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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째 용돈 30만원입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by 삽질

저희 부부는 결혼 7년 차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각자의 용돈은 30만 원입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는 자비 없는 용돈 동결입니다. 다행히 '저'는 불만이 전혀 없습니다. 30만 원으로도 사람답게 살고 있으니까요. 아내도 겉으로 보기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이 글을 보고 진심을 털어놓을 수도 있겠네요.


저희는 결혼하자마자 통장을 합쳤습니다. 계획했던 건 아닌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결혼하자마자 저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는 휴직을 하고 뉴질랜드로 갔기 때문이죠. 들어오는 돈은 없으니 당연히 하나의 통장으로 돈을 야금야금 뽑아 쓰며 살았습니다. 사실 뉴질랜드에 살 당시에 저희 부부는 아예 용돈이 없었습니다. 거기서 만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어딜 돌아다닐 일도 없으니까요. 그냥 모든 것을 함께 하고 돈이 필요하면 그때그때 빼서 쓰는 생활을 했었죠.


한국에 돌아와서는 둘 다 일을 하니 용돈이 필요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돈을 탕진하고 왔기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었죠. 저희 부부는 과감하게 용돈을 30으로 책정했습니다. 그리고 돈이 필요하면 따로 더 쓰는 조건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꼭 듣고 싶은 교육, 사야 하는 제품, 만나야 하는 약속, 배우고 싶은 운동 등이 있을 땐 과감하게 서로에게 투자를 해주는 것이죠. 대신 쓸모없는 사치품이나 재미를 위한 소비는 개인이 알아서 해야 합니다. 사실 30만 원 갖고 무슨 사치를 하겠습니까. 그냥 하지 말자는 암묵적 합의였습니다.


30만 원으로 살아가는 게 가능한 건 저희 부부가 약속도 취미도 많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에 친구 한 번 만나며 5~10만 원 쓰는 건 일도 아니잖아요. 다행히 저나 아내나 일 년에 친구를 만나는 약속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저희 부부가 친구도 없는 히키코모리나 인격파탄자들은 아닙니다. 나름 사회생활도 하고 사람들하고 잘 지내는 편이죠.(친구도 있어요.) 그런데 결혼하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결혼하고 밖에 많이 돌아다니는 일이 잘 안 생깁니다. 아이까지 생기면 있던 약속도 취소하죠. 기어코 나가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힘이 어디서 나시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돈 드는 취미를 잘 안 하는 편이에요. 다들 골프 치고 테니스 치고 서핑나가시던데 저는 그냥 헬스장에서 바벨 들어 올리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효과도 아주 좋고요. 아파트 헬스장 5천원 만세.


융통성 없이 개인 용돈 30만 원에서 모든 걸 해결하기 챌린지가 저희 목적이었다면 아마도 실패했을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는 계획과 강제를 극히 싫어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30만 원이라는 기준에서 꼭 써야 하는 돈에는 큰 제약이 없으니 돈으로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융통성을 거꾸로 발휘해 생활비가 조금 쪼들린다 싶으면 제 용돈을 아껴서 주유비나 외식비로 쓸 때도 많았습니다. 아예 용돈을 더 조금 받은 경우도 많고요. 30만 원으로 혼자 지지고 볶고 별짓을 다했네요. 찌질하면서도 대견합니다.


저희 집 모든 돈은 제가 관리합니다. 아내는 본인이 받는 용돈 30을 제외하면 다른 돈의 행방을 전혀 모르고 딱히 궁금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알아서 잘하고 있겠거니 하는 것 같습니다. 우선 저를 믿어주고 30만 원이라는 소박한 용돈에도 불만 없이 잘 지내준 것에 감사한 마음을 보냅니다. 사실 어디 가서 용돈 30만 원 받는다면 가정폭력 아니냐고 신고 들어올 수도 있을 것 같네요. 그래서 밖에선 단 한 번도 입밖에 꺼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내도 똑같은 마음이겠죠.


30만 원은 작은 용돈이지만 그 가치는 그보다 훨씬 큰 것 같습니다. 저도 한 때 돈도 별로 없으면서 돈을 마음껏 쓴 적이 있습니다. 아내도 혼자 살 때 돈 무서운 줄 모르게 펑펑 쓰면서 항상 부족한 돈에 화가 났다고 합니다. 돈이란 게 참 요물인 것 같습니다. 쓰면 쓸수록 더 갈증을 느끼게 하고 그 와중에 돈이 없으면 비교하고 자책하고 괴로워하잖아요. 반대로 돈에서 자유로워질수록 돈이 가진 본래의 목적대로 잘 사용할 수도 있고요. 돈이 목적이 아니라 도구가 될 때 비로소 돈에 가치가 생기는 것 같아요. 30만 원이란 돈이 목적이 될 땐 아무런 쓸모가 없지만 도구가 될 땐 제 삶에서 꽤 든든한 자산이 되는 것이죠.


앞으로 제가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용돈 30만 원이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행복을 위해 저를 큰돈에 맞추기보단 작은 돈 안에서 행복을 찾는 게 제게는 더 맞는 것 같습니다. 30만 원 같은 소박한 삶을 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리고 그렇게 소박한 용돈 받으며 절약한 덕분에 통장에 돈이 쌓여가는 재미도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용돈 30만 원은 유익한 것 같습니다. 10년 뒤에 17년째 용돈 30만 원이란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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