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 아내와 다시 병원에 찾아갈 예정입니다. 일주일 동안 뱃속의 아이가 잘 자리잡았는지 확인하러 가는 것입니다. 아내는 일주일이라는 긴 시간을 참지 못하고 이틀 전에 집 앞에 있는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았습니다. 전화 통화로 결과를 알려준 아내의 목소리는 밝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잘 확인이 안됐고 피고임이 심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방향과 너무 다르게 흘러가는 시나리오와 아내의 담담한 목소리에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너무나 상심이 클 아내가 걱정됐습니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절대 자책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아이가 잘못된 건 절대로 아내 탓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보통 초기에 유산이 되는 건 태아의 염색체 이상이 만든 자연선택의 영역인 것입니다. 이유가 어찌 됐든 엄마로서 자식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스스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드리울 테지요. 몸속에 아이를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아빠로서는 감히 상상해 볼 수 없는 일이기에 이 정도의 위로가 최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옆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아내가 더 힘들어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잘 이겨낼 거라고 믿습니다.
세상 일이란 게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 유산 위기 앞에 서 있으니 살아가면서 우리 힘으로 온전히 해냈다고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위기나 실패를 겪었을 때만 비로소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함도 다시 느낍니다. 반대로 지금까지 제가 얻어내고 이뤄낸 것들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를 깨닫습니다. 건강하게 잘 태어나고 자란 첫째 아이처럼 말이죠.
살다 보면 순풍을 타고 멋지게 파도를 가르는 배처럼 어느 순간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만들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죠. 그 기간이 길진 않더라도 매번 이런 느낌이 들 때마다 인생은 참 살만한 곳이구나라고 만족해하곤 합니다. 최근 제가 그 순풍에 몸을 싣고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는 겸손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기 기만에 속아 실제 제 모습을 명확하게 돌보지 못했습니다. 자만심에 빠져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도 못했고 신뢰하지도 않았습니다. 신의 존재에 의문을 갖기도 했고 굳이 종교가 없어도 내 인생은 내가 잘 이끌고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신의 존재, 자연의 이치, 우주의 원리 따위처럼 세상에는 제가 통제할 수 없는 혼돈의 영역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자기 계발서의 내용과는 달리 저라는 하찮은 존재가 무질서하고 냉혹한 삶을 혼자 힘으로 헤쳐나간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신을 믿는 이유는 자신의 부족함, 나약함, 어리석음을 깨닫고 매일 조금 더 겸손하게 살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신의 존재는 꽤나 실용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가 종교를 갖겠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 어리석음과 부족함을 반성해 보고자 제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위험이 닥쳤을 때에만 진실을 볼 수 있는 제 간사함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죽을 때까지 수행하는 자세를 갖지 않는다면 인생의 순풍과 역풍 속에서 저는 매번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힘들게 살아가겠지요. 무질서함과 예측 불가능성이 인생의 본질이라면 자만심을 내려놓고 겸손하고 깨어있기 위해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도록 제 마음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명상도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아내는 오늘 병원에 가는 게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다는 말을 했습니다. 안 좋은 결과를 굳이 확인하러 가는 꼴이니까요. 글쎄요, 아직 결과가 완전히 정해진 건 아니기 때문에 좋은 소식이 들려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더 높은 확률로 안 좋은 소식도 기다리고 있겠지요. 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할수록 좋은 일들은 보너스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결과를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꼭'이란 건 애당초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길이 막히면 돌아가고 갈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가면 되겠지요. 잘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