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를 다녀온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백 번을 돌아가도 아마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에서 살아남는 건 실패했지만 저는 더 나은 사람이 됐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고 있는 요즘 뉴질랜드에서 보낸 2년이 더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뉴질랜드에서 '상식'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고 그 '상식'을 내 아이에게 전해줄 수 있기 때문이죠. 제가 뉴질랜드에서 배운 것들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뉴질랜드 어린이집에서 1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뉴질랜드의 모든 어린이집 센터는 Inside(실내놀이 공간), outside(바깥놀이 공간)이 존재했어요. 실내 공간에선 보통 책 읽기, 블록놀이, 장난감, 미술활동 등을 하고 야외 공간은 sandpit(모래 놀이터), monkey bar(철봉), jumpping box(상자 오르기), water pool(작은 수조), 화단처럼 아이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어요. 아이들은 이 두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하루 종일 놀 수 있습니다. 교사도 번갈아가면서 Inside, outside 근무를 서게 됩니다.
뉴질랜드는 다양한 신체 '놀이'를 강조하고 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해 줍니다. inside와 outside가 존재하고 이 두 공간을 원하면 언제나 드나들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리고 뉴질랜드 어린이집에서는 보통 mat time이라고 해서 교사가 아이들을 불러놓고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특정 주제에 대해 프로젝트 학습처럼 함께 공부를 해요. 하지만 그 시간이 보통 30분을 넘지 않습니다. 매우 짧지요. 대부분의 시간은 교사가 아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미리 세팅을 해놓고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만 해줍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는 완성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날것의 자연물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요. 아이들의 사고가 닫히지 않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하루 종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시간을 보냅니다.
뉴질랜드의 초등학교는 제가 알기론 모두 단층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죠. 저는 뉴질랜드에 살 때 주택에 살았습니다. 주택에서 문을 열면 바로 밖(자연)과 연결됩니다. 주택에 살면 자연과 집이 연결된 느낌을 받게 돼요. 자연에 제가 포함된 것이죠. 반면에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그런 연결을 단절시키고요. 문을 열고 바로 땅을 밟을 수 있는 것과 엘리베이터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행위에서 느껴지는 자유의 차이는 무척 큽니다. 학교를 1층으로 짓는 건 아마 자연과의 일체감을 주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와 다른 뉴질랜드의 이런 모습들은 아이들 그리고 교육을 대하는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뉴질랜드는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들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본성과 특성을 어떻게 하면 잘 발현할 수 있을지 그 자연스러움에 대해 고민하는 듯합니다. 뉴질랜드 어린이들의 성장 과정은 자연에 살아가는 동물들과 더 유사하죠. 그래서 자연, 놀이, 자유로움, 자율성, 존중, 믿음, 위험을 통한 성장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스러운 과정을 모두 파괴하는 듯합니다. 학습, 반복, 질서, 안전, 위생, 통제, 규칙, 유행 등이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학부모들이라면 뉴질랜드 어린이집 위생상태를 먼저 비난할 것입니다. 뉴질랜드 학부모나 아이들은 더러운 매트 위를 맨발로 다녀도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두 나라가 서로 무엇을 우선시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뉴질랜드에서 제가 가장 좋아했던 문화는 바로 사소한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길을 걷다가도 눈을 마주치면 주저 없이 'hello'를 건네줍니다.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들에도 'Thank you'와 'Sorry'로 감사함과 미안함을 표현해 주죠. 버스를 내릴 때마다 승객들이 외치는 "Thank you, driver"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네요. 어린이집에서 일을 할 때 아이들이게 정말 질리도록 "Thank you"와 "Sorry"를 가르쳐 줍니다. 아이들의 부모님들도 지속적으로 가르쳐 주고요.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됐을 때 자연스럽게 이 표현을 쓸 수 있게 됩니다. 아마 일상생활에서 이런 사소한 표현들이 주는 행복을 느껴보셨을 겁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이런 사소한 표현들로 훨씬 부드러워질 수 있는 것이죠. 사소한 말 한마디로 우리 삶에 인간미를 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일하다 보면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표현을 제대로 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주 사소한 예의조차 지킬 줄 모릅니다. 선생님에게 물건을 건넬 때 한 손으로 주거나 출석을 부를 때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채 대답을 합니다. 고학년인데도 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우리나라는 학교에서 이것조차 '사소한 예절'이라는 교과목으로 만들어야 교육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배워야 할 소중한 가치들이 더 이상 중요시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뉴질랜드에 있을 때 만 4세 아이들 중 자기 이름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어요. 알파벳을 제대로 아는 아이도 거의 없었고요. 제가 가끔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알려주고 이름을 알려주면 신기하고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죠. 알파벳을 굳이 학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놀이로 끝난 것이죠. 그리고 그런 교사들의 태도와 어린이집 분위기에 대해서 학부모들은 전혀 불만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냥 저에게 아이에게 알파벳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칭찬해 줄 뿐이었습니다. 강제적 학습이 아이들의 호기심과 학습에 대한 동기를 죽인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죠. 저희 부부는 아이가 흥미를 느낄 때까지 글자를 가르쳐 줄 마음이 없습니다. 흥미를 갖고 시작해도 학습으로 나아가지도 않을 것이고요.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리고 즐겁게 익힐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4세 고시니 하는 것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납니다. 왜 아이들을 그렇게 사지로 몰아넣어야 하는 걸까요.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아이들인데도 왜 한쪽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뉴질랜드 어린이집은 일주일에 20시간만 무료로 아이들을 보육해 줍니다. 그 시간이 넘으면 돈을 지불해야 하죠. 처음엔 뉴질랜드처럼 복지가 좋은 나라가 왜 이렇게 인색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그 이유를 알겠더군요. 아이는 부모와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보육자로서, 교육자로서 부모는 어린아이를 돌보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아이의 주된 돌봄은 부모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런 의미로 뉴질랜드는 최소한의 보육만 나라에서 지원해 주는 것 같습니다. 아이와 부모가 더 있도록 하기 위해서요. 그게 더 자연스럽고 맞는 행위니 까요.
우리나라는 모든 교육과 양육을 외주로 맡기려는 것 같습니다. 부모는 돈을 벌고 아이는 기관이 키워주길 바라죠. 보기엔 아주 정교하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교육과 성장은 효율성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과 인간성이 바탕이 되어야 하죠. 돌봄, 늘봄, 3시 하교, 학원 뺑뺑이 이런 건 교육이 아닙니다. 방치고 책임회피입니다. 왜 우리나라는 아이들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기계처럼 다루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가족이 기꺼이 보살펴야 할 소중한 생명체입니다. 저희 부부는 '돈'이라는 가치를 포기하면서 아이를 3년 동안 가정보육했습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뉴질랜드에서 배운 바를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에 어린이집에서 시간을 보내던 아이들의 슬픔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명과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지식이 진보됐어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지켜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았고 앞으로 더 많은 세월 동안 살아남을 본질적인 가치들이죠. 금방 사라질 것들이 아닌 오랫동안 이어져 온 가치들의 중요성을 잊으면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서 그 중요한 가치들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인류가 지켜온 소중한 가치를 최신 과학, 교육 트렌드, 실험적 교육 따위와 교체시켜선 안됩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호기심을 갖고 성장해야 합니다. 때론 실패하고 좌절하며 일어서는 방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과 올바르게 소통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뉴질랜드에서는 여전히 인류에게 중요한 가치들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전수해주고 있죠. 제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맨발로 나무를 오르고 들판을 뛰어다니고 온몸에 흙을 바르고 바다에서 수영하는 모습을 그립니다. 그렇게 지혜롭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