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수업을 하는 과학실은 방과 후 교실로도 사용됩니다. 오후 시간이 되면 방과 후 선생님들이 수업을 해야 되니 항상 자리를 비워줘야 합니다. 매주 다른 과목의 방과 후 선생님들이 오시는데 수요일은 요리 수업이 있습니다. 요리 선생님은 학기 초부터 저를 볼 때마다 공수를 하시고 허리를 90도 굽혀 제게 인사를 해주십니다. 가장 깍듯하고 바른 언어로, 조금은 쑥스럽게 인사를 하시고 항상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십니다. 극진한? 대접을 받기 때문에 저 또한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도와드리는 편입니다.
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선의를 보이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입니다.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주는 사람 또한 기분이 좋은 일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남을 대하는 공손한 태도를 학습할 수도 있지만, 사람의 성향에 따라 태도의 차이는 분명 존재합니다. 문화적인 이유도 있겠지요. 그런데 너무 공손한, 지나치게 예의 바른 친절은 오히려 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당사자도, 상대방도 말입니다.
인위적인 과잉 친절은 꽤나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입니다.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하는 건 항상 그만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까요. 요리 선생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제게 깍듯한 인사를 하는지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으로부터 보이는 약간의 긴장, 경직된 몸짓에서 소모적인 에너지가 느껴지곤 합니다. 선생님은 힘든 노력을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도 뉴질랜드에 사는 동안 과잉친절을 베풀며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언어 능력이 부족하니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무기는 밝은 태도와 미소 그리고 친절함이었습니다. 거의 예스맨으로 살았던 2년 동안 저는 그만한 보상도 받았지만 보상에 맞먹는 고통도 받았습니다. 점점 사람들을 만나는 게 더 피곤해지더군요. (원래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지만요.) 문화적인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저의 과잉친절을 조금 불편해하기도 했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저와 대화를 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친절한 편이라고 제가 말하자 아주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릴랙스하고 수평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인 뉴질랜드에서 저의 태도가 너무 딱딱하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이유가 어쨌든 인위적인 친절은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경험상 끝까지 할 수 없는 행위는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인간관계에서 좋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책임질 수 있는 선까지만 한계를 정해놓는 편이 모두를 위해 좋습니다. 그래야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친절하게 살려는 노력을 조금 내려놓았습니다. 물론 친절의 미덕을 너무 잘 알기에 항상 친절하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계' 안에서만 친절을 베풀고 주변 사람들도 도와주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겉으로 보이는 친절보다 중요한 건 내가 상대방에게 느끼는 마음가짐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태도가 아니라 내면의 마음가짐에 집중하면 태도는 자연스러워집니다. 행여나 겉으로는 툴툴거려도 좋은 마음가짐을 갖고 있다면 상대방에게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반대라면 오히려 해를 끼칠 것이고요.
누군가는 상대방이 극진한 친절함을 보였을 때만 제대로 대접받는다고 느끼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친절을 짓밟고 올라가 자신을 높이 세우려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갑질 문화입니다. 서비스 업에서는 과잉 친절을 디폴트 값으로 갖고 있기에 이제는 언어에도 존댓말을 쓰시고 '계십니다.' 서로에게 소모적인 과잉친절이 너무 일반적인 사회현상이 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냥 적당히 편하게, 여유 있게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를 배려하면서 살면 별문제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요리 선생님께서 부디 친절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너무 불편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눈인사 정도만 주셔도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항상 정중하고 친절하게 저를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