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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순주 Apr 09. 2023

조향의 언어적 실험의 향방(2)


   2.      


   조향을 떠올릴 때 거론되는 대표작은 「EPISODE」(1948)와 「바다의 層階」(1951)이다. 자신의 시론을 입증하는 데에 알맞은 텍스트로 스스로가 꼽은 시편이 「바다의 層階」이므로 여기에는 특별히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 시편만으로는 조향의 시세계가 온전히 설명되지는 않는다. 그는 본명 조섭제로, 스물한 살에 쓴 「初夜」(1940)가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삼석(三席)으로 당선되면서 문단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지만 그가 애인에게 쓴 장문의 편지가 일본 관헌의 검열에 걸려 문초를 받다가 추방당하게 된다. 마산으로 돌아와서 지내던 중 김수돈이 가지고 있던 《시와시론(詩と詩論)》이라는 잡지를 통해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를 접하고 흥미를 갖게 된다. 이 시기 기타조노 가츠에(北園克衛)의 저작 『하이브로우의 분수(ハイブラウの噴水)』를 통해 새로운 세계에 입문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영향 하에 해방 이전까지는 주로 일본 문단을 통해 시를 발표해 왔다. 특히 《일본시단(日本詩壇)》과 《시문학연구(詩文学研究)》라는 두 잡지에서 동인 활동을 하면서 조훈(趙薰)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기타조노의 권유로 《일본시단》 동인이 되었고, 발레리의 영향을 받은 가지와라 마사유키(梶浦正之)가 발행한 《시문학연구》에서도 동인 활동을 했던 이력은 이후 그의 시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사후에 간행된 『조향전집』에서는 동생 조봉제가 번역해서 실은 그의 시편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마산으로 돌아온 그는 건국준비위원회 내의 적색분자들과 투쟁하며, “민족진영의 시인으로서 좌계문인들과 맹렬히 싸웠다. 청년문학가협회 마산지부장, 문총경남지부 출판부장 겸 문학부책임위원 노릇을 하면서 좌계문인들과는 언제나 정면충돌이었다.”(「20년의 발자취」, 《자유문학》 1958년 10월호, 『전집2』, 42쪽.) 1946년에는 김수돈, 박목월, 김춘수, 유치환, 이호우, 서정주 등과 함께 시동인지 『로만파(魯曼派)』를 창간해 활동했다. 필명을 조향(趙鄕)으로 바꾸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그런 와중에 민족진영 시인들과 그들의 시에 염증을 느끼고, 이한직, 김경린, 박인환과 함께 1949년에 《후반기》 동인지를 창간한다. “《후반기》는 조판까지 다 마쳐 놓고 6‧25 때문에 녹아 버렸다. 동인회의 이름으로서만 〈후반기〉가 남아 있는 동안, 부산에서 이봉래‧김규동이 동인으로 가입했었다. (…) 정치 파동이 끝난 어느 날, 동인들의 의견 충돌로 말미암아, 부산 광복동 로오타리 옆, ‘온달’ 다방 추녀 밑에서 〈후반기〉는 해산”(「20년의 발자취」, 앞의 책, 42쪽.)되었다.      


밤의 검은 비단 자락이 

녹슨 鐵條網을 지나오면

집들의 덧문들은 굳게 닫히고……

별들의 葬送을 위한 구부러진 줄이 지나간다

조용한 발굽소리와 신비로운 노래의 가락!  

   

환상적인 왕래가 있는 거리!     


새가 쫏은 논두렁처럼 어두운 유리창에 

囹圄의 詩를 조각하는 意識이 하얀 새끼비둘기는

머리가 피투성이가 되어 가엾이 날개짓하며 

밤이 새도록 意欲한다     


숲그늘에 새벽의 華奢한 합창은

그리운 모습처럼 멀어져 갈 뿐……   

 

닫혀진 鐵門에는 다정한 여인의 노크 소리가 

역사처럼 녹슬어 있고 

긴 낡은 벽돌담을 따라

鋼鐵빛 발굽소리가 끊임없이 漂流해간다  

   

罪惡처럼 다만 잠잠하게

하얀 아침의 긴 긴 旅程!     


憧憬은 나비처럼

하얗게 차가운 壁畫에 귀를 스치면서 

목이 메이는 듯   

  

     아득히 희미한 바다의 울림을 듣자!


―「憧憬」(1942) 전문, 193-194쪽.    

 

   일본 문단에서의 활동과 《후반기》 동인지 창간은 조향 시세계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 당시에 쓴 작품들에 초현실주의적인 형식 실험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후 그가 자주 사용하는 이미지와 오브제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少女는 白麻布 베드 위에서/초록빛 달부드레한 樹液을 生理하며”(「소녀」, 201쪽)라든가 “〈마르그리드처럼 붉은 동백꽃을/이 가슴에 꽂아도 끝내 안되겠지요?〉”(「哀歌」, 199쪽)라는 구절은 여성과 사랑, 성적 이미지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哀歌」에서는 홍등가 여급을 알렉상드르 뒤마 소설 『동백 아가씨』의 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에 비유해 서술한다. 고향땅에 대한 추억을 노래한 「鄕愁」(1943)에서는 “황금빛 農牛가 MO―O― 저녁 무렵을 울며/牧童들은 아리랑을 노래”하는가 하면 “고향 마을은 네덜란드의 風車처럼/언제나 대범하게 돌아가는 幻影이었다”(181쪽)라고 표현하면서 시적 풍경과 동떨어진 이국취향을 드러내기도 한다. 위에서 인용한 「憧憬」에서는 화자가 그리워하는 ‘여인’이 나타나는데, 이들 여성은 대체로 탐닉의 대상으로 형상화되는 경우가 많고 그 대표표상이 사라(SARA)라는 이름으로 자주 등장한다(「SARA DE ESPÉRA(抄)」, 「最後의 密會」 등). 

   ‘밤의 검은 비단 자락’, ‘별들의 葬送’, ‘어두운 유리창’과 같은 싯구에서 드러나는 어두운 색 계열의 이미지는 식민지의 암울한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일제 식민지 이후의 해방공간, 한국전쟁 등의 특수한 시대상황은 그를 절망의 정조로 이끌어간다. 여하튼 일본 문단에 발표한 시들 중 조향 시의 연속적인 면모들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으로 「憧憬」을 꼽을 수 있다. 이 시편의 3연에서는 피투성이의 하얀 새끼비둘기가 감옥에 갇혀 밤새도록 시를 짓는다는 이미저리를 통해 암흑과도 같은 당대 상황을 직핍하게 묘사한다. 기나긴 여정을 통해 하얀 아침에 도달한 나비의 동경이 후반부에서 그려지고, 마지막 연에서는 그 그리움을 ‘아득히 희미한 바다의 울림’이라 표현한다. 조향 자신은 일본 문단에 연애시만을 주로 발표했다고 회고하지만 그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위와 같은 시대 인식을 보여주는 글들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현실주의라는 맥락 속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와 같은 1940년대 작품들에는 그의 (무)의식에서 자주 출몰하는 이미지들이 드러난다. 50년대 이후 이들은 점차 하나의 오브제가 되어 결국은 그 의미가 소거되어버리지만 자동기술적 기법으로 나열된 이미지들에도 정신분석학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시어들을 통해 연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1945년에 해방이 되자 그의 세계에 관한 인식은 한 차례 굴절된다. 해방의 기쁨과 그로 인한 가혹한 현실의 벽 앞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헛되이 흥분하고 슬퍼하기를 그만 하고 조선이 가진 슬픔의 원인을 규명함으로써 민족 만대의 굳건한 정신―새로운 역사의 창조라는 한 길만을 지향해야 할 때이다. (「역사의 창조」, 《竹筍》 6집, 1947. 『전집2』, 14쪽.)      


   식민지적 상황은 해방을 맞이하며 종결되었지만 그 기쁨이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해방 이후 시시각각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정세는 오히려 조선이 지닌 본래적인 슬픔으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조향이 볼 때에 조선의 슬픔을 야기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배대주의(拜大主義)”, 이른바 사대주의적 성향 탓이다. 따라서 그 원인을 정확히 규명함으로써 조선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기틀을 마련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배대주의는 무엇 때문에 생겨나게 되었는가. 우선 그의 표현대로라면 “랜드뿌릿쥐”, 즉 남쪽으로는 해양 세력이, 북쪽으로는 대륙 세력이 마주치는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지리적인 슬픈 숙명”이 되풀이되어왔기 때문이다. 여진, 몽고, 한민족 및 일본, 미국과 소련의 간섭을 받으면서 조선은 자주적인 길을 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향은 사대주의가 조선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두 번째 원인으로 “전통의 빈곤”을 들고 있다. 반만 년의 역사라 외치며 조선의 전통이라는 말을 당연한 듯 사용하고 있지만 기실 “우리의 전통처럼 조각조각이고 동강동강이고 가난한 것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편역 좀 들어 보려고 두 눈 닦고 다시 보아도 체계 없는 가난한 전통임을 어찌는 도리가 없다.”(「역사의 창조」, 앞의 책, 15쪽.) 정리하면 전통의 가난함이 결국 무비판적인 외래 사조 수용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후의 많은 논자들이 전통에 대해 정의내리고 있지만 조향은 조각나고 가난한 전통이라는 인식하에 그 숙명을 받아들이지 않고 타개해 나가는 것만이 새로운 역사로 향하는 길이라 믿고 있었다.     


가뱝게 꾸민 등의자는 남쪽을 향하여 앉았다. 앞에는 바다

가 신문지처럼 깔려 있고…… 바다는 원색판 그라비유어인 양 

몹시 기하학적인 각선(脚線)을 가진 테-불 위에는 하얀

한 나프킨이 파닥이고 곁에는 글쎄……글자를 잃어버린 순수한 시집(詩集)이 바닷바람을 반긴다.   

   

꽃밭에는 인노브제크티비테의 데사잉! 당신의 젖가슴엔

씨크라멘의 훈장이 격이세요.      


석고빛 층층대를 재빨리 돌아 올라 가면 거기 양관의 

아—취타잎 유리창 여기선 푸른 해도(海圖)가 한 핀트로

만 모여 든다.    

  

IRIS OUT!

렌즈에는 해조(海鳥)의 휘규어!     


    그대는 인민의 항구가 그립지 않습니까? 

    새로운 로맨티즘의 영토로…… 그렇죠?

수평선 위에 넘실거리는 새 전설의 곡선! 나는 산술책을

팽개치고 백마포(白麻布) 양복 저고릴 입는다. 나는 파아란

항해에 취한다. 나는 수부처럼 외롭구나.    

  

19××년 향그런 무역풍 불어 오는 밝은 계절의 그 어

느날 그대는 여기서 내 사상의 화석을 발견하시려는 건가?  

   

나는 언제나 조선이 사뭇 그리울게니라.      


ADIEU!

 

―「파아란 항해」(1947) 전문, 164-165쪽.    

  

   이 시는 장면 전환(IRIS OUT)을 전후로 하여 출항하는 외부의 풍경과 화자 내면에 대한 묘사가 대비되어 있다.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길은 항해를 떠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일종의 모험이자 실험이다. 격랑의 파고를 지나쳐온 조선은 여전히 어지러운 정세 속에 휘말려 있고, 그런 조선에 새로운 역사의 길이 열리길 염원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는 새로운 로맨티시즘을 꿈꾼다. 그리고 그것은 이 땅을 지배해온 사대 정신과 같은 봉건 잔재와의 결별임에 틀림없다. 민족진영에서 좌파 계열의 문인들과 대립했지만 한편으로 그가 사용한 민족이라는 개념은 “신탁통치를 지지해야 한답시고, 광분하는 ‘민주주의 민족전선’ 계열에서 해석하는 그러한 예속적인 민족의 정의로서 쓰지 않았”(「역사의 창조」, 앞의 책, 16쪽.)던 것과 마찬가지로, 화자는 기존의 역사, 로맨티시즘 등과 안녕을 고하고 바다로 향한다.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이때 실험이라는 말의 의미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실험이라 했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자연과학적인 것을 연상하지만, 조향에게 실험이란 창조적인 일과 연관되어 있었다.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때에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시험관”이라는 뜻이 바로 실험이라는 말 속에 녹아 있다.   

     

예술에 있어서의 엑쓰페리멘트란 항상 그 사고 면에서보다 과학적인 면 다시 말하자면 내용적인 면보다 표현의 기교적인 면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 시단처럼 엑쓰페리멘트의 공백기가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실험이 없는 세대―최근 우리 시단 개평(上)」, 《서울신문》 1950년 1월 25일, 『전집2』, 43쪽.)      


   그는 이 시대를 “실험이 없는 세대”라 진단하며, 실험이란 예술에도 적용될 수 있는 개념임을 밝힌다. 그리고 예술적 실험이란 과학적이면서도 표현의 기교적인 면을 살려나가는 것이라 주장한다. 새로운 시대에는 응당 새로운 테크닉이 필요하며, 그것을 한마디로 모더니즘이라 집약한다면, “무슨 조선적인 것과는 전연 빙탄간(氷炭間)적인 것처럼 혹은 경박한 ‘모던 뽀오이 문학’이나 ‘땐스홀 문학’ 혹은 ‘다방문학’인 것처럼 공정가격부터 매기고드는 유식한 속물들이 많은 모양이나 이것은 마치 아나키즘을 무슨 니힐리즘이나 테로리즘처럼 오인하는 거와 마찬가지의 무식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한다. 그의 규정에 따르면 지금 이 시대의 모더니즘은 갖가지 형태로 오인되고 있다. 조선적인 것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혹은 모던보이의 향유물로 말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에는 그에 맞는 “생리와 윤리”가 뒤따라야 하듯이, 모더니즘 문학은 “현대의식의 문학”이 되어야 함이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현대의식이 없는 현대인의 생활이란 상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생활의 이데올로기로서의 모더니즘을 부인하는 것은 물에 사는 어족이 물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오. 그러기에 호박꽃과 호롱불과 마차와 피리(笛)와 석굴암의 불상만이 시에 등장할 것이 아니라 씨크라멘과 사네리아와 파아카아드와 쌕쓰폰과 나체군상(裸體群像)이 등장해야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제2의 우리의 전통이 형성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러한 소재면의 엑쓰페리멘트는 표현 기교에 있어서의 엑쓰페리멘트를 필연시키는 것이다. (「실험이 없는 세대」, 앞의 책, 44쪽.)      


   조향이 볼 때 현대인의 생활에 걸맞은 의식이 발현된 양식이 곧 모더니즘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여야 함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향토적인 시어를 탈피해 모던한 시어나 소재들 역시 즐겨 사용해야 모더니즘 문학이 성립할 수 있다. 그것은 새로운 제2의 전통이 될 것이다. “7·5조라는 케케묵은 정형에 얽매여서 말(언어)들이 모두 그 본연의 너그러운 운(韻)을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운율을 추구하라는 것이 조향이 요청하는 예술적 실험에 다름 아니다. 그의 시에 유독 문자 그대로든 아니든 외래어 표기가 빈번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표현 기법을 바꾸는 것이 현대시의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파아란 항해」로 돌아가 보면, ‘그라비유어’, ‘테-불’, ‘나프킨’, ‘인노브제크티비테’, ‘IRIS OUT’, ‘렌즈’ 등과 같은 시어의 사용 그 자체가 시작법의 실험이며, 그것은 시 전체에서 바다로 출항하는 행위로 드러난다. 이때 화자 손에 들린 것이 자연과학의 상징인 ‘산술책’이 아니라 ‘시집’(예술)이라는 점이 그 실험의 요체다. 시집은 ‘순수한’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는 외세의 힘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는 자주적인 길을 모색하는 여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가능하다. 여기에는 아직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기에 그는 혼자이며 외롭다. 떠나지만 조선을 그리워하는 그 양가적인 심정은 ‘사상의 화석’과도 같다. 화석화되어 존재하지 않고 흔적으로만 남아 있지만 누군가에게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미의 세계를 이탈한 채 의미없는 기호 표현으로 점철된 시어들은 시인의 의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보편적인 사상을 만들어내는 일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조향이 언어 실험을 통해 지향하는 바는 기실 “창조적 상상”이었기 때문에 내용적 층위보다는 오히려 형식적인 층위가 강조되었음은 물론이다. 그가 생각할 때, 시인은 곧 “장이”여야 하며, “장이의 본령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만드는’(형상화하는) 데에 있다”(「1959년 시단 총평」, 《文學》 제3호, 1959년 12월, 『전집2』, 52쪽.)는 사실이 중요했다. 가령 화분을 형식, 꽃을 내용이라 볼 때 장이의 아이디어, 곧 “데쌍(dessin)”은 화분을 만드는 데에 집중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의 시인들은 천편 일률적으로 거의가 이 내용에만 치우치는 병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곧 과학문명, 기술문명에 있어서의 후진성 그것이다. 우리의 최대의 약점이다.”(「1959년 시단 총평」, 앞의 책, 52쪽.) 그는 의미(내용) 중심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시가 그 본령을 잃어버렸다고 판단한다. 이와 같은 약점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세계를 확립해야 하고, 때문에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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