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udi Apr 23. 2018

타인이 지옥일 때

나에겐 나의 싸움이 있다.



1.  그 날이 나에게만 운수가 더러운 날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이가 나쁜 플랫메이트의 찌르는 듯한 목소리 때문에 일어나 머리가 몹시 아팠다. 심지어 그가 말한 내용도 몹시 불쾌했다. 발코니에 정성들여 꾸며놓은 화단을 살펴보려다가 걔가 걸어놓은 이불 때문에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고 테이블에 부딪혔다. 애지중지 관리하던 라넌큘러스 화병이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나는 잠시 몸과 머리를 멈추고 입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사야할 게 이것저것 있어서 기분 전환을 하려고 일부러 부산을 떨며 움직였지만 그 과정에서 또 물건들을 이것저것 떨어뜨렸다. 마지막으로 집 앞 슈퍼에 들렀을 때 점원을 향해 억지로 웃어보였지만 그는 몹시 피곤해보였고 맞받아 억지로 웃어줄 에너지도 없었던 것 같다. 꽤나 호감형으로 생긴 그 사람에게 고맙단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 길에 가게에 진열돼있던 와인병에 가방이 부딪혀 떨어뜨렸고 산산조각이 났다. 아침의 복선을 마무리하는 듯이. 몹시 미안한 눈빛으로 아까 그 점원을 바라보자 그는 지겹다는 얼굴을 하며 호출기로 동료를 불렀다.  명백하게도 오늘따라, 요즘따라 인생이 괜히 짜증이 나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한 것은 안다. 사실 맥락은 잘 모른다. 사르트르는 실존주의 철학자이고 68운동과 알제리 해방운동에 긍정적이었으며 시몬 드 보부아르와 폴리아모리 연애를 했다, 정도가 내가 아는 단편적인 정보다. 그러나 타인은 지옥이라니. 얼마나 명확하고 통찰력 있는 문장인가. 민폐를 끼친 슈퍼마켓을 나서면서 그 문장을 떠올렸다. 타인은 지옥이다. 나는 그 호감형으로 생겼지만 너무나 피곤해보였던 직원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나의 어머니나 함께 사는 플랫메이트,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길을 나설 때마다 나는 최악의 상상을 한다. 길에서 어떤 불쾌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상상.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그다지 효과는 없는 다짐들. 자잘한 사건들부터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내 삶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르는 것들을 상상하고 표정을 굳힌다. 최소한 만만해보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검은 머리에 짙은 피부, 크지 않은 몸집까지 이미 만만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아주 사나워보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이 아주 피곤해질 수 있겠다는 인상을 줄 만큼. 슈퍼 직원이 바코드를 찍는 동안 나는 그가 어떤 사람일지 상상했다. 집에 돌아가면 피곤하니까 맥주를 한 병 마실까? 애인 품에 안기고 싶어할까? 아주 저질스러운 포르노를 보진 않을까? 나를 보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까? 자기 고국에서 이득을 취하는 외국인이라고 생각할까? 짜증난다고 욕을 하고 있을까? 문득 길을 나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주 두렵게 느껴졌다. 우리는 어떻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연쇄살인자나 강도, 강간범, 인종차별주의자 일지도 모르는데 길을 나서고 걸어다니는 걸까?  이렇게 타인을 알지 못하는 나 자신이 지옥이 된다. 2.  옆방에 사는 프랑스 여자애가 다음달이면 방을 뺀다. 그를 포함해 이 집에 사는 모두에게 평화를 줄 결정이다. 못돼먹은 성격의 나는 그를 싫어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걔가 애가 나쁜 애는 아닌데“같은 말 따위는 생략한지 오래다. 요즘에는 그런 말을 애써 덧붙여주던 다른 플랫메이트들 까지 그 말을 생략하기 시작했다. “걔는 아주 무례하고 못된 애야.”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너희도 걔 가족 얘기 알잖아. 걔가 말하길 걔 엄마는…” 이라며 걔 가족 전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을 욕하면서 품위를 논하기가 넌센스 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게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아’라는 강렬한 감정이 좀 더 품위를 지키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뒷담화 수준의 차이에 따른 품위도 품위라면. 3.  만성 우울증 환자로 산다는 것은 말그대로 피곤하다. 오늘 내 하루는 괜찮았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발코니의 화단을 살펴보고 밤사이 방에 두었던 다육식물이 해를 쬐도록 발코니 테이블에 올려두고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새로 산 보라색 원피스를 입었다. 적당히 화장을 하고 요즘 데이트를 하는 남자애를 맞이했다. 방 세 개짜리 아파트를 잠시나마 혼자 누릴 수 있다는 건 멋진 일이다. 그을리고 단단한 남자애의 피부를 맘껏 더듬고 잘 먹여 돌려보낸 뒤에 화단에 물을 주고 낮잠-저녁잠-을 잤다. 그런데 일어나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영문을 알 수 없이 마음이 괴로웠다. 요즘 며칠은 아주 잘먹고 즐겁게 지낸데다 어제는 운동도 했고 하루종일 불쾌한 일도 없었는데 말이다.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서 요즘은 거의 피지 않던 담배를 피고 항우울제를 챙겨먹었다. 약을 거른 적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흔히 자살사고라고 하는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실행에 옮기는 대신 약을 먹어야 했다. 억지로 먹을 걸 챙겨먹고 다 돌아간 빨래를 가져다 널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계속 담아만 두었던 생각들을 얼른 쏟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 미리 만들어둔 오이무침을 집어먹거나 물을 마시고 두통을 가시게 하기 위해 이부프로펜을 삼키기도 했다. 우울한 생각들이 지독하게 돌아갈 때 예민한 머리가 주는 날카로운 생각들이 좋기도 하지만 나는 지금 집에 단 한명뿐인 인간이다. 나를 좀 더 보호해야한다. 항우울제 효과가 어느 정도 들기 시작하면 사고력이 뭉툭해지는 느낌이다. 그래도 항우울제는 좀 낫다. 항불안제는 멍때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는 인간이 되는 느낌이 든다. 이런 것도 살아있다고 정의할 수 있다니 아량이 넓구나 싶을 만큼. 4.  어제 맛있는 걸 먹어서 음식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먹는 걸 너무너무 좋아한다. 삶의 즐거움을 찾는 연습을 할 때 첫번째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제대로 된 식사를 차려 즐겁게 먹을 것. 오늘은 지나쳐버렸지만. 먹고싶은 게 많아서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게 되었는데 요리를 하는 행위 자체도 좋아서 가끔 내가 먹지도 않을 것들을 만들곤 한다. 동거인들이 이런 점에서 정말 도움이 된다. 그저께는 마늘을 튀기듯이 올리브 오일에 볶은 다음 물러가는 토마토를 넣고 철을 맞아 속이 꽉 찬 가지를 넣어 스파게티를 해먹었다. 뽀얀 가지 속을 썰 때 나는 말랑한 느낌과 씨도 거의 없이 하얗게 찬 속을 보는 게 즐겁다. 또 맛있는 꿀을 보내주신 플랫메이트 어머님의 방문을 맞아 카스테라를 구웠다. 계란을 깨뜨려넣고 꿀과 설탕을 넣은 다음 고속으로 거품을 내면 색이 점점 옅어지며 아이보리색의 부드러운 크림이 된다. 크림이 점점 늘어나는 걸 보는 건 정말 즐겁다. 솔직히 베이킹은 먹는 것보다도 만드는 것이 훨씬 즐겁다. 나는 명백한 육식주의자지만 여름엔 채소들이 풍성해져서 요리하는 게 정말 좋다. 서양요리 쉐프들의 클리셰처럼 화단에서 신선한 바질이나 파슬리를 따서 바로 요리에 넣어먹는 것도 재미있다. 매일 아침 노릇하게 구운 토스트에 저렴하고 맛있는 프랑스 버터를 듬뿍 발라 먹으면 그래도 프랑스에서 계속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신경써서 연습을 해 익혀야했던 내가 딱 하나 연습하지 않고도 잘 하는 애정표현이 있다. 맛있는 걸 해먹이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놓고 냉장고 사정과 지갑 사정에 맞춰 메뉴를 정하는 게 너무 좋다. 먹는 사람들이 맛있다고 말해주는 것이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가장 훌륭한 향신료다. 프랑스에서 항상 한국음식이 땡기는 유학생들을 불러놓고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주는 것도 좋고, 모짜렐라 치즈를 뭉텅뭉텅 잘라 올린 피자를 구워주는 것도 좋다. 보통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늦잠을 자지만 때맞춰 일어난다면 머랭을 쳐 폭신폭신한 수플레 오믈렛이나 팬케이크를 해주는 것도 즐겁다. 누군가의 아침을 달콤하게 시작하게 해줄 수 있는 건 정말 멋지다. 훈제연어에 샐러드를 사와 간단한 비빔밥을 해먹는 것도 괜찮다. 아시안 마켓에서 쌀국수 국물용 큐브를 사와 집에서 원하는 만큼 쌀국수를 해 먹는 건 정말 최고다. 간편하게 닭다리살을 달콤짭짜름하게 졸여놓고 반을 내가 먹고 나면 퇴근한 플랫메이트가 바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도 좋다. 혼자 사는 애인을 위해 케이크나 설탕에 졸인 사과를 올린 애플파이, 진한 브라우니 같은 걸 구워주는 것도 좋다.  요리는 즐겁다. 누군가 기쁘게 보내는 시간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 더욱 그렇다. 타인이 지옥이라면 나는 가끔 지옥도 즐겁게 하는 여자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이 내게 주제 파악을 하라고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