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십수억 자산 인증 글을 보며 든 생각

운과 행복

by 삽질

최근 초등 커뮤니티에 20대임에도 불구하고 자산이 13억이 된다는 인증글이 올라왔습니다. 돈을 벌면서 얻은 인사이트도 함께 곁들이면서요. 순식간에 화제가 됐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움과 존경심? 을 받으며 비법을 공유해달라는 댓글이 잔뜩 달렸습니다. 아내도 저에게 링크를 보내주더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저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냐고 물어봅니다. (알면 저도 벌었겠죠?) 글쓴이 말로는 90%의 국내 주식으로 연 30%의 수익률로 만든 성과라고 합니다.


그분의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분이 이뤄낸 성과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만 통장에 찍힌 숫자와 인사이트를 떠나 수익을 인증하는 행위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느낀 점을 조심스럽게 적어보자 합니다.

IMG_2464.JPG?type=w966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운이 많이 작용하는 분야와 상대적으로 적게 작용하는 분야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공부를 해서 시험을 치는 건 운보다는 실력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반면에 주식투자는 실력보다는 운이 훨씬 많이 작용하는 분야입니다.(아마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하겠지만요.) 투자에는 매우 복잡한 인과관계와 변수가 얽히고설켜 있습니다. 아무리 철저한 계산과 타당성 평가를 하더라도 예기치 못한 사건(코로나, 전쟁, 금융위기)은 생각보다 종종 나타납니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의 편향이 논리적인 인과관계를 왜곡시키기도 하고요. 모든 복잡계가 그렇듯 사실상 분석이 불가능한 분야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돈을 위임받아 투자하는 헤지펀드의 폐업률이나, 경제를 예측하는 전문가들의 예측률만 보더라도 투자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운이 얼마나 많이 작동하는지 알 수 있죠.


투자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운에 의한 결과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본인이 실력이라고 믿는 것도 결과적으로 운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많은 성공 끝에 겪은 단 한 번의 실패가 실력이 운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곤 하죠. 그 사실을 모른 채 운이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고 사람들에게 성과를 자랑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린 성공했다고 떠드는 사람이 아닌 사라진 수많은 그런 사람들을 떠올려야 합니다. 진실은 당장 주목받지 못하는 사라진 사람들 속에 존재하는 법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당장 수익을 인증하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는 건 성급한 행동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선생님께 저주를 퍼붓는 건 아닙니다. 진심으로 더 잘 되길 빕니다.)


IMG_3066.jpg?type=w966

많은 분들께서 인증 글에 보인 반응을 보면서 돈을 향한 호기심과 열망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돈 이야기만큼 재미있는 주제도 없죠. 돈 많은 사람은 무조건 형님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돈은 우리 사회의 최상층 가치가 됐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원산지인 미국을 넘어서 자본주의 괴물이 된 우리나라를 보고 있으니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동안 투자 공부를 위해 꽤 많은 투자 서적을 읽었습니다. 돈을 더 생각할수록 돈에 더 집착하게 되더군요. 모든 가치가 숫자로 환원되는 희한한 경험을 했습니다. 목표한 금액에 도달하기 위해 부모님의 유산이 얼마나 될지를 계산하는 폐륜적인 짓까지 했습니다. 인생에서 돈은 중요하지만 돈때문에 그보다 훨씬 중요한 가치가 생각보다 쉽게 훼손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 일상이 간섭받지 않도록 최소한의 노력만으로 투자 자금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모든 에너지는 제 삶에서 꼭 지켜야 할 가치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저는 분명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내년에 교사를 그만두고 제주도로 갈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기간제이지만 꾸준하게 받을 수 있는 월급을 포기하는 건 금전적으로 현명한 선택이 아닙니다. 돈이 선택의 기준이었다면 계속 이 일을 하거나 시험을 쳐서 정교사로 복귀하는 결정했을 것입니다. 안정적인 월급을 꾸준히 투자하면 제가 목표한 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꽤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돈이 판단의 기준이 되면 필연적으로 세상을 보는 시야는 좁아지고 선택에 제약이 생깁니다. 자유를 위해서 돈이 필요하지만 때론 자유를 위해선 돈을 포기해야 하기도 하죠. 따라서 자신의 삶에서 진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꼭 생각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돈에 휘둘리지 않고 돈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삶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돈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됐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은 악마다, 돈을 버리고 꿈을 좇으라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번 그 젊은 선생님이나 좋아요를 누른 많은 선생님들께 쓴소리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뭐라고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다만 맹목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더 본질적인 생각(투자의 본질은 무엇인지, 왜 돈을 벌어야 하는지, 돈보다 더 중요한 개인적 가치가 무엇인지, 자유에 필요한 돈은 얼마인지, 큰돈과 함께 지속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등)을 해봤으면 하는 바람에 주제넘게 글을 써봤습니다.


모두 성투하시고 여러분만의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keyword
삽질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구독자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