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저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까지 모두 방학을 했습니다. 어린이집은 방학이 따로 없지만 저희 부부의 방학에 맞춰 아이에게도 긴 방학을 선물했지요. 최근 제가 zoom으로 연수를 듣고 있는 바람에 세 식구는 꼼짝없이 집에 갇혀 있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당연히 삼시 세끼를 집에서 다 챙겨 먹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삼시 세끼로만 최고의 예능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집밥'을 짓는 행위에는 상당한 서사가 담겨있습니다. 하지만 예능 찍는 일이 아니고 서야 삼시 세끼를 다 차려먹는 건 미련한 짓처럼 느껴집니다. 아이에게 책도 읽어주고, 집안일을 하고, 연수도 들어야 하니까요.
어렸을 적 배달음식 먹거나 외식을 한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바깥 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엄마의 강박 때문인지 아니면 돈을 아끼려는 근성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항상 집에서 밥을 지어 식구들을 먹였습니다. 그런 엄마의 노력 덕분에 밥은 집에서 해먹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제 몸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아내도 똑같더군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도 웬만하면 집에서 밥을 지어먹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풀이 포함된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는 아내의 집요함이 바깥 음식을 먹고 싶은 제 욕망에 브레이크를 걸어줍니다. 특히 아이의 똥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강제로 집밥 처방이 이뤄집니다.
하지만 결국엔 바깥 음식의 유혹에 자주 넘어가곤 합니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맛과 편리함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돈으로 시간과 서비스를 살 수 있다는 건 자본주의 가장 큰 매력이자 혜택이지요. 게다가 나라에서 제발 밥 좀 사먹으라고 용돈까지 주니 배달을 안 시키고는 못 배기겠더군요. 우리는 바깥 음식 안 먹는 편이라고 유난스레 혼잣말을 하며 쿠폰을 잔뜩 먹인 치킨을 주문합니다. 한 번만이 두 번만이 되면서 배달의 민족 앱을 기웃거리며 할인 쿠폰을 찾는 횟수가 점점 늘어갑니다. 아내는 그런 저를 볼 때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과장되게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저의 한심한 모습을 농락하는 그녀만의 제스처지요.
몸이 편하고 음식이 자극적으로 변할수록 이상하게 집 안은 점점 먼지가 쌓이고 온기가 사라집니다. 마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처럼 말입니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 행위는 귀찮은 일이지만 우리의 삶에 따뜻함을 채워주는 종교 의식을 닮았습니다. 부지런히 재료를 골라 손질하고 요리를 해서 완성된 음식을 먹고 다시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은 제 몸과 마음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배부른 몸으로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를 마치면 어느새 몸은 가벼워집니다. 깨끗이 빤 행주로 주방 곳곳을 훑으며 제 마음속 찌꺼기들도 함께 벗겨냅니다. 식재료를 전부 털어 텅 비어버린 냉장고를 보고 있으면 그동안의 죄가 씻겨 나간 듯 몸과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고통 뒤에 달콤함이 온다는 옛말은 틀린 게 하나 없습니다.
어렸을 적 엄마는 식구들을 위해 모든 음식들을 만들고 뒷정리까지 홀로 하셨습니다. 식구들은 그게 엄마의 역할이고 의무라고 생각했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요. 가끔 선심 쓰듯이 설거지를 대신해 준다던가 가끔은 누나가 약간은 실험적인 음식을 만들어 식구들의 입을 놀라게 해줄 뿐이었습니다. 엄마는 불평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좋은 카르마를 쌓는 수행자처럼 묵묵히 부엌 일을 하셨죠. 이제야 그게 얼마나 힘들고 대단한 일인지 새삼 놀라곤 합니다.
엄마의 노력과 상관없이 엄마의 음식을 평가하는 가족은 늘 엄격했습니다. 아빠는 항상 음식의 싱겁고 짠 정도를 흑백 요리사의 심사위원처럼 정확히 진단하고 지적하곤 했었죠. 초딩 입맛이었던 저는 건강한 나물 반찬이 올라오면 대놓고 짜증 내며 시위라도 하듯 젓가락을 대지 않았습니다. 입맛에 맞는 몇 가지 반찬만 골라 먹거나 그마저도 없다면 건더기를 골라낸 찌개 국물에 밥만 말아 먹었습니다. 때론 먹을 게 없다는 핀잔을 늘어놓으며 혼자 라면을 끓여먹는 기행을 저질렀습니다.(금쪽이 맞습니다.) 엄마는 "이게 얼마나 맛있고 몸에 좋은데, 이걸 안 먹냐?'라고 말하곤 버려질 위기에 처한 반찬들을 본인의 입속으로 구원하며 연신 "맛있다."다는 소리를 늘어놨습니다. 지금은 그게 습관이 됐는지 밥 먹을 때마다 그 소리를 하십니다.
나이가 드니 엄마의 행동이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이젠 엄마가 해주던 수많은 나물 반찬과 건강식이 맥도날드 보다 맛있습니다. 건강에 좋은 건 덤이고요. 나이가 든다는 건 엄마, 아빠가 즐겨먹는 음식을 저도 즐길 수 있게 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되니 왜 그렇게 엄마가 건강한 음식들을 저에게 먹이려고 집착했는지 알겠습니다. 건강한 음식이 제 아이의 몸과 영혼을 살찌울 수 있을거란 상상을 합니다. 맛있다고 엄지라도 치켜세워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죠. 아내는 아이의 먹방보다 재미있는 건 세상에 없다고 합니다.
밥 한 끼를 만드는 지루한 육체노동과 건강한 집밥에 대한 찬양은 엄마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서야 저는 그 삶을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삼시 세끼를 본인의 손으로 거뜬히 해냈던 엄마만큼 부지런하게 살 자신은 없지만 조금이라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배민을 켜는 유혹을 이겨내고 주방에 들어가 칼을 잡습니다. 조금만 더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면 우리 가족의 삶에 엄마가 끓여준 된장찌개 같은 고소한 향기와 따뜻함이 뭍어날 것입니다. 통장 잔고도 지킬 수 있고요. 안타깝게도 오늘 저녁은 포장한 순댓국을 먹었으니 내일부터 다시 시작입니다.(최미삼 순댓국 강추입니다.)
그런데 삼시 세끼 엄청 건강하게 집밥으로 챙겨 먹으면 자극적인 간식이 미친 듯이 땡기는데, 저만 이런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