든다. 폭력적인 남성의 행동을 모방하거나 과장하며 풍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고, 연기 중 옷을 벗어 상반된 신체를 드러내는 퍼포먼스를 통해 성과 젠더가 얼마나 얄팍한 관계인지 보여주기도 한다. 드랙은 성과 젠더의 관계, 젠더 역할과 수행의 의미를 탐구하며,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한 사회에 가장 강렬한 질문을 던진다.



크로스드레싱은 패션이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규범을 동시에 표현하는 수단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패션만의 재미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사회적 규범에 가장 찬성하면서도, 가장 반대할 수 있는 매력적인 양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패션은 젠더를 명백히 구분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젠더리스에 앞장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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