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권을 포기하고 뉴질랜드에서 돌아왔습니다

by 삽질

뉴질랜드를 갈 때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간 건 아닙니다.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마음으로 간 것이었죠. 뭐가 됐든 일단 살아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처음에 저희 부부는 교사 말고 전혀 다른 일을 해 볼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영주권도 따려고 했죠. 하지만 다른 일을 해서 영주권 따는 건 너무 오래 걸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결국 저희가 가장 익숙하고 잘하는 교사 일을 하게 됐습니다. 운이 좋게 빠른 시간 안에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주권 심사가 코로나와 맞물리며 기약 없이 멈춰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저희 부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계속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빠르게 정리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말이죠. 결국엔 정확히 2년이라는 뉴질랜드 생활을 마치고 2021년 1월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확히 저희가 왜 돌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께서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주셨을 때부터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 봤습니다. 아내와도 이야기하면서 하나씩 이유를 생각해 봤죠. 저희가 뉴질랜드에서 돌아온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경중의 차이가 있는 다양한 이유들이 얽혀 저희를 한국으로 오게끔 만들었을 겁니다. 제가 느낀 이유와 아내가 느낀 이유도 조금은 다르고요. 아내와 이야기하면서 정리한 몇 가지 이유를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이 아니어도 영주권을 딸 수 있다.

뉴질랜드 영주권 심사를 통과하면 거주 비자(Resident Visa)를 받습니다. 거주 비자 취득 후 2년을 뉴질랜드에 거주해야 영주 거주 비자(Permanent Resident Visa)가 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진짜 영주권이죠. 만약에 저희가 코로나 시기를 버티고 거주 비자를 받더라도 2년이라는 시간을 뉴질랜드에서 무조건 있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 저희 부부의 나이가 30대 중반이 되어가고 있었기에 그렇게 되면 '영주권'만 을 위해 저희의 30대를 모두 보내야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저희는 영주권을 딸 수 있는 조건을 모두 갖췄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영주권을 딸 수 있었습니다. 굳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필요가 없었죠. 아내는 가질 수 없을 땐 정말 갖고 싶었던 물건을 이제 갖게 될 수 있다고 하니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표현도 했습니다.


당시에 저희 부부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가질 계획은 있었는데 영주권이 없이 뉴질랜드에서 애를 낳는 건 힘든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까요. 가족이 가까이 있지 않다는 불안감도 있었고요. 아이를 낳을 거라면 빨리 한국에서 낳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희 부부는 한국에 돌아와 몇 달 뒤에 아이를 갖게 됐습니다. 만약에 당시에 아이가 있었다면 다른 결정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뉴질랜드는 아이를 키우기에 너무 좋은 곳이거든요.


저희가 뉴질랜드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에 돌아온 선택에 대해 지금도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뉴질랜드 영주권을 위한 준비가 다 되어 있는 플랜 B를 갖고 있기에 더 편안하게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에 돌아와 바로 예쁜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낳은 기쁨을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공유하는 것 역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행복이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

뉴질랜드 생활이 생각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면 더 적은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으로도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었어요. 게다가 제 전문성도 훨씬 잘 살릴 수 있었고요. 한국이 여러 면에서 인프라와 서비스도 더 좋았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제 집을 놔두고 뉴질랜드에서 매달 렌트비로 130만 원가량의 돈을 내면서 작은 창고 같은 집에서 살아야 했죠. 많은 사람들이 뉴질랜드 영주권을 따려는 이유 중에 연금혜택이 있는데 비교해 보니 한국에서 교사로 은퇴를 할 경우 훨씬 더 많은 연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뉴질랜드에 살면서 저희가 더 얻는 게 많이 없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시에 뉴질랜드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건 정말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뿐이었어요. 정말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깨끗함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아이를 키우고 있다 보니 요즘 더 생각이 나네요.


떨어지는 직업 만족도

어린이집에서 일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어린이집에서 일하면 거의 쉴 수가 없습니다. 점심시간 30분, 그리고 중간에 주어지는 잠깐의 쉬는 시간을 빼면 퇴근할 때까지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해야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초등교사 생활에 비해 훨씬 몸을 쓸 일이 많습니다. 교실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아이들의 활동을 준비하고 치우는 것을 반복합니다. 뉴질랜드 어린이집은 야외 공간이 필수적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더운 여름에 한나절을 야외에서 계속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아내는 이런 부분이 많이 힘들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한국에서와 같이 내가 한 반을 맡아 혼자서 일하는 게 아니고 다수의 교사들이(보통 3명, 많으면 5명 이상)이 팀으로 일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불편함도 있습니다. 만약에 영주권이 조만간 나온다고 생각을 하면 이런 힘듦을 견딜 수 있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영주권 심사가 언제 시작될지 알 수 없기에 막막함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영어, 문화장벽 그리고 내면의 복합적인 문제

영어 때문에 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많이 위축됐어요. 생각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외국인 노동자가 된 느낌이었습니다. 일을 할 땐 매번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출근해서 주차를 하고 차에서 "잘할 수 있다!"라고 혼자 외치던 일이 떠오르네요. 일상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가령 우편을 보내러 가면 어떻게 말을 할지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을 합니다. 어떤 단어를 쓸까, 어떻게 문장을 만들까, 이 문장이 맞는 걸까, 내 발음은 괜찮을까, 내 말을 알아들을까, 혹시 상대방이 날 비웃진 않을까... 등등 한국에서는 너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인데 불필요한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정말 잘하고 싶고 원어민처럼 되고 싶은 욕심이 컸던 것 같아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융통성을 발휘하기엔 제가 미성숙했나 봅니다.


문화 장벽을 넘기 힘들었습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다정합니다. 길을 걷다가도 눈을 마주치면 항상 인사해 주고 사소한 것들에도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하죠. 이 문화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스몰토킹은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사람들과 말도 제대로 못 섞는 뻣뻣한 사람은 아닙니다. 낯은 가리지만 그래도 장난기도 있고 사람들과 어울릴 줄도 아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죠. 뉴질랜드에서도 곧잘 하긴 했지만 뭔가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제 다양하고 복잡한 생각을 딱 맞는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자책도 많이 하고 긴장도 많이 했습니다.


이방인으로서 뉴질랜드 사회에서 겉도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뉴질랜드가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이민자의 나라지만 결국엔 같은 문화와 언어를 공유하는 인종끼리 어울려 살고 있더군요. 저희 부부는 그래도 최대한 뉴질랜드 사회에 깊숙이 들어가려고 노력했습니다. 굳이 뉴질랜드 한인 사회에서 편함을 찾기보단 계속 현지인들과 부딪치며 배우려고 노력했죠. 그만큼 많은 성과를 얻었지만 저희가 더 빨리 지치게 된 원인이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완전히 뉴질랜드 사회에 동화되는 것은 욕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도 어렸을 때는 잘 섞여서 지내다 커갈수록 점점 자기와 같은 피부색, 언어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어울리는 것 같아요. 특히 동양 사람들이요.


뉴질랜드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없고 인간관계가 굉장히 수평적이에요. 저는 그런 문화를 동경했었죠. 하지만 뉴질랜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문화가 어떻든 여전히 저는 직업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했고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봤습니다. 환경이 변했지만 저는 변하지 않더군요. 특히나 뉴질랜드에서 한국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에서 보다 더 심하게 비교를 했던 것 같아요.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무슨 차를 타는지를 말입니다. 한국의 비교, 수직적 문화를 정말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누구보다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산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었어요. 제 그릇의 문제였습니다.



저희 부부가 뉴질랜드 생활을 회상하며 종종 했던 말이 있습니다. 어디에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누구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느냐가 중요하다고요. 어떤 마음가짐이냐에 따라 한국에서도 뉴질랜드에 사는 것처럼 살 수 있고 뉴질랜드에서도 한국에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처음에는 뉴질랜드 영주권을 받기 위해 떠났지만, 저희는 영주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뉴질랜드에서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을 얻어 온 것 같네요.


이 글을 쓰고 보니 뉴질랜드를 가면 안 되는 이유라는 제목에 더 걸맞은 내용 같아서 불편한 마음이 듭니다. 사실 저는 뉴질랜드에서 좋은 추억이 정말 많습니다. 그때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은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크고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 뉴질랜드 생각이 더 많이 나네요. 저희 부부는 아마 어떤 이유로든 뉴질랜드로 다시 갈 것 같아요. 그게 언제가 될 진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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