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eudi Feb 17. 2021

써야하는 글

말문 앞에 턱 버티고 서서 다른 이야기를 적지 못하게 하는

 

여기엔 보통 토하기 일보 직전까지 차오른 말들을 적고는 했다. 일생을 통틀어 가장 글을 열심히, 자주 쓰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매일매일 살아있기도 했다. 그러니 즐거운 일도 유쾌하지 않은 일도 있었다.


서른 살을 목전에 두었다. 태어난 후로 보낸 시간을 두고 이런 저런 잣대로 성취를 가늠하고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 번뇌는 이제 많이 그만두었다. 박완서 선생은 언제부터야 글을 쓰기 시작하셨대. 세상에서 유독 여자의 서른을 겁주지만, 사실 삼십대가 되는 건 썩 나쁘지 않대. 그런 말들을 진심으로 더 믿었다. 왜 청춘은 꼭 찬란해야만 하느냐는 반문에 공감했다. 내 청춘은 고되고 번잡했다. 젊음에게 너그러운 것들이나 젊음만이 가능하게 한다는 것들 보다는 아무리 납득하려 애써도 불가사의한 세상에 적응하려고 애쓰느라 진을 뺐다.


그래서 서른이 가까워진 시점에 회복이라는 것도 경험해보고, 스스로 떳떳한 삶의 태도가 무언가 가닥도 좀 잡아보고, 세상의 일부를 차지하고 산 만큼의 책임 의식도 가져보려고 하는 내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그래. 회복의 경험은 값졌다. 가끔 다시 호르몬과 기분이 심술을 부릴 때, 이게 영원하지 않을 거라 믿을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한심해서, 내가 부족해서, 내가 약해서, 내가 예민해서.... 그렇게 나를 책망하거나 부정하는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그냥 힘들구나, 지금 좀 안 좋구나, 약 먹으면 괜찮아져. 하고 넘길 배짱이 생겼다.


몇 번쯤 그런 일을 거쳤지만, 괜찮았다. 무언가 해낼 수 있게 됐다고 잔뜩 고무되어 무리하다가 아차, 싶었어도 괜찮았다. 이제 아주 미세할 만큼이라도 조금은 사는 요령을 아는 거 아닌가, 그랬다. 치열하고 우왕좌왕하던 이십 대 동안 지지 않고 버텨냈으니, 당당하고 의기양양하게 서른을 맞이할 거라고 은연 중에 자신하기도 했다.


번아웃이 왔다. 살짝 우울감이 함께 한다. 자학은 그다지 위세를 부리지 못하지만, 신체적인 증상들이 나타났다. 읽고 쓰는 것이 다시 또 버거워졌다. 그런 건 낙관할 수 있다. 회복을 겪은 후에 에너지가 소진되는 방식은 만성 우울증을 심하게 앓을 때보다 훨씬 이해할 만하고 납득하기 쉬웠다. 이러 저러한 일들이 있었고, 애썼어. 신경을 많이 쏟았어. 지쳤으니 몸이 텐션을 올릴 수 없는 거야. 이제는 전처럼 길게 가지 않아.


하지만 서른이다. 한국 나이로는 일년쯤 남았지만, 그래도 이만큼 가까워지면 괜찮을 줄 알았던, 서른이다. 우리 함께 행복해지자고 하던 친구들은 그럭저럭 함께 땅에 발붙이고 살아주었다. 또 좋은 사람들도 만났고, 건강하지 못한 관계들과 응어리 맺힌 관계들을 해소하기도 했다.


그런데 숫자만 놓고 보면 제법 어른이라고, 삶에 요령도 부리고 여유도 생길 줄 알았던 나이에 이르러서도 우리는 여전히 갈팡질팡, 우왕좌왕, 그냥 그 나이대에는 그 나이대의 시련이 또 있더라는 이야기도 들어뒀으면 좋았을 걸 말이다. 이 글을 써야만 하나 토해내고, 다른 목소리가, 다른 이야기가, 다른 테마가 숨통을 틀 것 같았다. 이 글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나도 쏟아내기 전에는 도통 알 수 없었다.


아마도 훨씬 괜찮을 줄 알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생각해보면 허무맹랑하지 싶을 만큼 나아져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을지도. 나도 그렇고 그냥, 우리 말이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 어디쯤의 생애주기를 함께 보내고 있는 우리. 인생에 호락호락해지는 순간이 있을 줄 알았느냐고, 차라리 그런 비아냥이라도 들었다면 조심했을까? 비관했을까? 꼰대라고 귓등으로 흘렸을까?


삶의 결은 빼곡하고 각양각색으로 다채로우니까 수년, 혹은 십수년 전의 어드메에 희미한 환상을 품었던 나에게 그런 말을을 들려 준다면 무엇이 바뀌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가슴을 꽉 막고 있는 것 같은 문자 덩어리들을 이렇게 더듬더듬 적고 있을 때, 너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 참 고생했다고. 막연히 이 나이쯤이면 덜 고단할 거라 믿었던 것도 같다고, 그런데 참 허탈할 만큼 하루하루 새롭게 고단하다고.


우스운 일이다.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 같은데도 간혹 자기와 타인의 고통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그것이 너무나 닮은 꼴이라는 이유로 무시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서로에게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는 무심결에 너무 가혹하여 들려 주지 못하곤 하던 낙관적인 말을 간절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근데 마흔은 좀 다를까, 지금 진짜 지긋지긋하고 힘든데... 우리 또 이것보다 힘들었을 때도 있었잖아. 그것도 지나왔잖아. 또, 그렇게 버티고 견디고 나면 우리 그랬었다고. 말도 안되게 창창하던 시절에 자꾸만 끝을 생각하던 우리 참 가엽고 대견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걸 회상하면서 너무 가슴 아프지도 않을 때가 올까?


꼬박 하루쯤을 앓았다. 고통 분담이라고 이야기했다. 나눠지면 네가 좀 덜 아플까 그런다고. 그리고 또 여전히 수월하지 않은 내 일상을 한탄하느라고 앓았다. 도저히 글을 못 쓸 거라고 생각했지만, 가슴 안에 꽉 막힌 이걸 뱉어내면 조금 후련하기를 바랐다.


살자, 함께 있자, 괜찮아 지자, 이런 저런 말들을 늘어놓았고 늘어놓고 싶다. 그래도 아마 이번에는 이 말을 하려고 이 글을 써야 했던 것 같아.


지지말자.

작가의 이전글 이 이야기를 하기 적절한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거예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