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고
제주도로 가는 집은 지금 집 보다 약 10평가량 작은 집입니다. 저희는 누구보다 짐을 많이 갖고 살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막상 10평이나 작아지는 집에 저희 짐을 옮기려니 생각보다 막막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래서 이참에, 다시 한번 비워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에 저희가 지금 사는 집에 이사 왔을 때 미니멀하게, 최소한의 짐만으로 살아가자는 다짐을 했습니다. 남들 다 사는 가전이나 가구는 최소한으로 사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결국엔 남들 하는 거 다 했습니다. 처음이니깐, 묶어서 사면 더 싸니까 같은 온갖 핑곗거리에 지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칭찬할만한 건 김치냉장고는 끝내 사지 않았다는 점뿐입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 침대도 살까 말까 오랫동안 고민하다 흐지부지하게 넘어갔습니다. 게으름은 소유욕을 버리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어쨌든 안 사길 천만다행입니다.
결국 처음에 사지 말자고 했던 침대를 처분하고 갑니다. 거의 헐값이 팔아버리는 침대를 보며 아내가 자꾸만 아쉽다는 소리를 하지만 이참에 내려놓는 연습, 비우는 연습을 제대로 할 생각입니다. 어차피 이사 가는 집에 침대를 둘 공간도 마땅치 않고요. 아내는 저희가 처음에 했던 말이 맞았다고 이제 와서 후회합니다. 가전이며 가구면 정말 최소한으로만 샀어야 했다고요. 좋은 배움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많은 짐들을 자꾸만 끌어안고 살게 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리정돈의 위한 수납장, 팬트리, 여유 공간은 그런 짐들을 더 끌어들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잘 정돈되고 효율적인 집일수록 많은 짐들을 쌓으며 살게 되는 것이죠. 일 년에 한 번쯤은 사용할 것 같은 막연한 바람이나, 버리기는 아깝고 남주기는 아쉬운 미련 때문에도 짐은 더 쌓여만 갑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것, 더 멋진 것, 유행을 타는 것들에 대한 욕망이 물건에 대한 집착을 만듭니다.
집에 있는 물건을 비워 갈수록 제가 가졌던 새것을 향한 욕심, 아쉬운 미련, 효율적인 공간의 역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뭔지도 모를 물건과,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물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낍니다. 앞으로는 정말 심사숙고해서 물건을 구매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모든 물건이 결국엔 쓰레기가 되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웁니다. 이사 가는 행위만으로도 많은 변화가 느껴집니다. 이래서 사람이 의식적으로 새로운 짓들을 많이 벌려야 합니다.
물건뿐만 아니라 제 안에 있는 욕심과 집착도 내려놔야 합니다. 제주도 집을 알아보기 위해 혼자 제주도에 내려갔을 때 마음이 심란하더군요. 지금 살고 있는 집, 환경과 제주도를 비교하고 있으니 도대체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하나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학교에서 그냥 편하게 일하고, 방학 때 여행이나 가고, 온갖 편의 시설이 코앞에 있는 동네에서 꿀 빨며 사는 삶이야 말로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인데 말입니다.
제주도를 내려가는 이유에 대해 사람들이 묻지만 솔직히 명확히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굳이 이유를 대라면, 아이 교육, 새로운 도전, 새로운 환경, 제주도에서 산다는 호기심 따위가 있을 것입니다. 제가 제주도로 내려가려는 이유들은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편안함, 안락함, 경제적 여유와는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제주도에서 마음은 편해지고, 몸은 날래질 것입니다. 전부 다 누리고 싶다는 욕심. 그것부터 버리지 않으면 제주도에서의 삶이 불행할 거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몸에 밴 습관을 버리지 못해 뉴질랜드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똑같은 실수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잔을 비워야 새로운 물을 채울 수 있습니다. 마음도 그리고 많은 물건도 조금씩 비우고 있습니다. 비우고 비우고 또 비우며 제주도에서 깊이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여행이나 체험이 아니라, 진심으로 제주도를 살아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