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수그레한 교육생
엊그제 1급 정교사 자격연수 실행학습을 듣고 왔습니다. 총 5번의 교육 중 첫 시간이었죠. 오랜만에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 연수도 듣고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니 피곤하기도 하고 긴장도 되더군요. 다들 저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선생님들이실 텐데 웬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앉아 있는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걱정도 됐습니다.
차로 3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연수받는 학교가 있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해 교육실로 들어가니 이미 대부분 자리에 앉아 계시더군요. 교육 담당 선생님께서도 단상 앞에서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저랑 나이 차이가 별로 안나는 것 같았습니다. 순간 누구는 이 나이에 연수받으러 왔는데 누구는 교육을 해주시는 분이라니 뭔가 웃기면서도 씁쓸한 느낌도 들더군요. 최대한 매너 있고 씩씩하게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여느 교사들의 교육과 마찬가지로 뻘쭘한 공기에 숨이 턱턱 막혔습니다. 선생님들은 신병들처럼 앞을 보고 뻣뻣한 자세로 앉아 계셨습니다.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하려고 담당 선생님께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연신 쏟아내시더군요. 연륜과 경력이 느껴지는 편안함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동안이라 더 젊게 봤지만 담당 선생님은 저보다 나이가 5-6살 정도 많은 분이셨습니다. 내년이면 교감을이 되신다고 하시더군요. 꽤 젊은 교감선생님이신 것이죠. 참 열심히 사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이었다면 승진충이니 뭐니 하면서 얕잡아 보는 생각을 가졌을 겁니다. 쓸모없어 보이는 학교 일을 바득바득 해내며 승진점수를 따는 선생님들을 꼴사나워했던 저니까요. 지금은 저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들을 견뎌내고 기어이 점수를 따냈다는 게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진 분들이니까요. 더 이상 제가 하는 생각과 행동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는 철부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연수가 시작되면서 자신은 어떤 선생님인지 한 문장으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대체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저는 교사로서 어떤 목표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냥 삽질 중인 의원면직한 기간제교사라고 적었습니다. 요즘 하도 글 쓰는 거에 빠져있었어 제 나름의 필명인 삽질을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가 기간제 교사인걸 말해 놔야 마음이 조금 편할 것 같았거든요. 보통 선생님들께 제가 기간제라고 말하면 저에 대한 관심이 조금 수그러듭니다. 어차피 오래 안 볼 사람이니 그냥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과의 그런 미묘한 기류 변화를 만드는 건 저의 작은 재미이기도 합니다. 뭔가 자유를 얻는 느낌도 들고요.
다른 선생님들은 나름대로 진지하고 재미있게 본인들을 소개해주셨습니다. 신규의 열정이나 풋풋함 그리고 시크함이 묻어나더군요. 그런 선생님들 사이에서 의원면직한 기간제라고 소개하고 앉아 있으려니 조금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노력하는 교사처럼 뻔한 말을 쓸걸 하고 후회가 들더군요. 괜히 깝죽거린 것 같기도 하고요. 다음에는 조금 덜 솔직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제가 정교사로 이 연수에 참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조금 더 싹싹거리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선생님들과 더 가까이 지냈겠죠. 별로 듣기 싫은 연수 내용도 나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꿋꿋한 믿음으로 스스로를 속이면서요.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황에 따라 제가 믿고 싶어 하는 게 달라지니까요. 상황이 변하더라도 제가 믿어야 하는 걸 믿고 꿋꿋하게 행동할 수 있을지 고민해 봅니다.
그런데 고작 하루 연수를 받았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네요. 앉아서 연수 듣고 이러는 거 도무지 체질에 안 맞습니다. 옛날에 회의만 하면 승모근이 딱딱해지고 배가 아팠는데 여전히 나아지질 않는군요. 방학 때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갑합니다. 그래도 염치, 눈치는 있으니 다른 선생님들께 피해 안 가도록 열심히 참여하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연수 잘 이수해서 1호봉 승급을 이뤄야지요.
참, 우연찮게도 담당선생님의 자녀가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 다니는데 마침 제가 가르치는 학생이더라고요. 다음 주에 가서 아이 얼굴이나 확인해 볼까 합니다. 흔하지 않은 성을 가져서 오늘 출석부를 확인해 보니 마침 딱 한 명이 있더군요. 세상 참 좁습니다. 뭐 어쩌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확인해 볼 뿐입니다. (몰래 다가가 아빠한테 나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물어보면 안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