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호수에 가면 오리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오리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잠바를 껴입고도 바들바들 떨면서 오리를 보고 있습니다. 저 오리들은 이 추운 겨울에도 닭살 하나 돋지 않고 발레를 하듯 여유롭게 물 위를 걸어 다닙니다. 저 작고 아름다운 생명체는 잠자리를 위한 비싼 아파트도 필요 없고, 동족의 털을 뽑아 만든 비싼 잠바도 필요가 없습니다. 마트에서 음식을 사 먹을 필요도 없이 차가운 물속에 깊이 잠수해서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해옵니다. 먼 길을 떠날 땐, 우아한 날개를 펴고 멋지게 날아오릅니다. 오리가 인간보다 낫습니다. 몇 년째 오리를 볼 때마다 이 소리를 해대니 아내가 '오리 이론'이라고 이름까지 붙여줬습니다.
<오리 이론 : 작고 귀여운 오리는 무해하고 강인하다. 반면에 인간은 유해하고 나약하다.>
전 염색을 안 하면 안 될 정도로 흰머리가 많습니다. 부모님의 흰머리 유전자가 아주 이른 나이부터 열혈 우성으로 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흰머리도 스타일리시하게 소화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염색을 안 하면 병약한 일본 할아버지처럼 보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머리에 염색약을 30분 정도 바르고 난 뒤, 화장실에서 최대한 쭈구리고 앉아 머리를 감습니다. 염색약이 사방으로 튀지 않게 하기 위해 머리를 거의 바닥에 닿을 만큼 숙여줘야 합니다. 머리에 물을 뿌리면 진한 갈색의 염색약이 거품을 내며 배수구로 빠져나갑니다. 아주 가까이서 더러운 염색약 물이 배수구로 흘러가는 걸 자세히 보고 있으니 죄책감이 몰려옵니다. '내가 뭐라고, 나 따위 하나 조금 멋져지자고 이 더러운 물로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란 인간은 지구에 별로 쓸모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뒤 머리를 다 감고 나와서 거울을 보니 염색이 잘 됐습니다. 뿌듯합니다.
일주일만 지나도 분리수거 용 쓰레기 바구니가 한가득입니다. 세 식구 사는 데 이렇게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희 세 가족이 이 정도인데, 우리 아파트 사람들, 이 도시의 사람들, 이 지구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짐작하면 아찔합니다. 마트에 가도 모든 물품들이 예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제품들의 예쁜 껍데기가 쓰레기가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우리가 조금 편리하게 살자고 하는 모든 행위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을 당연히 여기는 우리가 싫어집니다. 우리는 멈추지 못하는 폭주기관차에서 살아가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딱히 제 생활을 바꾸려고 대단한 노력을 하진 않습니다. 마음만 불편했지 전 게으르고 나약하고 변명도 잘하니까요. 오리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