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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이주 준비

비우기

by 삽질

내년에 제주도에 가서 살아볼 계획입니다.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지만 손에 잡히는 대로 천천히 준비를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즉흥적으로 집 정리를 했습니다. 씻으려고 안방 화장실에 들어가다 화장대 서랍에 수북이 쌓여있는 먼지와 머리카락을 보니 갑자기 불편함이 몰려오더군요. 먼지와 머리카락을 한 움큼 집어 쓰레기통에 넣고 있으니 문뜩 창고에 처박혀 있는 물건들이 떠올랐습니다. 항상 마음 한편에 짐처럼 자리 잡은 창고의 잡동사니를 정리할 때가 된 것입니다. 다짜고짜 창고에 들어가 온갖 짐들을 꺼내놨습니다. 대부분 아이의 책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었죠. 아내에게 눈치껏 오늘 대청소 한번 하자고 꼬드겨보니 군말 없이 넘어오더군요. 대청소 시작입니다.


원래 둘째가 생기면 보여주려 했던 책 들이었지만 둘째도 안 생겼고 내년에 제주도 갈 생각을 하니 전부 짐이 돼버렸습니다. 그냥 나중에 새로 당근 하기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책들을 차례대로 정리하고 당근에 올리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청소하는 김에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귀찮은 작업들도 해버렸습니다. 블라인드 먼지 닦기, 가스레인지 후드 청소, 바닥 물걸레질, 온갖 잡동사니 버리기, 화장실 청소. 반나절을 그렇게 치우고 닦고 버리니 집이 꽤 깨끗해졌습니다. 꽉 차있던 창고도 여유가 생겼고요. 내장에 껴있던 기름때가 쓱 벗겨진 것처럼 몸과 마음도 홀가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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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결혼을 하고 꽤 여러 번 이사를 했습니다. 결혼하자마자 뉴질랜드로 갔고 뉴질랜드에서도 이사를 한 번 했었죠. 한국에 돌아와선 처음에 원룸에 지내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고요. 6년 동안 총 4번의 이사를 했네요. 이사를 할 때마다 '언제 이렇게 많은 짐이 생겼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가족이 사는 데 정말 많은 것들을 갖고 산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들이었죠. 다행히 저희는 종종 이사를 하면서 많은 것들을 비워야 했고 물건에 대한 소유욕이나 집착도 꽤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집은 벌써 4년째 살고 있고 아이까지 생기니 짐들이 많아졌습니다.


제주도에 가면 아마 지금보다 작은 평수의 집에서 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많은 짐을 가져가지 않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마 지금 갖고 있는 가구들도 어느 정도 처분하고 내려가지 않을까 합니다. 이불이나 식기, 주방용품들도 부모님 집에 조금씩 가져다 놓을 계획이고요. 올해 남은 시간 동안 제주도에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 위해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버림, 비움, 무소유 모두 그 자체로 삶을 건강하게 하는 단어들입니다. 아내는 제주도에서 미니멀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벌써 기분이 좋다고 말합니다. 생각해 보면 제주도에 가는 것 자체가 제 삶을 대청소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도시의 편안함, 더 좋은 돈벌이, 다양한 문화 혜택처럼 더 많은 소유를 덜어내는 과정이니까요. 제 삶에 쌓여있던 수많은 짐과 욕심들을 털어버리고 깨끗하고 비어있는 여유를 다시 만드는 과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청소를 하다가 제주도에 가야 하는 꽤 괜찮은 변명거리가 하나 더 생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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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집에 이사 왔던 때, 짐이 거의 없어 텅 비어있던 그 편안함과 자유로움을 다시 떠올리며 앞으로도 계속 비워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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