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자라렴

by 삽질

아침에 일어나 아들 녀석을 깨우러 작은방에 들어가면 너무 커다래서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커다란 녀석이 사지를 쫙 벌리고 누워있는 걸 보면, 언제 이렇게 컸냐는 생각이 불쑥 듭니다. 얼굴은 또 얼마나 큼지막하고 통통한지 장군이 따로 없습니다. 곤이 자고 있는 녀석 뺨에 뽀뽀를 하고 억지로 껴안기를 시도하기라도 하면 온갖 짜증을 내면서 펀치와 발차기를 시전해줍니다. 커진 만큼 펀치력과 킥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서 막무가내로 덮친 꼴이니 적당히 맞아주고 후퇴를 합니다. 보고만 있어도 계속 안고 싶고 뽀뽀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가라앉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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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보고 사니 얼마나 컸는지 실감이 잘 안 나지만, 가끔 구글 포토에 뜨는 작년 사진과 비교하면 참 많이 컸다 싶습니다. 작년에도 참 많이 컸다 싶었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아기가 따로 없습니다. 그리고 또 2년 전 사진을 보면 그렇게 작고 귀여울 수가 없습니다. (팔불출 죄송합니다.) 그때만 해도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손이 참 많이 갔었는데, 지금은 친구들이랑도 잘 놀고, 자기 일도 잘하고, 말귀도 척척 알아듣습니다. 몇 년 고생하고 나니 이제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을 자세히 볼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학교 일이라는 게 참 정신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가끔 아이들이 활동하고 있을 때 자세히 보고 있으면 아들놈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작고 귀여운 어린이인데, 커다랗고 얄미운 초등학생이 될 생각을 하면 뭉클한 느낌이 듭니다. 제 앞에서 미운 짓 하는 학생들도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소중한 보석 같은 자식이라는 걸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립니다. 얼마나 많은 기대와 사랑을 받으며 커왔을지, 부모들의 눈에는 한없이 작고 귀여운 아이로 보일지 눈에 선합니다.


가끔 아들 녀석이 다 커서 성인이 되는 상상을 합니다. 우리는 어떤 사이가 될지, 상상하며 기뻐하고 슬퍼합니다. 저처럼 무뚝뚝하고 꽉 막힌 아들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 제가 아이에게 느끼는 사랑이 있기에,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아이는 이미 살아서 할 모든 효도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그걸로 충분히 풍족해졌습니다. 성인이 된 아이가 지금과 같길 바라는 건 어리석은 욕심이겠죠. 그때가 되면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잘 놓아주고 싶습니다. 저를 위해, 아들을 위해 그게 가장 맞는 일이니까요.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하면서 살고 싶습니다. 행동한 일에 생각을 맞추면서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금의 귀여움이, 아이의 사랑이, 아이의 따뜻함이, 아이와의 교감이 오래오래 지속됐으면 좋겠습니다. 조금만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습니다.


반성도 합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다 보면 그날의 일을 마치는 게 중요한 일이 되곤 합니다. 아침 일찍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하고, 돌아와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저녁밥을 먹고 씻고 잠을 잡니다. 기계처럼 하루를 보내면서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진심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교감하는 일은 뒷전이 되곤 합니다. 그런 제 모습에 아내가 서운함을 표할 때도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를 진심으로 돌보며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렇게 노력하면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의 길이도 정말 늘어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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