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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Nov 23. 2017

Cauchemar(s), 악몽.

홧병으로 숨넘어가기 3초 전, 다시, 쓰다.


목부터 발까지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길목에 서 있다. 해 짧은 프랑스의 해도 지지 않은 저녁 무렵 나는 그 여자가 마녀라도 생각했다.

어처구니 없는 상상이군. 하지만 당신이 진짜 마녀라면 내 머릿속을 읽고 내게 다가와 원하는게 있냐고 물어줘. 수상한걸 댓가로 원해도 상관없어.

그녀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반대방향으로 걸어갔고 나는 그가 외투도 없이 잠시 마실 나온 동네주민 혹은 히잡을 쓰지 않는 무슬림, 어쩌면 둘 다라고 생각한다. 손바닥에 깊은 자국이 날 때까지 교통카드를 손에 세게 쥐었다. 증오해. 너희 남자들을.

이미 이혼청구서를 보내 놓고 친구는 어제 그 남자와 외박을 했다. 그러고는 너무 외롭고 그 사람은 이제 자길 때리거나 바람 피우지 않겠다고 했으며 그 사람이랑 있으면 너무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그를 떠나길 바라고 자기가 외롭게 떨어져 나오면 다들 올바른 선택이라고 만족하겠지만 스스로는 너무 외롭고 슬플 거라고. 당장 다음주에 이혼 청구서가 그에게 배달되면 그는 태도를 싹 바꿔버릴테고 그걸 알지만 그 순간의 행복을 즐기고 싶었다고. 친구를 끌고 당장 내가 다니는 무료 정신의학센터로 데려가려다 실패하고 예정대로 학교에 가면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를 봤다. 세상에 남자가 그렇게 많은데 조금 사라져도 별일 없을 거야.혹시 당신에게 어떤 초현실적인 힘이 있다면 제발 몇명 죽여줘.

며칠째 남자들이 나오는 꿈을 꾼다. 얼마전엔 서울의 지하철에서 어떤 늙은이가 남자친구랑 같이 앉은 친구의 몸을 더듬었다. 남자친구가 그 늙은이의 팔을 쳐내고 친구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그의 가슴팍을 발로 차고 욕을 퍼붓는다. 머리끝까지 화가 차서 여자가 네 딸딸이용 물건으로 보이냐며 죽여버리겠다고 길길이 뛰고 놀란 친구 남자친구가 나를 뜯어말린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욕들을 또박또박 큰소리로 말하기에 무의식의 시간은 너무 게으르게 흘러간다. 답답한 마음에 잠꼬대로 욕설을 내뱉은 순간 눈을 떴다.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잠든 적이 있긴 했나?

어젯밤도 지독한 수면장애에 시달리다 겨우 잠들었는데 내게 성폭력 가해자로 몰린 억울함을 토로하던 오래된 지인이 나왔다.여러 사람이 섞인 술자리에서 나는 그가 여기 있는게 마음에 안 든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미친 사람처럼 페미니즘 팔아서 여자한테 집적대는, 실은 게으른 공부도 안 하는 더러운 새끼! 이 새끼 당장 돌려보내! 하고 소리친다. 무의식 밖에 막 깨어난 이성이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남고 싶어한 사건을 드러내지 말라고 뜯어말린다. 번쩍 눈을 떴다. 벌써 대낮이었다. 지겨워. 내면의 증오를 가늠할 길도없다. 미쳐가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웃으며 잠이 안 온다고 새벽에 한국의 남자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근황을 물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길을 걷는다. 주머니 속의 카드가 손을 찌르도록 꽉 쥐고 내가 미쳐가고 있는건지 의심하면서.

증오범죄라는 웃기지도 않는 단어를 떠올린다. 특권층의 권력과시형 범죄라고 부르면 어떨까? 성소수자들을 비백인들을 여자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살인한 수많은 인간들, 당신들이 내가 겪는 증오의 십 분의 일이라도 느끼고 고민할 기회가 있었다고? 나는 누굴 죽이길 커녕 실제로 때리지도 않았다.이렇게 미칠 것 같은데. 증오한다. 증오한다.아무리 생활을 활기차고 아름다운 것들로 꾸미려고 애를 써도 비집고 들어와 내 마음속에 증오를 심는 자지 달린 이들을 증오한다.여전히 남자에게 성욕을 느끼고 데이트를 하고 친분을 나누는 나 자신까지.

어제 친구와 SNS에서 논쟁을 벌이던 친구의 전 남친은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설사 부당하게(폭력 가해자였어도, 역량이 없는데도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진 발언권력의 권위를 믿으라고, 시스템을 전복시키기 위한 아군이라고 믿으라고 말했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줄 지난 여름 우리가 마주쳤을 때 내가 알았다면 네 얼굴에 침을 뱉었을텐데. 오빠들이 캠브릿지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동안 글을 쓸 종이도 살 돈이 없었던 브론테 시스터의 무덤에 대고 얘기해. 언젠가 남자들이 그 부당하게 취득한 권력을 가지고 너를 도와줄 거라고! 어떻게 감히. 무식하고 무지하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자식. 죽어버려. 너를 증오해.

대체 이 분노를 어떡하면 좋지?


오갈 데 없는 분노를 그러안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여기까지 글을 적었다. 읽는 것은 위험하고 쓰는 것은 더 위험하다. 증오와 분노를 눌러 담으며 혹은 그에 시달리며 글을 써 내려간 여자들의 글을 읽는다. 분노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고 겨울 공기에 손가락을 내놓고 버스 정류장에서 미친듯이 글을 써 해소한다. 읽는 것은 위험하다. 그네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하고 다시 분노하고 내 상황과 비교하고 꼭꼭 씹어 소화하고 만다. 이야기들은 내가 겪은 일들의 일련이 얼마나 오랜 시간 되풀이되어 왔는지 알게 하고 허무와 절망 속에 나를 밀어 넣는다. 쓰는 일은 증오와 분노가 얼마나 위험하고 음험한지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욕망을 숨길 수 없게 만든다. 겁이 난다. 미친 사람처럼 보일 거야. 그러나 쓰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않기 위해 미쳐버리는 것은 어리석다. 여성들의, 혹은 여성에 대한, 어쩌면 스스로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부르지 않았을,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한 사람들에 대해 이제껏 읽고 필사해둔 글들을 다시 읽는다. 얼마나 많은 이름있는 여자들과 이름없는 여자들이 꿈속에서 튀어나오지 않는 목소리 때문에 답답해 한 나처럼 내면의 비명을 안고 살았는지 가늠한다. 그들은 꿈에서 깼을까? 나는 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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