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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주 Apr 09. 2023

조향의 언어적 실험의 향방(1)


* 『조향전집1:시』, 『조향전집2:시론·산문』(열음사, 1994)를 대상 텍스트로 활용하였다. 시편은 모두 『전집1』에서 인용한 것이며, 본문에서는 작품명(발표연도), 쪽수만 표기하기로 한다. 그 외의 글들은 『전집2』를 참조했고, 본문에서는 작품명, 수록지면, 연도, 『전집2』, 쪽수 순으로 표기하기로 한다.




   1.      

   

   인간은 상상력에 기반해 창조적인 예술작품들을 창안해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예술을 통해 인간은 자기를 변형시키고 지금과는 다른 세계를 꿈꾼다. 문학과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세계에의 동경은 필수불가결하다. 한국의 시사(詩史)에서 조향(1917~1984) 또한 그러한 존재론적 변용과 함께 다른 세계를 창조하고자 했던 시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향은 한국 시단에서 초현실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그는 해방 이전까지는 일본 문단에서 활동했지만, 이후에는 〈후반기〉 동인 및 〈초현실주의문학예술연구회〉, 일명 아시체(雅屍體) 그룹을 중심으로 문학 활동을 전개하면서 시사에서 몇 안 되는 초현실주의자 계보에 놓여 있다. 그러나 계보라 할 만한 연속성을 가진다고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문단의 한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다고 표현해야할지도 모른다. 요컨대 현실에 천착해 깊이있는 통찰을 보여주는 것도, 모던한 감각으로 언어의 통념을 파괴하는 것도 아닌 자리에 초현실주의가 놓여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에서 그가 점한 위치를 드러내준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현대시의 반란을 끊임없이 시도했던 시인이라는 점에서 후자에 속하는 일군의 작가들과도 관련을 지닌다. 초현실주의에 몰두하던 1960년대에 쓴 글 「현대시론(초)」에서 조향은 “여태까지의 낡은 언어 결부 방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실험’해 보는 데서 시인은 출발해야 한다. 이러한 초보적인 실험에서 점점 어려운, 복잡한 단계에로 나아가야 한다”(「현대시론(초)」, 『대학국어』, 1966년, 『전집2』, 138-139쪽.)고 선언하고 있다. 이 한 마디만 보더라도 시 창작에 있어서 그에게는 새로운 방법론, 언어적 실험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말이 제 본래의 생생하고 발랄한 감각을 마멸당해 버리고, 지극히 일반화 평범화해 버리는 것”을 두고 “말에 때가 묻는다”고 표현했다. 이를 “말의 개념화”라고 규정하며 이와 같은 범속한 언어를 사용하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시인들은 새로운 언어의 결부 방식을 항상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그럴 때에 “생생한 이마아쥬”가 “창조”된다. 그와 같은 반란의 선두에는 이탈리아 미래파가 존재한다.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람이고 그것을 창조해 나가는 것도 인간이기 때문에, 항상 역사의 첨단에 서있다는 의식과, 항상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는 의식을 우리는 가진다. 역사를 창조하는 덴 언제나 혁명과 실험이 있어야 한다. (「현대시론(초)」, 앞의 책, 148쪽.)       


   미래파, 입체파, 초현실주의, 다다 등의 조류를 수용한 조향은 전위적인 언어 실험을 시도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데에 열중해 있었다. 그것은 소위 초현실주의, 네오 쉬르리얼리즘이라는 사조에의 추구로 일컬어진다. 그러나 독자적으로 행해지는 실험을 개념화하려는 욕망은 합리적 이성의 관습 혹은 우리들의 독단일지도 모른다. 그의 실험적 행위를 무조건 옹호할 필요는 없지만 한편으로 그것을 특정 개념 혹은 사조가 지닌 잣대로 규정내릴 필요도 없다. 그러한 판단이 오히려 초현실주의(자)라는 굴레에 그를 속박시키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시도를 초현실주의적이라고 결론짓고, 실험의 성패여부를 성급하게 판단하기에 앞서 그 실험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행해졌는지를 파악해보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가 특정한 이론에 심취되어 있었다고 해서 그것과의 완벽한 일치를 성취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조향이 처한 특수한 상황들이 개입되면서 그들 이론과는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향이라는 시인, 그리고 그의 텍스트가 가진 어떤 특이성을 검토해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그는 역사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역사의 첨단에 서서 언제나 새로운 역사를 갈망했다. 새로운 역사를 향한 동경은 숱한 언어적 실험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그렇지만 그의 일생의 화두로 존재했다. 실제로 쓰여진 시편을 보면 그 불/연속성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조향 시편의 단속적인 면모들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고자 한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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