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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유학원에 사기당한 썰

by 삽질

19년도에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기 위해 유학원을 찾아다녔습니다. 총 네 군데를 알아봤고 한 군데는 두 번을 방문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제가 유학원을 돌아다니면서 고려했던 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영주권을 딸 수 있는지였습니다. 당시에 저는 목수를 하고 싶었고 특히 가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뉴질랜드에도 cabinet maker(가구공)이라는 직업이 존재했지만 정보도 별로 없고 영주권을 따기에는 별로 유망한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유학원 입장에서는 본인들이 가장 잘 아는 분야들을 저에게 추천해 주더군요. 주로 carpenter(목수), 요리사 같은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A유학원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는 대학원에서 박사과정까지 공부만 하면 자동으로 영주권을 받을 수 있다고 저를 설득했습니다. 종합 대학 박사과정이 아니라 사설 대학?처럼 이민자들이 선택하는 학원 같은 대학에서 공부하는 거라 총 3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뉴질랜드 영주권은 포인트제로 운영이 됐는데, 공부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포인트를 다 모을 수 있다는 게 그들의 논리였습니다. 여러 유학원을 돌아다니며 지쳐버린 저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그들의 말을 홀랑 믿어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이미 뉴질랜드로 간다고 결정을 한 상태였기에 유학원 입장에서는 굉장히 설득하기 쉬운 고객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호갱이었죠. 그렇게 그들이 추천한 UUNZ대학교에서 입학에 필요한 어학코스를 수료하고 같은 학교에서 비지니스 전공으로 석사(level8)과 박사(level9)를 공부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A유학원 담당자 B는 어학코스 비용과 석사 비용을 미리 모두 송금해야 한다며 저에게 모든 금액을 일시불로 지불하라고 말해줬습니다. 아무런 의심없이 저와 제 아내가 다닐 어학코스 비용과 제가 다닐 대학원(level8) 비즈니스 과정 금액으로 3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입금했던 것 같습니다. 좋은 이민 코스를 안내해 준 그들의 호의가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뉴질랜드 입국 첫날 B가 연결해 준 C라는 한국 사람이 저희가 필요한 것들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은행 계좌 개설, 운전면허 신청, 중고차 구매, 식료품 구매, 숙소 등을 차례대로 안내했었지요. 숙소는 당시 2달 정도 집을 비운 한인 가족의 집을 단기 렌트하기로 했습니다. 그 가족도 A유학원을 통해 이민을 준비 중이었고 어학 점수를 따기 위해 필리핀에 잠시 나가 있는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하루 동안 C에게 도움을 받았고 저희는 수고비로 1000불을 지불했습니다. B는 나중에 자기가 1000불을 다시 페이백 해줄 예정이니 먼저 지불해 주라고 제게 부탁했습니다. 한창 큰돈을 쓰던 시기라 1000(80만 원) 불이 큰돈처럼 느껴지지도 않았고 다시 돌려준다니 알겠다고 했습니다. 왠지 C도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저희 부부는 UUNZ에서 어학코스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한국인, 중국인 그리고 인도인이 함께 수업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대부분 대형 유학원을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니 뭔가 이상하더군요. 아무도 대학원 등록금을 미리 지불한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어학코스 비용을 수업이 모두 종료한 후에 지불하기로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하더군요. B에게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돈을 환불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기억이 정확히 안 나지만 말이 잘 안 통했던지 직접 UUNZ 회계팀에 연락을 해서 제 등록금을 환불해 줄 것을 요청하고 제가 받은 등록금 영수증을 첨부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은 등록금을 받은 적도 없고 자기네가 발급한 영수증도 아니라는 겁니다. 위조된 영수증이었던 것이죠. 완전히 속았던 것입니다.


B에게 끊임없이 연락을 했습니다. 그리고 첫날 저희를 도와줬던 C에게도 계속 따져 물었습니다. C는 UUNZ에서 마케팅 업무 같은 걸 하는 사람이었고 꽤나 영향력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B와 C는 A유학원으로 찾아온 고객을 UUNZ로 보내서 서로 인센티브를 나눠먹는 한 패거리였던 것이죠. 저희 부부는 그런 희생양이었던 셈이고요.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 연락하고 따지면서 돈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런저런 변명을 하면서 돈을 돌려주는 것을 미뤘습니다. 느닷없이 자기가 지금 경찰서에서 무슨 조사를 받는다는 둥, 병원에 입원했다는 둥 하며 링거가 꽂힌 자기 팔을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더군요. 정말 찌질한 사기범의 뻔한 수법 같았습니다.


다행히도 결국엔 돈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환불 수수료 따위 명목을 거론하며 일정 금액을 제외하고 돌려줬던 같습니다. 사실 내지도 않아도 될 학비를 낸 것도 억울한데 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한 건 정말 화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이 사람들이랑 더 이상 엮기고 싶지 않은 생각이 더 컸습니다. 더러워도 그냥 빨리 끝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으니까요. 첫날 도와준 비용으로 줬던 1000불도 돌려달라고 하니 더 이상 답장을 하지 않더군요. UUNZ에서 만난 A유학원의 다른 고객과도 이야기를 했는데 미리 고객의 돈을 뜯어내고 부족한 현금을 돌려 막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을 냈습니다. 사실은 알 수 없지요. 하지만 분명히 저희에게 거짓말을 했고 가짜 등록금 영수증을 위조하는 행위는 범법행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악의를 가진 나쁜 사람이지만 쉽고 편한 길을 택하려고 한 제 잘못도 있습니다. 남이 한 말을 믿고 다 잘 되거라는 멍청하고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이죠. 큰 수업료를 치렀습니다. 이민은 인생을 걸고 하는 굉장히 큰 선택입니다. 누군가가 무조건적인 호의로 나를 도와줄 거라고 믿는 건 위험합니다. 유학원 말이 전부 진실이라고 믿는 것 자체가 이민을 갈 준비가 안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실 유학원 없이도 모든 걸 혼자 처리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혼자서 지지고 볶고 깨지는 과정을 겪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살이는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무너지기 마련이지요. 스스로 노력하되 유학원을 이용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을 때 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뒤로 저희는 뭐든지 직접 찾아보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다닐 대학도 직접 알아봤고 영주권을 따기 위한 방법도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유학원을 이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우연히 유학원도 모르는 저희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었고요. 뉴질랜드 초등 교사자격증 같은 것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모든 것을 한국에서 결정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직접 가서 경험하면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러니 부딪혀 보세요. 생각보다 길은 많습니다. 어쩌면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길을 만들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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