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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권위(교권)를 되찾는 법

우리 할머니의 권위와 훈육

by 삽질

교사의 권위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온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너무 흔한 이야깃거리라 이젠 논란거리도 아닌 것 같습니다. 교사의 권위를 회복시키고 더 나은 교육 환경에서 교사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 많은 노력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관련 제도개선이나 법령 추가가 교사의 권위를 회복시켜 줄 수 있을까요. 최근 읽었던 <부서지는 아이들_애비게일 슈라이어 저>을 통해 느낀 바가 있어서 제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부모라면, 교사라면, 그리고 비상식이 늘어가는 오늘날의 교육에 물음표를 던지고 계시다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저는 곧 40 살이 됩니다. 제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90년대 그리고 제 부모님 세대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60년대를 돌이켜 보죠. 당시 아이들을 키우던 부모님들은 (절대적인) 권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도 이와 똑같은 (어쩌면 더 높은) 권위가 있었죠. 권위는 법이나, 제도 혹은 전문가들의 보증이 없어도 당연히 존재하고 인정받는 가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학생들은 그 권위를 기준 삼아 규칙을 지키고 행동을 교정했습니다. 제 돌아가신 할머니는 1910년대에 태어나신 아주 아주 옛날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할머니께서는 교육 전문 지식, 효과적인 육아방법, 감정코치, 뇌과학 따위가 없었지만 부모로서 권위를 갖고 엄격한 훈육을 할 줄 아셨죠. 그런 할머니 밑에서 교육받은 아버지는 한 인간으로서 잘 성장하셨고 나름 성공적인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똑같은 방식으로 저와 제 누나도 인간으로서 살 수 있도록 잘 키워주셨고요.


Untitled_%EF%BC%8D_June_23,_2025_11.02.jpg?type=w3840 제가 생각한 현대의 권위 위계

시간이 흐르면서 권위가 갖고 있던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효과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권위가 지닌 폭력성이 아마도 권위가 가진 이미지에 가장 큰 흠을 냈을 테지요. 지금의 권위는 신뢰를 잃었고 주인마저 바뀌었습니다. 부모와 교사는 제 할머니가 가졌던 권위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권위는 교육 전문가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곧 교육의 진리고 방법이 됐습니다. 전문가들의 조언과 최신 교육방법이 집과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육의 근본이 된 것이지요. 승승장구하는 교육 전문가들과는 달리 권위를 잃은 교사와 부모는 전대미문의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교사 입장에서 학부모, 학생의 횡포가 못마땅하지만 모두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권위의 피라미드에서 교사가 최하층에 존재할 뿐이죠.


과거에는 귄위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규칙과 행동을 가르쳤습니다. 행동주의에 기반한 엄격한 훈련이었던 셈이죠. 행동주의가 문제가 된 건 학생들의 인권이 중요시되면서 권위가 가진 폭력성이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점차 학생의 인권, 자율성, 창의성, 감정이 교육의 최우선순위에 자리 잡으면서 권위와 훈육은 그 가치를 잃어버렸습니다. 교육 전문가들은 행동이 아니라 감정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가정이나 학교에서 훈육은 아이들의 감정을 보살피고 마음을 읽어주는 정서학습에 자리를 빼앗겼습니다. 결과는 더 좋아졌을까요? 우리는 과거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아주 많아졌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없던 아이들의 정신문제가 점점 확산되고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질서는 붕괴되고 갈등은 커져만 갑니다.


모든 게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 교육판에서 권위를 잃지도 않고, 수많은 이익을 챙겨가는 유일한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교육 전문가 집단이지요. 교육 전문가의 범위는 꽤 광범위합니다. 교육심리학자, 교육 상담사, 심리 상담사, 양육 전문가, 진보 교육 운동가, 정신과 의사, 교육 행정 이론가 등 현대 주류 교육 방향 결정에 영향을 주는 사람을 총칭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모든 교육전문가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 순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행위가 만드는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이익을 가져간다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부모와 교사는 수천 년 동안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길러주던 지혜, 전통, 경험을 버리고 그 사기꾼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해질수록 오히려 전문가들에게 더 의존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전문가들은 그럴싸한 이유와 방법들로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줍니다. 그럴수록 전문가들의 권위는 더욱 공고해져만 갑니다. 더 많은 문제가 생기고 최신 이론이 등장할수록 그들이 먹을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커져만 갑니다. 과거에는 ADHD약도, 정신상담 치료도, 놀이치료도, 수많은 최신 교육 방법과 이론이 없어도 아이들은 꽤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전문가들과 교육방법, 기관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들은 문제가 멈추질 않길 원할 수도 있습니다.


엉망이 되어가는 교육판에서 벌어지는 권위 이전과 자본주의 게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쩌면 교사의 권위는 여러 행정적, 법적 노력과는 상관없이 영원히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건 행위의 주체(교육전문가)가 이익을 독식하고 책임은 다른 사람(학생, 교사, 부모)에게 전가되는 구조 안에서는 교사는 계속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교사는 책임을 져야만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우리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옛 할머니들의 지혜를 다시 찾아와야 합니다. 교육에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 상담이 아니라 훈육이 그리고 사랑이 담긴 권위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미 수천 년 동안 검증된 과거의 교육적 가치를 되찾았을 때 비로소 권위가 제 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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