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수많은 교육(관련)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사로운 사건이라도 언론이나 어떤 단체에 의해 비중 있게 다뤄지면 곧장 교사들에게 새로운 업무가 전달되곤 합니다. 그렇게 하나씩 쌓이다 보니 지금은 매주 OOO 주간이라며 온갖 교육들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예방교육, 마약 예방교육, 정신상담 따위는 예전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꽤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학교에서 수많은 교육 활동 잔치를 벌일수록 소비자(학부모) 입장에서는 바람직해 보입니다. 빈 공간을 채울수록 사람들의 만족감이 커지는 것이 보통의 상식이 됐으니까요. 잠깐의 휴식시간에도 스마트폰으로 여백을 채워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추가적인 교육들은 과연 노력에 비해 실제 효과가 있기는 한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소비자의 기분을 만족시켜주는 서비스에 불과한 것일까요? 아니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실제로 많은 교육들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를 끼치고 있다고 합니다. 굳이 개입할 필요가 없는 일에 개입해 일을 키우는 셈입니다. 한마디로 긁어 부스럼, 전문적인 용어로는 의원성 질환이 학교 그리고 우리의 삶과 사회 곳곳에 만연합니다.
학생들 사이의 사소한 갈등이나 다툼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크고 작은 갈등은 학교를 벗어나더라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갈등을 해결하고 남을 배려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학교에서 제공하는 학교폭력예방교육은 아이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인이 기분이 나쁘거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교에서 배운 대로 학교폭력을 핑계 삼아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때문입니다. 그다음부터는 어른들(교사, 학부모)이 아이의 손과 발이 되어 모든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줍니다. 미국에서는 전문가가 약물 남용 방지 교육(DARE)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했지만 오히려 10대의 약물 및 알코올 사용을 '증가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애초에 마약에 관심이 없었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흥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어른들의 개입이 없다면 자연스러울 상황이 오히려 비정상이 된 것입니다.
육아와 교육은 누가 더 아이의 삶에 많이 개입하느냐의 게임으로 전락한 것 같습니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으면 다 큰 초등학생이라도 친절하게 밥숟가락을 입에 떠 넣어 줍니다. 부모는 노심초사 아이의 표정을 관찰하며 기분을 묻곤 합니다. 기분은 자유자재로 날뛰는 원숭이와 같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때론 기분이 나쁠 때가 있습니다. 기분이 나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금방 잊기 마련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하지만 왜 기분이 나빴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꼬치꼬치 캐묻고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곤 합니다. 아이들은 다시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감에 빠집니다. 자녀의 1년 치 예습 프로그램을 손수 작성해서 TV 나온 한 아버지는 다른 학부모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습니다. 아이의 몸에 실만 매달려 있지 않을 뿐 꼭두각시와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성적은 향상될지 몰라도 생존능력에는 치명타를 입을 것 같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참 건강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이어트나 건강에 좋은 식이요법, 건강 보조제, 운동방법, 전문가의 조언은 인스타 추천 피드에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실컷 술을 마시고 통닭을 뜯고 나서 죄책감에 샐러드를 양껏 먹곤 합니다. 몸에 좋은 영양제도 빼놓을 순 없지요. 몸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 것 같으면 병원에 찾아 전문가의 처방으로 몸과 마음에 안식을 얻습니다. 현대인들은 건강을 위해 끊임없이 몸에 무언가를 주입하고 테스트합니다. 이렇게나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씬 오래전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건강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예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비만이나 당뇨, 정신병으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은 어른들의 대화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입니다. 서점에서 경제경영과 자기 계발 매대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북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돈 버는 게 쉽지 만은 않습니다. 내 계좌는 최선의 노력과 최적의 전략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매번 파랗게 멍이 들어있습니다. 반면에 아무것도 안 하고 미국 주식 ETF만 무지성으로 구매한 무식한 친구 녀석은 통장 잔고가 두둑해졌습니다. 주식 차트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나와는 달리 한 달에 한 번 주식계좌를 확인하는 친구 녀석은 천하태평입니다.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정부와 중앙은행은 수많은 정책을 내놓으며 금융시장의 성장과 위험관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금융위기의 규모와 충격의 크기는 커져만 갑니다.
육아, 교육, 건강, 금융처럼 우리 일상과 관련된 대부분의 영역에서 우리는 긁어 부스럼 효과를 목격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더 많아질수록 전문가들은 한발 앞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다시 나섭니다. 압도적인 양의 전문적인 조언과 정보, 혹은 허황된 소문이 우리의 삶에 끊임없이 개입을 하고 여백을 메워줍니다. 여유 있게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에 너 나 할 것 없이 성급하게 달려듭니다. 우리의 삶은 출처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조각들로 오려지고 붙여진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개인의 삶은 망가지지만 파편화된 조각을 제공하는 누군가는 계속해서 배를 채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추가가 아닌 제거, 복잡함이 아닌 단순함, 성급함이 아닌 여유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진영(JYP)이 어느 프로에서 말했던 것처럼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 좋은 것들을 첨가하는 게 아니라 나쁜 것을 하지 않는 것이 현대인과 현대사회가 회복해야 할 미덕이 아닌가 싶습니다. 덕지덕지 살을 붙여나가는 기괴한 삶을 조형하기보단 덜어내고 깎아내어 우리의 삶을 가볍고 아름답게 바꿀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조금은 여유 있게, 조금은 단순하게, 그리고 자잘하게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실패를 온전히 이겨내며 살아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