홧병으로 숨넘어가기 일보직전에 털어내는 글
월요일. 학교 스포츠 센터에서 내 옆자리 여자애와 탱고 파트너를 맞추던 키가 큰 남자는 자세 교정용 풍선을 가져다 놓으며 "미쳤다 정말. 외국인 천지네."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뱉은 뒷통수를 바라보다가 눈을 돌리자마자 남자와 호흡을 맞추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웃어보이고는 금세 눈을 피하고는 가버린다. 나는 덩그러니 주변을 둘러보며 프랑스어나 영어로 떠들며 어수선한 다른 사람들을 바라봤다. 프랑스인이 더 많은 것 같은데.
화요일. 열흘이 좀 넘는 여행 끝에 집주인 겸 동거인(플랫메이트)이 돌아왔다. 예전 플랫메이트였던 A와 지금의 다른 플랫메이트 B가 신나게 떠드는 소리가 방 밖에서 흘러 들어온다. 피곤하고 우울한 기분에 침대에서 웅크리고 누워있는데, B의 하이톤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A가 오늘 집에 들어오자마자 한탄에 한탄을 하더라구. 시내 중심에 중국인 천지여서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고 말야." 나가서 하고 싶은 말이 잔뜩 스쳐지나가지만 침대밖으로 걸어나갈 힘이 도무지 생기지 않는다. 그냥 눈을 감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요일, 오늘 아침. 아침을 먹으면서 SNS를 키니 은행의 광고가 뜬다. 자동으로 재생되는 걸 멍하니 보고 있는데 엉성한 젓가락질로 딤섬을 간장종지에 떨어뜨리고, 낙지가 통째로 담긴 수프를 보며 당황하고, 디저트를 손으로 집어 입에 넣으니 포춘쿠키 메시지가 입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배경은 상하이고 해외에서도 잘 기능하는 자기들 카드를 광고하며 끝이 난다. 아, 아직도 아시아는 어색하고 이국적이고 낯설고, 마음껏 타자화해도 좋은 곳이구나. 상하이는 프랑스의 웬만한 대도시보다도 더 국제적인 도시인데. 해당 은행 고객인 한국인 친구들이 몇명 떠오른다. https://youtu.be/u4HhXTdb4kk
나는 자주 싸우고 자주 돌려 말하고 그보다 자주 한숨을 쉬고 넘어간다. 대뜸 '카와이~ 아시아 여자애들은 왜 다 이렇게 귀여워?'라고 메시지를 보낸 모르는 남자와 싸우고, 대화 중에 내 앞에서 칭키 아이즈를 해보인 백인 프랑스인 남자인 동거인에게 나중에 나는 칭키아이즈를 아주 싫어하고 그건 매우 차별적이라고 말하고, 이번 주 처럼 일련의 일들이 벌어질 때 눈 한번 질끈 감고 넘어간다. 길거리에서 대뜸 니하오 라며 인사하고 낄낄거리는 남자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일 때도 있고, 트람 유리창 건너편에서 나를 보며 원숭이 흉내를 내는 청소년들이 있는걸 알아도 애써 못본 채 핸드폰만 들여다볼 때도 있다. '우리'에게 '너희(아시아인)'들은 좀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프랑스인 친구에게 하긴, 나도 우리나라에서 너같이 생긴애를 봤으면 미국인인 줄 알거야. 라고 대답하고는 시뻘개지는 얼굴을 보며 고소해할 때도 있다.
이 아름다운 곳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을 바로 옆에 둔 프랑스의 손꼽히는 대도시이자 대학도시다. 천년이 넘은 웅장한 고딕양식의 대성당이 있고, 차를 타고 30분만 달리면 싸고 맛있는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한 포도밭이 펼쳐진다. 독일과 프랑스 건축양식이 섞여 파리와는 다른 매력이 있고 사람들이 훨씬 더 친절하며 물가도 더 싸고 치안도 더 괜찮은 편인, 유럽의 수도로 꼽히는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서 6개월, 그리고 여기서 2년을 조금 넘기며 나는 프랑스에서 동아시아 여자로서 산다. 그 타이틀이 좋든, 싫든간에.
한국에도 프랑스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중간자로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사고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다. 프랑스 유학을 결정하면서 분명 한국에서보다 나을 거라 기대한 점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더 견디기 싫은 단점들도 있었다. 프랑스에서 몸소 체험해보고 놀라고 새로웠던 장점들이 있다. 그리고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괴로울 줄 몰랐던 프랑스 생활의 단점들도 많다. 무조건 한국은 다 별로고, 끔찍하고, '탈조선'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그럴 수도 없었고), 프랑스 너무 싫다고 매일 한탄하면서 억지로 살고 싶지도 않았다. 어쨌든 살아야한다면 좀 나은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싶으니까. 같은 이유로 한국도 프랑스도 전부 내가 속한 곳은 아니고 출신지와 밟고 있는 땅 전부에게 거부당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건 정말 어렵지만. 그러다보니 요즈음엔 관찰, 체험자 입장에서 특수한 위치를 이용해 사회를 관찰하고 비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수월한 것도 같다.
잠깐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얘기. 동아시아인 '여성'으로 겪는 일들은 동아시아인 '남성'으로 겪는 일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나-우리-는 자주 귀엽고 예쁘고 성격 좋고 또 유럽 백인 남자라면 환장하는 여자로 여겨질 때가 잦다. 가끔은 사람이 아니라 '이국적인exotique' 과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 동양여자랑은 처음 만나봐." 데이트한 프랑스인 남자들 전부에게 한번도 빼놓지 않고 들어본 말. 꼭 "나 복숭아 처음 먹어봐."같은 말로 들린다. 나를 품에 안고 "네 찢어진 눈bridé 좀 봐" 하면서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쳐다보기. 그 전 남자친구는 아직도 연락이 소홀해서 차인줄 알고 있겠지. 내 틀린 발음을 따라하며 귀여워하던 게 짜증나서라고, 말해줄 걸 그랬다.
동아시아+여자 조합의 정체성 때문에 겪은 일들을 나열하자면 몇밤을 지새워도 부족하다. 그래서 요즘 머릿속 화두인 '아랍계/흑인이 아닌 외국인(이방인)'으로서 겪은 일들에 대해서 먼저 써보려고 한다. 정말 좋아하지만 가끔은 말도 섞기 싫은 사람. 근방 시골 출신 프랑스인 백인이고 내가 사는 집의 명의자이자 동거인인 C는 처음 프랑스인들의 아시아인 차별에 대해서 얘기하자 이렇게 얘기했었다. "아시아인들은 나이스 하잖아. 흑인이나 무슬림들 앞에서는 무슨 말을 못하겠고 전부 차별이라고 하는데, 너희들은 차별이라는 건 알아도 그냥 웃으면서 쿨하게 넘어가주니까 우리도 (편하게) 그러는거지."
동유럽 출신 유학생인 A가 하루는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들한테 너무 관대해. 일도 안하는 백수들한테 보조금 퍼주고 그 사람들이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길에서 침뱉고 여자들한테 함부로 대해도 방관하는 거 진짜 이해할 수가 없어. 우리나라에선 절대 그러지 못해. 전부 아주 예의바르고 올바르게 행동해. 우리는 인종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지만 그 사람들이 그러기 시작하면 바로 인종차별 해버릴거니까." "저번에 체류증 받으러 가서 보니까 말그렙(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아랍계 아프리카 국가들)은 비자 취득이 진짜 쉽더라. 나는 수천가지 서류를 대고 엄청 복잡한 절차 따라야하는데." C가 맞장구쳤다. "프랑스도 그래야 하는데." "말그렙은 까다롭게 심사하고 너희 나라 같은 사람들은 더 쉽게 받아줘야 하는게 맞는데."
A의 친구들과 외출 후 돌아온 C가 잔뜩 화가나서 씩씩거렸다. "나는 정말 이 아랍계나 흑인들 못 견디겠어. 걷고 있는데 나한테 와서는 '오 모델을 셋씩이나 데리고 다니네' 라고 치근덕거리는데 정말 이런 놈들을 얼마나 참아줘야할지 모르겠다"며. B가 거든다. "여자들한테 길에서 그런 식으로 구는 사람들은 정말 다들 아랍계 아니면 흑인이지." (나는 대낮 길 한복판에서 백인 남자한테 섹스하자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처음 이런 말들을 들었을 때, 아니 최근까지도 계속 이런 말들을 들으면 어떻게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비백인인 내 앞에서 저런 말을 검열도 없이 마구 쏟아내나 하는 생각에 기함을 하곤 했었다. 그리고 서서히 깨달은 게 있는데 프랑스에서도 항상 화두라는 '인종' 이슈에서 동아시아인은 제외라는 것. 그러니까, 우리는 깍두기다. 인종 계급도에서 백인이랑 같은 권력을 갖는 건 당연히 어불성설. 인종차별과 투쟁의 긴 역사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흑인이나 21세기 이후 강력한 위치를 차지한 중동계 사람들에 비해 동아시아인은 막말로 '그럴듯한 차별을 겪은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비교적 현대에 들어서야(노예제가 폐지되고 피식민지 국가 출신 외국인들이 이미 대거 이민한 이후) 동아시아인이 프랑스 사회에서 집단으로 여겨질만큼 눈에 띄기 시작했고 그때는 이미 인종차별에 대한 경계담론이 사회 전체에서 오간 직후라 흑인들이 겪은 것 같은 집단적인 폭력이나 살인, 신분 차별은 거의 사라진 후였다. 테러리즘의 대두 이후에 중동계, 특히 아랍인들에게 가해진 검열이나 차별에서 역시 제외됐다.
동아시아인들이 겪는 차별을 요약하자면 동아시아 국가와 그 국민들에 대한 자신들의 무지를 우리가 이해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구는 권력과시가 가장 흔하다. 다음으로는 말을 무시하거나 어떤 주장을 했을 때 네가 잘 몰라서 그렇다는 투로 어린아이 가르치듯 설명하려 드는 태도(프랑스어가 어눌할 경우엔 더 심해진다). 그리고 놀리거나 멸시적인 말을 던지며 모욕하려는 의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경우(차별이라고 '인정'받기는 더 쉽다). 원숭이 흉내를 낸다든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든지 하는 예를 들 수 있겠다. 아무튼 동아시아인들은 위에 예시로 든 것과 같은 대화의 발언자들인 백인들의 '인종차별' 문맥에서 빠져있다. 그 이유를 이들의 발언에서 짐작해보자면 이런 것 같다.
너희는 착하게 구니까.
짧은 세계사 지식에 비추자면 소위 말그렙이라고 불리는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 출신의 아랍계 아프리카인들의 프랑스 이주나 비자 취득이 쉬운 이유는 노예 수출국이자 제국주의 식민지배 국가였던 프랑스의 역사적 과오에 대한 보상차원에서다. 중학교 일반사회 시간에 처음 배운 단어 '삼각무역'. 세계사 제국주의 시대를 배울 때 빼놓을 수 없는 핵심단어였다. 아주 간략하게 말해, 유럽 열강들이 아프리카에 쳐들어가서 거주민을 납치해 상선에 움직일 수도 없게 빼곡히 태운 다음,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 아메리카에 가서 이 사람들을 팔고, 그 돈으로 담배나 목화같이 노예들을 이용해 대량생산한 작물들을 사서 유럽으로 돌아오는 무역시스템을 말한다.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세 대륙을 기점으로 이루어져서 삼각무역. 이후 길게는 20세기 중반까지 프랑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아프리카와 아시아 여기저기의 식민지를 착취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피식민지 국가들은 자유와 자원들을 빼앗기며 이들을 따라잡을 기회를 놓쳤다. 그 황폐화에 대한 보상 정책 중 하나가 이들 국가 사람들의 국적 혹은 비자 취득이 다른 국가 출신 사람들에 비해 쉽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억압과 착취를 당한 사람들은 직접 투쟁의 역사를 썼고, 또 한편으로 그렇게 프랑스로 건너와 정착을 하기도 했다. 종교 때문에, 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해서, 인종차별 때문에, 출신 문화적 특징 때문에, 개인적 성향 탓에,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로 이 집단에게 실제로 더 자주 일탈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출신 민족, 문화권 고유의 문제인 양 이야기하는 것이 올바른가? 프랑스에 와서도 히잡을 쓰면 안된다, 프랑스에 왔으면 프랑스의 규칙을 존중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이 그 나라에 발 디디면서 얼마나 존중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위에 언급한대로, 거주민을 닥치는 대로 납치해 숱한 사람들을 죽이고 돈을 받고 팔았다). 그들이 프랑스에 정착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어떤 문화적 접근이 있었는지 고려하지도 않는다. '정통' 프랑스인 집단과 이민자 집단의 일탈행동 빈도수에서 차이가 난다고 꼬집을 땐 그들이 같은 사회에서 같은 사회적 여건을 가졌을 때를 전제해야한다.
생각을 전개하다보니 왜 내 앞에선 주변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쉽게 내뱉는 건지, 어떤 사고를 기본으로 깔고 있는건지 짐작이 갔다. 흑인, 아랍계 이민자들은 그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게, 적어도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게끔(진정으로 그 이유를 이해해서든 아니든) 싸워온 역사가 있다. 그들이 당한 억압과 차별이 너무나도 부당한 것이었다는 보편적인 이해가 있다. 동아시아인들은 이 사회에서 이제 막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기'시작했고 일상적으로 우리가 겪는 언행들도 부당한 차별이고 억압임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파리에선 중국인 노인을 과잉진압으로 경찰이 살해한 이후 아시아인 차별에 대한 대규모 집회가 있었지만 여기에선 훨씬 더 화제성이 적은 주제다). 역사, 문화 맥락에서 동아시아인들은 착하게 군 (것처럼 보이는)이방인이었던 거다. 출신국의 내부사정으로 보다 자발적으로 프랑스에 온 사람들이 많아서였든 문화적 차이 때문이든 동아시아인들은 상대적으로 일상적 차별에 덜 반발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고분고분함'이 이들이 정말 나이스해서가 아니라 이등시민으로서의 생존전략이었던 건 아닐까? 고분고분하다는 이유로 억압을 덜 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대등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할 때 앞서 요구한 사람들에게와 똑같이 대응을 하리라는 짐작은 어렵지도 않다.
이런 상황에서 흑인/아랍계 에 대한 불만사항 토로회에 나를 청자로 데려다 놓는다고, 가끔 내 의견을 묻는다고 해서 내가 유쾌하게 받아들여야할까? 나는 이미 고분고분하게 굴 생각은 조금도 없는 동아시아 여자다. 단지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투쟁에 쓸 에너지를 따로 배분해야 해서 매번 싸울 수 없을 뿐이다.
그렇지만 나는 자주 싸운다. 이민자 외국인 전반에 대한 권리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 있고 앞서 낯선 나라에서 비집고 들어와 자리를 잡고 터전을 만들어 내 유학생활을 수월하게 해준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 내 역할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동아시아인, 인종 유머를 받아주지 않는 동아시아인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런 싸움을 위한 체력과 정신력을 기르다보면, 한국에서 인종 이슈에서 만큼은 이등시민이 아니어서 꽤 자유롭게 지내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어떤 공중에 뜬 시소에 혼자 올라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느낌. 내가 동아시아 여자로서 프랑스에서 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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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쓴 이야기들이 나의 인격이나 사고능력, 가치관과는 관계없이 동아시아 출신, 그리고 여자라는 정체성이 생활에 끼친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썰'이고 모든 동아시아인이나 동아시아 여성의 이야기로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프랑스에 사는 동아시아 여성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속얘기들이 있을것이고 나와 상반된 경험을 한 한국 여자도 얼마나 많을까. 같은 경험을 하고도 다른 식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을테다. 그래도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직접 고르지 않은 특징들로 사회에서의 위치가 결정되고 경험이 달라진 이야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