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교사 아빠의 육아 1년 후기

by 삽질

작년 한 해 동안 일을 쉬면서 아이를 돌봤습니다. 저는 기간제 교사이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한 건 아닙니다. 그냥 일을 안 하면서 아이를 돌본 것이죠. 그래서 육아휴직수당 따위는 없었습니다. 다행히 실업급여라는 게 있더군요. 많지는 않지만 6개월 동안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참 감사하게 느껴지더군요. 이 정도면 우리나라도 선진 복지국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희는 아이를 집에서 3년 동안 키웠습니다. 아내가 2년 동안 육아휴직을 하면서 돌봤고 1년 동안 제가 뒤를 이었죠. 요즘 같은 시대에 3년이나 아이를 집에서 키우는 건 조금 미련해 보일 것 같습니다. 효율성이나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저희 부부가 굳이 3년이나 키운 이유는 뉴질랜드에서 겪은 경험 때문입니다. 뉴질랜드 어린이집에서 일할 때 아이들이 기관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직접 봤기 때문이죠. 뉴질랜드 어린이집이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음에도 어린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 아빠만큼 아이를 진심으로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아이는 엄마, 아빠와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요. 나이가 어릴수록 부모와 깊은 관계를 맺고 일상생활에서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년 동안 아이와 특별히 뭘 한건 아닙니다. 그냥 일상을 보냈죠. 날씨가 좋으면 집 앞 호수 공원에 가서 맨발로 땅을 밟으며 흙놀이를 하고, 함께 자전거를 타기도 했습니다. 조그마한 녀석을 등에 짊어지고 등산도 자주 갔습니다. 날씨가 안 좋으면 아파트 단지에 있는 키즈룸에 가서 신나게 방방을 타거나 집에서 뒹굴뒹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키움센터에서 제공하는 무료수업에 참가했고요. 지루할 정도로 비슷한 일 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낸 건 아마도 제가 조금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돈 주고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나 공연도 특별히 많이 찾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가 사물놀이를 좋아해 공연을 보러 종종 갔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꽤 심심한 일상을 보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변명을 하자면 저는 이런 일상의 지루함을 아이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줄 알아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죠. 더 많은 자극이 주어질수록 아이는 더 큰 자극을 원할 테니까요. 다행히 그런 저의 깊은 뜻을 이해했는지 아이는 장난감이 없이도 집 안에 있는 온갖 물건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줄 알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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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아이와 함께 있었지만 아이가 저를 특별히 더 좋아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여전히 엄마가 최고죠. 제가 집에서 무서운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서 그런 가봐요. 보통 엄마와 합동으로 같이 혼내는 편이긴 하지만 제가 무서운 표정을 더 잘 짓거든요. 그래도 아이에게 전혀 서운하지 않습니다. 존재만으로도 참 감사할 뿐이에요. 둘만의 애정이 약간은 생긴 것 같습니다. 엄마가 주지 못하는 아빠만의 매콤함이 있거든요. 아이는 그런 저의 거친 사랑을 즐기는 듯해요. 아파트 놀이터에서 그네를 가장 높이 밀어주는 아빠로 살짝 소문이 나기도 했습니다. 동네 다른 엄마들 말로는 저와 보낸 1년 동안 아이가 많이 활발해졌다고 하더군요. 강하게 키운 만큼 아이가 많이 씩씩해진 것 같아서 뿌듯합니다.

아이와 함께 사계절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 무척 좋았습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처음 해본 것 같아요. 항상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계절이 바뀌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 덕분에 거의 매일 공원과 산을 다니다 보니 계절의 바뀜을 천천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보지 않는 것들을 더 유심히 봤고 절대 가지 않았을 장소들도 다녔습니다. 정말 좋은 경험이었어요. 아이가 제게 새로운 세상의 문을 열어준 느낌입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그 세상을 즐길 수 있어서 더 행복했습니다.


아이를 보는 일은 인내심이 많이 필요합니다. 제 아이는 낮잠을 자기 전에 꽤 오랜 시간 뒹굴뒹굴하며 저한테 부대꼈어요. 가끔 잠은 안 자고 계속 치대는 아이에게 짜증을 내곤 했어요. 아이는 천천히 잠자기 위해 혹은 잠이 오지 않기 때문에 했던 행동인데 저는 기다리지 못한 것이죠. 얼른 재우고 저만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 욕심에 더 짜증이 났던 것 같아요. 아이는 잘못이 없는데 괜히 화풀이를 당한 셈이니 억울할 것 같습니다. 놀이터나 공원에서 놀 때도 제가 지겨워지면 다른 곳으로 옮기자고 말하곤 했습니다. 아이는 신나게 놀고 있는데 제가 훼방을 놓는 셈이었죠. 부족한 제 인내심 때문에 아이가 꽤 귀찮았을 것 같네요. 여전히 인내심의 한계에 부딪칠 때가 있지만 다행히 아이와 사이는 좋습니다.

아내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제가 경험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알 수 있게 됐죠. 아이를 키우는 일은 상당히 많은 정신적, 신체적 에너지가 필요해요. 게다가 책임감도 있어야 하고요. 개인적으로 가정주부들, 특히 어린 자녀를 온전히 돌봐야 하는 가정주부들에게 더 많은 인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겉으로 보기엔 편해 보일 수 있지만 정말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는 걸 알아줘야 합니다. 아이는 쉬지 않으니까요. 엄마들에 대한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던 1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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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아내가 온전히 3년을 육아에 전념할 수 있었던 건 저희의 육아철학으로만 가능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이 됐기 때문입니다. 둘 다 교사 일을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함께 육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휴직도 자유로웠고요. 어느 부모가 이른 나이부터 아이들을 좁디좁은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겠습니까. 그럴만한 상황이 안 됐기 때문이겠죠. 사회가 부모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으니까요.


요즘 사회 분위기를 보면 아이들을 기관에 더 빨리, 더 오래 맡기게 하려는 것 같습니다. 부모는 그 시간에 돈을 벌고요. 효율적인 시스템이 정교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어릴수록 부모와 함께 커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와 부모와의 관계, 아이의 성장은 효율성을 전제로 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이런 시스템은 인간성을 없애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복지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고요. 이상적인 생각일지라도 저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커가는 건강한 사회를 꿈꿔봅니다. 제가 한 해 동안 아이를 돌보며 경험하고 느꼈던 순간들을 많은 부모들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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