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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모든 게 사랑이었다.

은중과 상연, 2024

by 삽질

요즘 아내와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함께 보고 있습니다. 얼마 만의 '한국' 드라마인지, 얼마 만의 '연애물'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에 보는 '한국 연애 드라마'입니다. 아내가 보고 있길래 별생각 없이 옆에 앉았다가 제가 더 몰입하게 됐네요. 은중과 상연이 대학을 다니는 2001학년도는 제 대학시절(2005)과 그렇게 멀지 않아 더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진짜 옛날 사람이 맞긴 하네요. 그래도 그 시절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고 행복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야기는 두 사람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40대 초반까지의 시간을 다룹니다. 한 인간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꽤 오랜 시간입니다. 은중과 상연은 초등학교 시절 친한 친구 사이였고, 다시 만난 대학교에서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경쟁자이자 친구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직장에서 다시 만난 둘은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이가 됐고요. (스포) 하지만 상연의 시한부로 둘은 다시 재회하게 됩니다.

은중과 상연은 서로 다른 성격, 다른 성장 과정 때문에 똑같은 사건을 겪어도 해결하는 방식이 다릅니다. 은중은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이고 상연은 본인의 자존심을 지키고 상처를 피하기 위한 선택들을 해나갑니다. 작은 차이가 작은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들이 쌓여 결국에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죠. 삶의 지향점도 크게 달라지게 되고요. 우리 인생의 축소판처럼 보였습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았음에도 은중과 상연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 '사랑'입니다. 상학이라는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들은 좌절하고 성장하며 삶의 방향을 정해갑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사랑의 역할이 과장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삶을 돌이켜봐도 제가 인생에서 마주했던 굵직한 변화나 선택의 갈림길에서 제가 좇았던 건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파생된 다양한 감정들 속에서 저 또한 수많은 선택을 해왔습니다. 사랑의 힘은 절대 과장될 수 없습니다.

사랑이라 함은 단순히 20대의 풋풋한 연애만을 뜻하진 않습니다. 물론 사람을 향한 사랑만큼 인생에 가치 있는 건 없지요. 하지만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사랑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는 생각, 감정, 일, 이념 따위를 모두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을 좇아 우리는 사람을 만나고, 직업을 찾고, 꿈을 꾸고, 질투와 좌절 속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 눈물을 닦아주는 무언가의 손길에서도 사랑이 묻어있습니다.

어렸을 적 제게 사랑은 가슴의 두근거림과 같은 말이었습니다. 두근거림이 사라지면 사랑이 사라졌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제 사랑은 항상 짧았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불처럼 타오르는 사랑도 있지만 호수처럼 잔잔하고 편안한 사랑도 있지요. 따뜻한 사랑도 있고, 차가운 사랑도 있고, 목적이 없는 사랑도 있고, 목적이 있는 사랑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정말 모든 게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지켜야 할 사랑이 보입니다. 그 사랑을 좇아가며 저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시 겪어 갈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 그럴 것처럼요. 그 여정이 상연보다는 은중과 비슷했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에게 더 떳떳하고 더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에 상처받았던 사람들이 더 나은 사랑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상연이처럼 너무 아파하거나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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