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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 소음과 인간 군상

by 삽질

4년 전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습니다. 뉴질랜드에서 돌아왔을 때 곧바로 지금 아파트에 올 수 있는 상황이 안됐습니다. 아내가 근무하는 학교 근처 원룸에서 반년 정도 살아야 했습니다. 원룸에 살았기 때문에 세간살이라곤 이불과 옷가지 그리고 냄비 따위가 전부였지요. 그래서 지금 아파트로 이사 올 때 이삿짐센터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크기가 제각각인 여러 개의 쇼핑백에 온갖 잡동사니를 담아서 몇 번만 나르면 됐으니까요. 늦은 밤, 밤 고양이처럼 조용히 새 집에 입성했습니다. 이삿짐을 옮기다 엘리베이터에서 처음으로 만난 이웃 주민이 멀리 캠핑 다녀오시냐고 묻더군요. 원룸 생활이 캠핑이랑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진짜 내 집에 들어오니 무척 좋았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결혼 2년 반 만에 혼수용품을 마련하면서 제대로 신혼생활을 즐길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아내는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안정감에 크게 만족했습니다. 임용고시 때문에 제 마음 한편에 무거운 돌멩이 하나만 얹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외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습니다.


방학 중인 8월에 이사를 온 탓에 저희 부부는 여유가 많았습니다. 매일 동네를 산책하고 필요한 물품을 사느라 아파트 안팎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바로 윗집 아줌마를 만났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아랫집 이웃에 살짝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더군요. 이어서 저희가 집 주인인지 그리고 집에 애들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저희는 집 주인이고 애는 곧 태어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첫 질문 치곤 조금 파격적이었지만 어쨌든 살갑게 반겨주시니 나쁠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좋은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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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고 윗집에 남자아이가 산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남자아이는 본인의 존재를 직접 드러내지 않았지만 다양한 단서로 그의 특징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녀석은 방학 숙제로 달리기 연습을 해야 하는 건지 집안에서 체육활동을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목청이 낼 수 있는 데시벨의 한계라도 측정하듯 굉음도 자주 질렀죠. 처음 겪는 일이라 살짝 당황했지만 일단 웃어넘기려고 했습니다. 하루는 "쿵'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저희 부부 모두 잠에서 깬 적도 있습니다. 한밤중에 침대 밖으로 제자리멀리뛰기를 한 모양입니다. 안방이 아이의 주 활동 무대인 듯했습니다.


층간 소음을 겪고 나니 윗집 아줌마가 처음에 저희에게 했던 질문과 지나친 환대의 진의를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제게는 불필요한 질문이었지만 아줌마에겐 꼭 필요한 질문이었던 것이죠. 제가 집 주인인지, 세 들어 사는 사람인지 혹은 자녀가 있는지에 따라 층간 소음에 대한 본인의 미안함과 제 이해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이가 있다면 혹은 세를 살고 있다면 본인은 덜 미안하고 저는 더 이해할 거란 생각을 한 듯합니다. 엉켜있던 퍼즐의 조각이 맞춰지니 윗집 아줌마의 친절한 태도가 불쾌하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하지 못한 이기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냈습니다. 아내는 참을성이 좋고 감각이 무던한 편이라 그런대로 잘 견뎠습니다. 문제는 저였습니다. 저는 작은방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고 평소에도 소리나 냄새에 조금 예민한 편이었거든요.(지금은 둔해졌습니다.) 억지로 공부하기 위해 귀에 이어 플러그를 박고 있어도 벽을 타고 내려오는 발망치 소리와 가구가 끌리며 만드는 진동을 막아주진 못했습니다. 공부를 하다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결의에 찬 눈빛으로 아내에게 윗집에 다녀와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의 굳은 의지를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입을 꾹 닫은 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저는 현관을 나가 비상등 문을 열고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습니다. 슬리퍼가 차가운 콘크리트 계단에 부딪치는 소리가 아파트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할지 미리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의욕과 불편한 감정이 앞섰습니다. 윗집 현관문 앞에 도착해 벨을 눌렀습니다. 갑자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습니다. 준비 없이 사람들 앞에서 발표라도 해야 하는 사람처럼 긴장감이 폭풍처럼 몰려왔습니다. 심호흡을 하며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습니다. "긴장하는 모습만 안 걸리면 돼."


인터폰으로 아이의 해맑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세요?"

"응, 아랫집 아저씬데, 혹시 어른 계시니?"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차분했습니다. 자연스러웠습니다. 대뜸 아줌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인터폰으로 작게 새어 나옵니다.

"아씨, 네가 나가봐" 성깔이 보통이 아닌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인터폰이 꺼지고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옷을 갈아입고 있는 모양입니다. 짤랑하는 풍경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머리가 뽀글 한 메마른 아저씨가 웃는 얼굴로 나왔습니다. 머리가 뽀글 한 팬티 바람의 아이가 고개를 기울여 아빠 뒤에서 저를 빼꼼 쳐다봅니다. 순간 아빠와 같은 미용실에 다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씩 웃고 있는 얼굴이 귀엽기보단 얄미워 보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쯤으로 보이는 저놈이 범인임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아저씨가 먼저 선수를 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를 10시 전에는 재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아 네, 조금 많이 시끄러워서요. 조금만 조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난번에는 쿵 소리에 저희가 잠에서 깬 적도 있고, 아내가 지금 임신 중이어서...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언제쯤 그런 쿵 소리가 났었죠?"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자다가 그런 일이 있었어요. 언제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갑작스런 취조에 말이 살짝 세게 나갔습니다.

"아, 그렇군요. 조심하겠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몇 마디 대화를 나누고 다시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충동적인 행동이었지만 크게 불편한 상황 없이 잘 마무리가 되어서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층간 소음이 생기면 경비실에 연락해 층간 소음 안내방송을 하는 게 일반적인 대처 방법이라는 사실을 당시엔 몰랐습니다. 나중에 주기적으로 흘러나오는 층간 소음 안내방송을 들으며 혼자 깨닫게 됐지요. 층간 소음으로 죽고 죽이는 일도 벌어지는 마당에 한밤중에 윗집에 올라간 건 섣부른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윗집 녀석은 제가 자기 집에 함부로 올라온 게 마음에 안 들어서 더 큰 소리를 내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더 예민해진 건지 분간이 안됐습니다. 원래 사람은 한 가지에 꽂히면 더 집중하게 되고 더 예민하게 변하는 법이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저의 온 신경은 윗집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을 찾기 위해 작동하는 레이더가 됐습니다. 환청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다시 찾아가는 건 서로 불편할 것 같아 부탁하는 말을 최대한 예의 바르게 포스트잇에 적어 윗집 현관문에 붙여뒀습니다. 혹시 몰라 아이들의 키가 닿지 않게 높은 쪽으로요. 아들 둘을 키우는 아주머니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니 매트를 깔거나 책상과 의자 다리에 소음방지 스티커라도 붙여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무례한 내용은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줌마의 생각은 달랐나 봅니다. 며칠 뒤 1층 로비에서 만난 아줌마는 첫 만남에서 보여줬던 환한 미소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굳은 표정으로 저희를 모르는 사람 취급했습니다. 한마디로 완전히 쌩을 까시더군요. 저는 꿋꿋하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고개는 반대 방향으로 고정시킨 채 마지못해 "네~"라는 응답을 해 줄 뿐이었습니다. 사람과의 갈등이나 불편한 상황을 본래 싫어하는 저는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반면에 아내는 아줌마의 태도가 어이없다고 했습니다. 대화할 생각은 안 하고 본인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삐진 사람처럼 행동하는 건 어린애들이나 하는 짓이니까요. 그 뒤로도 저희 부부는 계속 먼저 인사를 드렸지만 아줌마는 시종일관 뻣뻣한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아쉬울 것 없는 저희도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어 인사하는 걸 그만뒀습니다.


그 집 아들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볼 때마다 몹시 얄밉더군요. 사실 첫째는 죄가 없습니다. 범인은 둘째 놈이었습니다. 첫째 아들은 처음에 저희가 말을 거니 기죽은 표정으로"제 동생이 장난이 심해요."라는 말을 했습니다. 말썽쟁이 동생 탓에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닌 듯한 반사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오히려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반면에 둘째 놈은 위풍당당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둘째가 하고 다니는 짓을 보니 기가 막였습니다. 친구들에게 쌍욕은 기본이고 놀다가 마음에 안 들면 소리 지르고 축구공을 멀리 차버리기 일쑤였지요. 금쪽이가 확실해 보였습니다. 부모님이나 담임선생님이나 속 좀 썩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쪽지 사건 이후로 저는 두 번 다시 윗집을 찾아간다던가 경비실에 연락해서 방송 좀 해달라는 일을 따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말해봤자 감정만 상할 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층간 소음으로 불쾌한 적이 많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다행히 층간 소음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아이의 상태가 많이 호전됐는지 아니면 약을 먹는지 알 도리는 없지만 저희로선 잘된 일이지요. 엊그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데 윗집 둘째 놈이 또 소리를 지르고 있는 걸 봐선 완치는 안된 것 같습니다. 양심은 있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고개를 내리깔고 얌전한 척을 합니다. 만날 때마다 한 소리 하고 싶은 욕구가 턱 끝까지 차오르지만 괜히 문제 만들기 싫어서 참습니다. 옛날이었으면 동네 사람들에게 전부 한 소리 듣고 지금쯤 정신 차렸을 텐데 세상이 참 팍팍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다 아무도 애한테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하게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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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아들 놈과 집 앞 호수 공원을 산책하는 데 다리 밑 농구장에서 운동하고 있는 첫째를 봤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땀 흘리는 모습이 보기 좋더군요. 새로운 모습에 그간 느꼈던 불쾌함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문뜩 저한테는 이상한 집안의 첫째 아들이지만 친구들에게는 분명 다른 존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은 꽤 괜찮은 학생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싫어하는 윗집 아줌마도 누군가에겐 굉장히 좋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반대로 그 집식구에게 저는 굉장히 성가시고 예민한 사람이겠지요.


달의 반대편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제가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척 제한적입니다. 사람은 제가 본 일부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척이나 어렵고 복잡한 존재입니다. 제가 보지 못하는 반대편에 그 사람을 훨씬 더 잘 설명하는 본질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을 바라볼 때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사람, 그 사람은 웃긴 사람이라고 단순화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은 좋은, 조금은 나쁜, 조금은 웃긴 성질이 한 데 어우러진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많은 보통의 인간 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과 상황이 다르다 보니 오해가 쌓이는 것이죠. 제가 싫어하는 상대방의 모습 반대편에는 생각보다 괜찮은 모습이 숨어있을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누군가에겐 미움받을 짓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니 괘씸한 윗집 아줌마나 금쪽이도 딱히 미워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다시 먼저 인사를 건넬 용기는 없지만 더 이상 쓸데없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는 생각이 듭니다. 윗집 아줌마도 절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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