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think your child will go to college?"
"Probably not"
최근 샘 알트먼이 한 인터뷰에서 자녀를 대학에 보낼 거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혹자는 돈도 많으니 굳이 자녀를 대학에 보낼 필요가 있겠느냐는 단순한 논리로 접근할 수 있지만, 이 질문과 답변은 생각보다 시사하는 바가 큰 것 같습니다.
샘 알트먼은 chat GPT를 소유한 Open AI의 설립자이자 최고 경영자입니다. 그만큼 AI 산업의 현 상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기술이 유기적인이고 복잡한 현실 세계에 어떻게 녹아들고 어떻게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를 예상하는 건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AI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면 그만한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AI가 발전하면서 많은 직업군이 영향을 받고 있고 앞으로도 받을 거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현실은 이보다 더 가혹해 보입니다. 의사 같은 전문직 분야에서도 이미 AI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완벽하게 고난도 수술을 성공시키거나 환자의 초기 정보만을 갖고 AI가 진단한 정확도가 실제 의사들이 협력해서 내놓은 결과보다 무려 4배 더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AI 활용이 전체 의료비의 25%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연구도 고려하면 의료시스템 전반적인 개혁은 시간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의대에 미친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좋은 소식이 아닌 것 같습니다.
AI가 사실상 어디까지 발전하고 우리의 세계를 어떤 식으로 재구조화할지는 상상하기조차 버거워 보입니다. 긍정적인 미래를 예찬하던 샘 알트먼도 이제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식의 답변을 내놓기도 했죠. 생산성의 향상, 과학 기술의 발전처럼 AI가 우리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낙관론은 존재하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장밋빛 미래만 그릴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많은 AI 기업가들의 예상대로라면 극소수의 천재와 AI 기업만이 생산을 할 수 있는 세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소득으로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기본소득으로 살아가는 세상은 유토피아라기보단 디스토피아에 가깝습니다. 물질과 콘텐츠를 소비하며 즐기는 삶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사육장에서 길러지는 가축보다 훨씬 복잡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고통을 인내하며 실력을 키우고 꿈을 실현하며 성취감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일을 통해 사람과 연결되고 사회에 기여하며 살아있음을 느끼고요. 일과 사회적 관계는 생각보다 개인의 삶에서 꼭 필요하다는 걸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편안함과 도파민이 우리 삶을 잠식할수록 터져 나오는 문제들을 우리는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습니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샘 알트먼이 왜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고 하지 않을까요? Superintelligence(초지능:인간의 두뇌 모든 영역을 압도하는 인공지능)의 출현이 가시화된 시대에서 지식과 기술을 학습하여 일자리를 얻기 위해 대학교육을 받는 행위가 불필요해진다고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초지능의 출현과 이에 따른 변화를 피할 수 없다는 게 AI업계의 정론인 것 같습니다.
AI의 발전은 직업 생태계의 변화를 넘어서 인간 실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기계(AI)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환경에서 인간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 고민은 지금 커버린 성인들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필요하고요. 지금 당장 아이들을 학원 뺑뺑이 돌리면서 사교육에 돈을 쏟아붓고, 의대 입학반을 기웃거리는 행위가 과연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강제적으로 인간 실존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변화 속에서 우리는 같은 고민을 해왔지만 지금의 변화가 불러오는 속도와 충격은 과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샘 알트먼은 요즘 아이들이 쇼츠와 같은 짧은 동영상 피드로 도파민에 중독되고 있는 모습에 큰 우려를 표했습니다. 이런 단순하고 중독적인 행동이 아이들의 뇌를 아주 깊은 수준까지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죠. 맹목적인 학습에 대한 추종, 도파민 자극의 범람, 수동적인 태도는 요즘 아이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인간의 존엄성과 실존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이제는 그동안의 관성과 변화에 대한 맹목적인 수용에서 벗어나 각자에게 필요한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샘 알트먼이 말했듯이 "우리 자신의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 주인공으로 느낄 방법"을 찾기 위해서 말이죠. 잠시 멈춰 내가 하는 행위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