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아이들
저녁 공기는 낮보다 조금 차갑게 느껴졌다.
도현은 회사에서 나오던 길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집에 바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현관문을 열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일 자체가 너무 어렵다고 느껴졌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한강이었다.
언제나처럼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현은 자리를 찾아 앉았다.
바람이 물결을 조금씩 흔들었다.
오늘 하루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강은 늘 평온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동안 무시했던 경제 뉴스 알림들이 한꺼번에 보였다.
“원자재 가격 급등”, “수요 둔화”, “기업 공급 조절”.
지금까지 그냥 스쳐 지나가던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문장들이 낯선 느낌을 주기보다,
자신과 연결된 문장처럼 다가왔다.
‘이 단어들이… 오늘 나를 만든 건가?’
그는 스스로도 웃기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정말 경제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안다고 해서 해고를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적어도 이유를 모른 채 당하는 일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휴대폰이 울렸다.
서인이었다.
“도현아. 오늘 괜찮아?”
도현은 잠시 망설이다 답장을 보냈다.
“선배. 혹시 지금 시간 돼요?”
“응. 강남 쪽인데 올 수 있어?”
“지금 가겠습니다.”
도현은 몸을 일으켰다.
바람이 점퍼 자락을 흔들었다.
오늘만큼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필요했다.
⸻
도시의 밤은 여전히 밝았다.
강남역 근처 카페는 만석이었다.
그들은 근처 작은 식당에 들어가 마주 앉았다.
불판 위에 고기가 부드럽게 익어갔다.
이렇게 따뜻한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한 게 얼마 만인지 도현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좋은 데로 오자고 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서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이런 곳이 더 좋아요.”
도현은 고기를 뒤집으며 말했다.
“괜히 분위기만 좋은 곳은 마음 더 무거워지잖아요.”
서인은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런 날 있어.”
잠시 테이블 위에서 고기 굽는 소리만 들렸다.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줬다.
“도현아.”
서인이 조용히 말을 꺼냈다.
“아까 얘기하다 말았는데…
사실 요즘 기업들이 힘든 건 단순히 금리 때문만은 아니야.”
“물가 때문인가요?”
“그것도 있고… 더 복잡해.”
서인은 소스 접시 옆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경제는 그냥 하나가 움직여서 끝나는 구조가 아니야.
서로 물고 물리는 흐름이 있어.”
도현은 자연스럽게 몸을 앞으로 숙였다.
서인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고 싶었다.
“예를 들어볼게.”
서인은 뜨거운 고기를 식히며 말했다.
“요즘 사람들이 물건을 덜 사잖아?
그러면 기업은 재고가 쌓이지 않게 하려고 생산량을 줄여.
이게 바로 수요탄력성이라는 거야².”
“수요… 탄력성?”
도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응.
사람들이 가격이 조금만 오르면 바로 안 사버리는 상품이 있고,
반대로 가격이 올라가도 계속 사는 상품이 있거든.
예를 들어 사치품은 가격 오르면 수요가 확 떨어져.
반대로 생필품은 가격이 올라가도 멈출 수 없지.”
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은 사람들이 돈 쓰기 힘드니까, 사치품 수요가 많이 줄었겠네요?”
“맞아. 기업 입장에서는 ‘아, 사람들이 안 사네?’ 싶으면 바로 대응해야 하거든.
그래서 생산량을 줄이거나, 아예 상품을 다시 설계하거나 하는 거지.”
서인은 말을 이었다.
“근데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어.”
“뭐죠?”
“공급탄력성¹이야.
기업이 생산량을 얼마나 빠르게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야.”
도현은 생각에 잠겼다.
“예를 들면… 식당 같은 곳은 손님이 갑자기 몰리면
식재료 빨리 사 와서 대응할 수 있지만,
자동차 회사는 몇 달 만에 생산량 늘리긴 어렵겠죠?”
서인의 눈이 반짝였다.
“정확해.
그래서 공급탄력성이 낮은 산업일수록
경기 변동의 충격을 더 세게 받아.”
그 말은 도현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박혔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회사도 사실 엄청 빠르게 변화를 줄 수 있는 곳은 아니었지…
내가 잘린 것도 어쩌면 그 흐름 안에 있었던 거고…’
그는 고기를 한 조각 집어 먹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러면 선배…
기업은 수요가 줄면 생산 줄이고,
생산 줄이면 비용 줄여야 하니까…
결국 사람도 줄이게 되는 거네요.”
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게 잔인하지만 현실이야.”
도현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야 ‘왜’라는 질문에 답을 조금씩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근데… 한 가지 더 있어.”
서인이 말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가격탄력성³이 있어.”
도현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가격에 따라 사람들이 사는 양이 얼마나 민감하게 바뀌는가.
그게 가격탄력성이야.”
서인은 물컵을 들었다.
“예를 들어, 커피값이 500원 오르면 바로 소비가 줄어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사는 사람도 있지?”
“네. 저는… 아마 사는 쪽이겠죠.”
“그러니까 너 같은 사람은 커피에 대한 가격탄력성이 낮은 편이지.
이게 기업 입장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데이터야.”
도현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어떤 산업은 사람들이 가격에 민감하고,
어떤 산업은 그렇지 않고…
기업은 그걸 보고 생산 조절도 하고…
사람을 더 뽑을지 줄일지도 결정하는 거고…”
서인은 미소를 지었다.
“맞아, 도현아.
이제 네가 경제를 보는 눈을 조금씩 가지기 시작한 거야.”
식당의 문이 열리고, 차가운 밤공기가 스며들었다.
바깥의 도시 소음이 살짝 들렸다가 곧 사라졌다.
이 작은 식당 안에서, 도현은 처음으로 경제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숫자와 용어로만 보이던 세계가
조금씩 실제 사람들의 행동과 연결된 체계로 다가왔다.
“선배.”
도현이 불쑥 말했다.
“저… 공부해보고 싶어요.
경제라는 걸… 한번 제대로.”
서인은 그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원하면… 내가 같이 도와줄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도현은 마치 아주 깊은 물속에서 올라와
첫 숨을 크게 들이마신 사람처럼 느껴졌다.
밖으로 나왔을 때, 밤바람이 시원하게 불었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걸으면서 도현은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당하면…
그건 그냥 운명이겠지.
하지만 아는 상태라면…
그건 선택이 될 수도 있잖아.’
도현은 고개를 들었다.
도시의 불빛이 반짝였다.
오늘은 해고된 날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인생의 방향이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가 모르는 사이,
더 큰 경제의 파도는 이미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
각주
¹ 공급탄력성
: 기업이 가격이나 수요 변화에 따라 생산량을 얼마나 빠르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개념. 제조업처럼 생산 공정이 큰 산업은 공급탄력성이 낮고, 서비스업처럼 준비가 간단한 산업은 공급탄력성이 높다.
² 수요탄력성
: 소비자가 가격 변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나타내는 지표. 가격이 조금만 올라도 소비가 줄어드는 사치품은 수요탄력성이 높고, 필수품은 수요탄력성이 낮다.
³ 가격탄력성
: 제품 가격이 변할 때 수요 변화가 얼마나 크게 일어나는지를 의미. 기업들은 가격탄력성을 분석해 전략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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