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름휴가로 강릉을 다시 찾았습니다. 7월 말, 대한민국 국민 절반이 휴가를 떠나는 극성수기에 찾았던 영진해변으로 2주 만에 돌아온 것입니다. 입추가 지난 폐장 직전의 해수욕장을 방문했기에 혹시 춥지는 않을까 걱정이 살짝 됐습니다. 전보다 공기는 가볍고 서늘해졌지만 해수욕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돌아온 저희를 반겨주듯 날씨는 여전히 다정했습니다. 1정 연수를 받는다고 정신없었던 방학이었지만 연수를 사이에 두고 앞뒤로 강릉을 찾으니 제 뇌는 유쾌한 착각을 합니다. 마치 방학 내내 강릉에 있었던 느낌입니다. 아내가 항상 강릉 2주 살이 같은 걸 해보자고 꼬셨는데, 이번 여름방학은 이걸로 퉁쳐도 될 것 같습니다. 처음과 끝만 좋으면 중간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삶의 치트키를 깨달을 듯합니다. 개같이 살았어도 죽기 전 하루만큼은 아름다움으로 채울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았구나 하며 눈을 감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강릉에서의 일정은 2주 전과 똑같습니다. 해변에서 지칠 때까지 노는 게 유일한 계획이자 목표입니다. 하루 종일 바다 타령을 하는 저를 보며 아내는 언제부터 이렇게 바다를 좋아했는지 물어봅니다. 저도 왜 갑자기 바다가 이렇게 좋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뉴질랜드에 살 때 바다가 지척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웠던 Browns bay beach에선 단 한 번도 수영한 적 없지만 근처 Long bay beach에선 종종 해수욕을 했습니다. 자연인 마냥 야생적으로 살아가는 뉴질랜드 사람들의 모습을 동경하며 저도 그들과 섞이길 바랐습니다. 사각 트렁크만 걸친 채 비루한 몸뚱이를 햇볕에 그을리고 시원한 바닷물에 담금질하길 반복했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물과 기름처럼 그들의 풍경에 제가 잘 섞여 들어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남을 많이 신경 쓰는 제 성격 탓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당시 제 마음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함과 불편함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모방했던 즐거운 행위는 몸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좋았던 기억이 점차 무르익어 이제서야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다 풍경에 저를 온전히 던져 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제 마음과 생각이 그만큼 성숙하고 편안해졌다는 반증이겠지요.
아내는 물을 무서워합니다. 제 여자친구였던 시절 치앙마이 숙소 수영장에서 함께 물놀이를 한 것이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입수입니다. 그 후로 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 번도 물에 몸을 담그지 않았습니다.(발을 몸에 포함시키지 않는다면요.) 바다에 가서 수영하는 건 항상 저뿐입니다. 아내는 늘 그늘에 앉아 도도하고 우아하게 책장을 넘깁니다. 그런 아내 덕분에 제 사진을 많이 건질 수 있어 좋습니다. 아내가 저와 함께 수영하지 않아서 싫었던 적은 없습니다. 다만 혹시나 물에 빠졌을 때 스스로 빠져나오지 못할 아내가 걱정스러울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바다에서 함께 놀 친구가 생겼습니다. 제 아들 녀석입니다. 애들은 바다를 좋아하고 바다에서 노는 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고 좋은 활동입니다. 그래서 아들과 함께 놀아주는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냥 같이 놀고 있더군요. 여태 혼자만 놀다가 친구가 생기니 그렇게 바다가 재미있게 느껴졌나 봅니다. 정신없이 논 탓에 빠지 형님들의 우아한 구릿빛 피부를 얻을 수 있는 건 덤입니다. 조금 더 커서 같이 수영하고 서핑할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깔끔쟁이'였'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찝찝하고 번거로운 일들이 싫더군요. 저만의 추구미이기도 했습니다. 서장훈이나 노홍철처럼 깔끔 떨고 혼란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이 모던한 도시 남자의 멋을 보여준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연스러운 결벽 행위들이 삶의 자연스러움과 뜻밖의 행운을 망가뜨린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해수욕을 하며 불편해했던 햇볕의 따가움, 모래의 찝찝함, 바닷물의 비린내는 햇볕의 따뜻함, 모래의 부드러움, 바다내음이 될 수 있습니다. 불편하다고 생각하면 불편하겠지만 이 또한 즐거움이라고 여기면 즐거움이 되는 단순한 마법을 경험하게 됩니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저를 내려놓고 비울수록 더 많은 것들이 담깁니다. 저는 더 자연스러운 추구미를 향해 달려가 보려고 합니다.
휴가 둘째 날, 낮에 바다에서 진탕 놀고 숙소에서 낮잠을 잤습니다. 애가 아직 어려 낮잠을 안 자면 밤에 재앙이 일어납니다. 생각보다 긴 낮잠을 마치고 소화도 시킬 겸 저녁 산책을 나갔습니다. 아이스크림 하나 들고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해변에 오니 아이는 바다에 모래도 던지고 파도에 발도 담그며 장난을 치더군요. 옷이 조금씩 젖어 갔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옷 색깔이 점점 진해지더니 결국엔 엉덩이를 바다에 담가버리며 씩 웃고 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저도 소화 시킬 겸 웃통 벗고 그냥 물에 뛰어 들어갑니다. 해 질 녘 아들 놈과 계획에 없던 수영놀이가 시작됐습니다. 따뜻한 공기와 시원한 바닷물 그리고 노을. 강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그렇게 불현듯 만들어졌습니다. 계획은 편리하고 우연은 아름답습니다. 우연은 기억에 더 깊은 흔적을 남깁니다.
아들 녀석이 강릉에 몇 번 오더니 여기서 살자는 말을 합니다. 제 딴에 바다에서 꽤나 인상적인 추억을 만든 모양입니다. 다시 물어보니 진짜라고 합니다. 자고 일어나서 물어보니 집에 가서 책을 읽고 싶다고 합니다. 아직은 집이 최고지만 요지부동했던 마음에 약간의 균열이 생긴 듯합니다. 내년에 제주도로 갈 때 아들 녀석이 싫다고 할까 봐 내심 걱정이 됐는데,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천국 같은 제주 바다에 몇 번만 담가주면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