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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지껄여라

by 삽질

아주 오랫동안 저와 함께 사는 녀석이 있습니다. 그 녀석은 하루 종일 저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지요. 게다가 끊임없이 헛소리를 지껄입니다. 그 녀석 말에 따라 기분이 하늘과 땅을 오가기도 하고 생각이 이리저리 원숭이처럼 날뛰기도 합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그 녀석은 자기 입맛대로 저를 주무르고 심지어는 많은 고통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를 쫓아낼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 녀석의 말을 아무런 저항 없이 듣고 때론 따르기도 합니다.

그 녀석은 제 안에 존재합니다. 아무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은밀한 곳에서 오직 저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잠에 들기 전까지 제 마음속 그 녀석은 닥치는 대로 말을 걸어옵니다. 찌뿌둥한 몸으로 아침을 맞이하고 있으면 일하러 가기 싫은 이유를 수십 가지 떠벌리고 있습니다. "어휴, 일하기 싫어. 빨리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 진짜 노예가 따로 없네.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면 재미있을까? 내년에 제주도에서 무슨 일을 하고 살까?"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몸은 더 무거워지고 기분은 더 아래로 가라앉습니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정 반대로 말을 걸어옵니다. "야, 그래도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 일어나서 활기찬 하루를 시작해 보라고.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라고 인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아들 녀석을 깨우러 갑니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아들 녀석을 보면서 그 녀석은 다시 지껄이기 시작합니다. "아휴, 왜 이렇게 안 일어나는 거야. 이러다 또 지각하겠네. 일 안 가면 아침에 여유 있게 애를 깨워도 될 텐데. 매일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게 마음이 아프네. 그래도 내년이면 아내가 휴직할 수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조금만 참자. 참 예쁘게 생겼다. 사랑해 아들. 그런데 이러다 늦겠다. 빨리 좀 일어나."

그 녀석의 지껄임은 안팎을 가리지 않습니다. 아주 찰나의 순간조차 입을 다무는 법이 없죠. 지나가던 사람들을 보면서 끊임없이 평가를 내리곤 합니다. "저 사람은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는 거야? 옷 멋있네, 어디서 샀을까? 너는 살 좀 빼야겠다. 어휴, 요즘 학생들 치마 짧은 거 봐라, 불편하지도 않냐? 핸드폰 좀 그만 봐라, 뇌 썩는다. 그나저나 오늘 날씨는 진짜 좋네. 와우 운동 많이 했나 보다, 옷 빨 좋네, 나도 저렇게 체격이 좋았으면 좋겠다." 즉각적인 주절거림은 여과 없이 제게 전달됩니다. 저는 이리저리 날뛰는 원숭이처럼 떠들어대는 헛소리를 그대로 듣고 느끼고 있습니다.

게다가 그 지껄임은 줏대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중인격장애도 이보다 나을 판입니다. "나한테 친절하게 인사하네? 저 사람 뭔가 예의 바른 사람인가 봐." 며칠 뒤 "뭐야 오늘은 왜 표정이 저렇지, 인사도 제대로 안 받아주네. 성격 이상한 사람인가. 자기 기분대로 행동하는 사람인가 보네." 며칠 뒤 "오늘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네. 맞아 원래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일 거야. 그날은 기분이 안 좋았나 보지.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 그저 자기 입맛대로 마음에 들면 칭찬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난을 곧장 쏟아내곤 합니다.

만약에 그 녀석이 내면에 존재하지 않고 실제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제정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병자, 사기꾼, 수다쟁이, 미치광이와 같은 말들을 모두 합쳐도 이 녀석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할 것입니다. 그 녀석이 실제 사람이고 매일 내 옆을 따라다니면서 끊임없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걸 누군가가 본다면 경찰에 신고를 안 하고는 못 베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내면에서 그 모습을 하루도 빠짐없이 목격하면서도 반항하기는커녕 순응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미치광이에 복종하는 저는 어쩌면 더한 미치광이가 아닐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 미치광이 녀석을 '나'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 녀석이 진정 '나'라면 우리는 그 녀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주체'여야 하지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지껄임을 우리는 객관적으로 알아챌 수 있습니다. 그 지껄임을 인식하는 주체가 비로소 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내'가 흔히 말하는 '자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아를 찾는 답시고 그 녀석이 만든 지껄임의 폭풍 속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하지만 진짜 자아를 찾기 위해선 그 폭풍에서 한 발짝 벗어나 그 폭풍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걸 바라보는 주체가 바로 자아가 되는 것이지요.

요즘 지껄임으로부터 한 발자국 벗어나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 녀석은 제가 아무리 닥치라고 소리쳐도 끊임없이 떠들어 댈 것입니다. 유일하게 그 녀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저 바라보고 대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음에서 벗어나 생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평화 속에서 고요히 앉아 있고자 합니다. 이 과정들이 반복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합니다. 세상의 안개를 걷어내고 더 또렷한 시선으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언젠가 진정한 고요함을 경험해 보길 기대해 봅니다.

(그런데 제가 무언가에 몰입했을 때 그런 고요함을 경험하곤 합니다. 몰입은 어쩌면 진정한 나를 만나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건, 나를 찾는 일과 다름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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