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최면

by 삽질

글을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관심 있는 생각, 분야 혹은 추구하는 바를 강화합니다. 파편화된 생각의 조각들, 정형화되지 않은 지식, 경험했던 느낌이 큐브의 단면을 맞추듯 일정한 색깔로 통일됩니다. 그 과정에서 저만의 생각, 느낌, 에너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글쓰기는 자기최면과 비슷합니다. 제가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진실되게 썼다는 믿음 때문에 제 글은 저만의 성서가 되곤 합니다. 하지만 뇌에서 일어나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과정의 결과물인 제 글에는 꽤 많은 왜곡이 담겨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성서에 담겨 있는 과학적 오류나 증거를 아무리 갖고 와도 신자들의 신념에는 흠집을 낼 수 없습니다. 모든 믿음이 그렇듯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믿음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글이 아무리 엉망이라도 저는 제가 쓴 대로 믿고 세상을 이해합니다.


모든 믿음이 그렇듯 지나친 자기최면은 진실을 왜곡하고 편협한 시야만 남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라는 자기최면에는 항상 경계심과 회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페이크와 팩트'의 저자는 '우리 대다수는 자기만의 반향실에 거주하면서 편견에 저항하기보다는 안심시켜주는 정보를 찾는다.'라고 했습니다. 확증편향입니다. 명백한 오류가 있어도 자신에게 맞는 증거만을 수집하는 인지적 오류를 일컫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조금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선 회의적인 자세를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굳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회의적인 자세는 삶에 유연함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괜찮지 않을까?", "이거는 왜 이렇게 해야 돼?"라는 발칙한 딴지를 걸면 융통성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제 믿음을 테스트하고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겸허한 마음가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인 것 같습니다. 가끔 저는 너무 극단적으로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가끔 제가 입에 칼을 물었다는 표현을 하곤 하거든요.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갖고 싶습니다. 글을 쓰며 저만의 세계에 갇히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더 넓은 세상을 탐험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왕이면 건강한 자기최면이 더 낫지 않을까요?


'멍청해지기 전에 읽는 뇌과학'에 따르면 '우리 뇌는 새로운 무언가를 상상하고 창조할 때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는 것들의 조합을 만드는 방식으로 합니다. 회상을 아주 정확하고 풍부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미래에 벌어질 일을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할 때 비슷한 수준의 정밀도와 풍부함을 갖춘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끊임없이 회상하는 주체적인 활동이면서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좋은 도구입니다. 글쓰기라는 저만의 종교를 품에 안은 채 미래를 멋지게 상상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뭐, 꼭 그렇지 않더라도 글쓰기는 그냥 재미있으니깐 그것만으로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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