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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udi Sep 07. 2019

100일 글쓰기 마라톤 -10-

공통주제 :  나의 나쁜 습관에 대하여

  텐더님... 어떻게 이렇게 멋진 주제를 던질 수 있는 거지? 역시 100일 마라톤 그룹 같은 걸 기획하는 사람은 다르다. 나의 나쁜 습관. 일단 지금 다리를 꼬고 있다. 풀었다....

  습관이란 무엇인가? 무슨 남자가 쓴 명절 관습에 대한 글 같은 문장이지만 이런 고민이 일단 들었다. 나의 나쁜 습관 중 대표적인 것이 발모벽인데, 이건 불안 혹은 강박증에서 기인하는 일종의 병증이다. 발모벽이 뭐냐면 무의식적으로 머리카락을 뽑는 것이다. 이 습관은 고3 때 처음 생겼다. 나의 모든 계층 요소를 살펴봤을 때 딱히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나는 한국 입시제도에 강력한 PTSD를 겪고 있다고 느끼는데, 그 대표적인 게 발모벽이다. 거의 8년째 무의식적으로 머리카락을 뽑아대는 것이다. 한때는 미용실에서 부분 탈모냐고 물을 정도였다. 손가락이 닿는 부분은 한정돼 있으니까. 이걸 고치기 위한 노력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약간 변형이 되었는데, 그건 머리카락을 조금 골고루 뽑는 것이다.... 아무튼 부분 탈모 의심은 더 이상 받지 않는다.

  이 습관의 기인은(내가 이 습관을 입시제도의 결과로 보는 이유이기도 한데)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반 농담으로 '나 방학 때 기숙학원 같은 데서 공부할까?'라고 말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창조주는 반색을 하고 바로 학원을 알아왔다. 여학생 전용 기숙학원이었는데 아직 안 망했나? 망했기를. 예비 고3을 위한 방학 특별반이 있었다. 거긴 정말 끔찍했는데 일단 수면시간이 확보가 되지 않았다. 첫날에는 짐 검사를 한다고 새벽 2시까지 밖에 세워두고 인권침해를 했는데, 다음날 6시? 6시 30분? 에 일어나게 한 것이다. 나의 잠 은행은 효율이 정말 더럽게 나쁘다. 그때도 그랬다. 그때 깎인 수면시간은 아무리 다음부터는 11시인지 12시인지 아무튼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도 회복되지 않았다. 나는 끊임없이 졸았다. 폭리를 취하는 매점에서 커피를 사서 매번 들이부었지만 그 학원에서는 거의 반쯤 잠든 상태였던 것 같다.

  학원에는 자습실이 있었는데, 다들 아는 독서실 같이 생긴 형태였다. 방금 꼬았던 다리를 다시 풀었다. 굉장히 건강에 좋은 주제인 것 같다. 아무튼 그 자습실에는 자습 감독이 있었는데, 졸거나 딴짓하는 학생을 부드럽게 깨우는 사람도 있고 머리를 쥐어박는 사람도 있었다. 망했겠지 지금은 그 학원. 마지막은 일으켜 세우는 거였는데 나는 서서도 졸았다. 사실 그 정도 졸린 뇌는 정보 입력을 거부한다. 수면 부족뿐만 아니라 나중에 ADHD 진단을 받으면서 세운 가설인데, 그렇게 공부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환경이 나에게는 최악이었던 것 같다. 그전까지 공부할 때 나는 독서실에서도 아이팟에 담은 영화를 틀어놓고 공부했다. 언어 영역 성적이 좋았던 건 감이 좋은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시험지의 텍스트가 아주 길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텍스트 하나를 읽고 문제를 풀고 딴생각으로 흐를 때까지 텀이 그렇게 길지 않으니까. 좀 더 집중을 요하는 수학이나 관심 없는 과목일 때는 영화를 틀어놓고 나를 억지로 책상에 앉혀둔 것이다. 영화의 내용과 공부하는 내용을 동시에 산만하게 입력하면서. 이 방법은 적당히 관심 없는 과목에까지는 먹혔지만 정말 관심이 없거나 노력을 요하는 과목에는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기숙학원에는 전자기기를 들고 갈 수 없었다. 소설책 한 권도 반입 허용되지 않았으니 말 다 했지. 나는 정말 교과서에만 집중해야 했는데 그럴 수 없었고, 졸지 않기 위해 왼손을 여기저기 놀리다가 닿은 것이 머리카락이었다.

  사실 그렇게 바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은 건 아니고, 보통은 머리카락 사이를 손가락으로 훑는다. 머리카락을 만져보면 가닥가닥마다 살짝 느낌이 다른데(참고로 나는 악성 곱슬머리다.) 그중에 유독 상하거나 잘 모르는 이유로 굵거나 딱딱하거나 도드라지게 굴곡진 머리카락들이 있다. 그런 게 잡히면 뭐지? 하고 뽑았다가 한 번은 흰머리가 하나 걸렸다. 흰머리는 약간 가느다란 낚싯줄처럼 머리카락과는 느낌이 달라서 손가락에 닿는 감각이 이상했던 것이다. 보지 않고 흰머리를(별로 있지도 않으니) 뽑으니 조금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그런 환경에서는 아무데서나 유희를 찾기 마련인가 보다. 그 후에 이상할 정도로 굴곡진 머리카락들이나 아무튼 좀 다른 머리카락들을 뽑아내면서 정신을 적당히 흐뜨러뜨리는 방식으로 깨어있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뭐 다른 습관들을 더 쓸 생각이었는데 이거 하나 쓰니까 분량을 채운 것 같다. 그런데 무의식적인 나의 나쁜 습관들은 발모벽과 대개 요인과 양상이 비슷하기 때문에 적절한 선택이긴 했다. 아까 다리를 풀고 다시 꼬지 않았다. 정말 건강에 좋은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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