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뉴질랜드 초등교사자격증이 있었지만 현지 초등학교에서는 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년 가까이(반년은 대체교사, 반년은 풀타임)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면서 교사로서의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과정(Educational Leadership)이 현지 선생님들이 관리자가 되기 위해 많이 듣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현지 초등교사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리고 초등교사를 준비하는(1년 과정 초등교사 양성 대학원 코스 재학자들) 한인 분들과도 소통했었고요. 이런 저의 종합적인 경험을 통해 뉴질랜드에서 초등교사로 일하기 힘든 점에 대해 주관적인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주관적인 생각이 글에 많이 포함된다는 점은 고려해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와이프가 대학에서 유아 교육을 전공하면서 실습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현지 어린이집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궁금해서 하루는 자원봉사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아내가 실습 나갈 때 센터에 따라 나갔습니다. 그리고 센터 매니저에게 양해를 구하고 거기서 하루 동안 같이 근무를 했습니다. 센터 매니저는 제가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다는 걸 알고 어린이집에서 일해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는 Reliever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정교사가 사정이 생겨서 근무를 못 할 경우 대체교사가 필요한데 이게 바로 Reliever입니다. 한마디로 땜빵교사죠. 얼떨결에 저는 센터의 Reliever가 됐고 당시 제가 대학원생이었기 때문에 수업이 없거나 바쁘지 않으면 가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아시면 좋은 건 뉴질랜드에서 교사 자격증이 없어도 능력이 되면 어린이집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뉴질랜드 초등교사 자격증을 딴 것은 일을 시작한 이후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던 센터는 프랜차이즈 센터였기 때문에 오클랜드 전역에 분교? 센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실습을 하는 센터뿐만 아니라 다른 센터에서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다 한 센터와 인연이 닿아서 그 센터에서 쭉 Reliever를 하다가 대학원을 졸업(2020년 중순)하고 바로 풀타임으로 근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적극적으로 아내 센터를 찾아가서 기웃거린 덕분에 순조롭게 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이죠.
어린이집 어린이집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언어였습니다. 아이들, 교사, 매니저들과 소통하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제가 외국인이지만 뉴질랜드에 교사가 워낙 부족해 외국인들이 일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이해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일한 센터에도 인도, 필리핀, 피지, 스리랑카, 중국 사람들이 있었어요. 진짜 문제는 학부모과 소통할 때였습니다. 학부모는 대부분 현지인이었습니다. 뉴질랜드 어린이집은 학부모가 아이를 픽업하러 오면 센터에 들어와서 한참을 자유롭게 아이와 함께 놀다가 데려가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학부모와 교사는 아이에 대해 그리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친구와 대화하듯 끊임없이 하게 됩니다. 뉴질랜드 사람들의 릴랙스 하고 수평적인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모습이죠.
서양권에 살아보셨던 사람들은 아마 공감하실 텐데 현지인들과 대화하는 건 미드를 청취하거나 여행을 가서 대화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진짜 말도 안 되는 별 이야기를 다 해요. 우리와 문화가 전혀 다릅니다. 가끔 이 이야기를 왜 하지? 할 정도의 작은 이야기를(진정한 스몰토킹) 쏟아 냅니다. 한 학부모가 자신의 집 배수구가 막혀서 난리가 났다고 했던 말도 떠오르네요. 그런데 현지인 말이 빠르고 알아듣기가 정말 힘듭니다. 뉴질랜드 억양이 특이하기도 하고 마오리가 쓰는 말은 또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그리고 주제가 정해지지 않고 마음대로 아무 말이나 하니깐 맥락을 잡기도 어려워요. 맥락이라도 알면 눈치껏 대답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그럼 제가 할 수 있는 건 한없이 온화한 미소를 건네는 것뿐이었습니다. 정말 이럴 때마다 자괴감이 들더군요. 대화를 피하기 위해 계속 바쁜 척 일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뉴질랜드 사회 자체가 이민지들에 의해 세워졌고 이민자들에 무척 관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듣거나 Broken English 써도 현지인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어요. 실제로 저보다 영어를 잘했지만 그래도 완벽하지 않았던 영어를 쓰던 필리핀 동료 교사 JOJO는 학부모들과 정말 친구처럼 잘 지냈습니다. 많이 부럽더군요. 이런 걸 보면서 단순히 영어실력을 넘어서 제 성격, 문화적 차이 그리고 잘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들이 문제가 됐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교사로서 언어를 제대로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교사는 모범이 되어야 하니까요. 다행히 어린이집은 초, 중등에 비해 사용해야 할 언어의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제가 일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초등학교에서 일을 한다고 가정을 해보죠. 초등학생들의 언어 수준은 어린이집 학생들보다 훨씬 높고 발음이나 속도도 달라집니다. 그 언어를 올바르게 알아듣고 명확한 의도를 갖고 가르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언어를 공부하고 써 보셨다면 언어의 수준에 대해 생각해 보셨을 것입니다. 같은 한국어를 사용해도 언어의 수준이 전혀 다르죠. 아주 작은 뉘앙스, 강세, 표현 등으로 말의 분위기와 의도가 전혀 달라지잖아요. 학생들과의 소통, 학부모와의 상담, 동료교사와의 협업 등을 고려하면 우리가 구사해야 하는 영어의 능력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 글쓰기 능력도 포함됩니다. 우리는 교사로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지 교환학생이 아니잖아요. 학생들이 싸운 상황에서 서로를 이해시키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상황을 마무리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영어만 사용해서요.’ IELTS 같은 시험은 이런 능력을 평가하지 못합니다. 물론 진짜 영어 능력자라면 이런 건 문제가 되지 않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토종 한국 교사들은 저와 같은 문제에 부딪칠 거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슈퍼 E인 사람은 뭐 언어 능력이고 뭐고 살아남을 수 있을 수도 있겠네요. 참고로 저는 I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당장 한국 교사를 때려치우고 뉴질랜드에 가서 교사를 해 보겠다고 하는 분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참아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정말 뉴질랜드에서 교사를 하고 싶다면 시간을 두고 뉴질랜드에서 적응하면서 해 나간다면 가능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어쨌든 뉴질랜드 자체가 외국인이 많고 이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은 건 사실이니까요. 그리고 한국인이 가진 장점도 있지 않습니까. 부끄럽지만 제 자랑을 살짝 해보면 뉴질랜드 어린이집에서 일할 때 한 학부모께서 제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며 매니저에게 슬쩍 칭찬을 했다고 해요. 그리고 제가 한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센터를 그만둘 때 센터 매니저가 저를 안고 울어주셨습니다. 저를 가족이라고 말해주면서요. 언어를 뛰어넘는 진정성이 정말 중요한 대목이죠.
이제 제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보고 들은 것들을 위주로 말씀드려 볼게요. 대학원 수업에서 만난 동양계 초등학교 교사에게 학교에서 힘든 점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참고로 그분은 동양인이지만 뉴질랜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동양권에 있는 예의범절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그 점이 힘들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아이들이 더 막돼먹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제가 주말마다 한국어학교에서 한국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는데 거기서 만난 학생이 자기 반에 영국에서 온 아이가 있는데 맨날 수업시간에 책상에 발을 올리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그런다고 하더군요. 뉴질랜드 초등학교에서 학생 처벌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서도 흔치 않은 경우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갔던 2019년 당시 교사들이 파업을 하고 있었어요. 임금인상을 위해서 거리로 나왔었죠. 뉴질랜드는 교사가 국가공무원이 아니고 학교에서 고용을 하는 구조였습니다. 임금도 호봉체계가 아니라 정해진 것 같진 않지만 경력이 오래되고 관리자가 되거나 하면 임금이 큰 폭으로 뛰는 구조였던 것 같아요. 아무튼 지금 기억나는 건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임금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많이 아시다시피 뉴질랜드가 임금을 많이 주는 나라가 아니라서 실제로 현지 뉴질랜드 사람들이 호주로 일하러 많이 떠납니다.
저는 현지에서 한국인들이 초등학교에 얼마나 잘 고용되고 그런 것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추측컨대 고용 자체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용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교사로서 어떻게 생활하고 그 생활이 행복할 수 있겠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렵네요.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하자면 뉴질랜드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들이 아주 많이 이주합니다. 그들은 영어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니까요. 제가 뉴질랜드 이민청이라면 아마도 이런 외국어 능통자들을 더 많이 유입시키기 위한 의도로 '대학원 1년 후 초등교사 근무자에게 영주권'을 주는 정책이 시행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즉 우리가 메인 타깃이 아닐 가능성이 있는 것이죠.
사실 이렇게 글을 쓴 이유는 뉴질랜드 교사를 하지 말라고 경고함이 아닙니다. 뉴질랜드로 간다고 생각하신 분들께 현실적인 어려움을 미리 알려 대비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함입니다.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