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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해

by movere

"야, 이거 강행하지 않고 철수하길 잘했다. 다 죽일 뻔했다. 그런데 좌우로 눈사태가 심하다. 저걸 어떻게 건너지..." (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안나푸르나 마지막 등정 중 이 세상에 마지막 남긴 말)


세계적인 산악인 박영석 대장은 욕심내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했으나 결국 못내 안타깝게 종료된 상황을 주변 동료들의 인터뷰에서 본 적이 있어 복기시켜 본다. 전진할지 철수할지 현명한 판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닥쳐온 비극, 피해 가지 못한 죽음은 결국 산에 가지 말아야 끝이 나는가 싶기도 하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산업현장에도 도사리고 있다. 산업재해 즉 산재사고 중에서 숙련된 경험을 토대로 올바른 판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사고사업장은 고용노동부의 특별 근로감독등 관리감독기관의 조사를 받고 난 뒤에는 안전에 대한 대책이 강구된다.


안전대책의 실행방법은 대략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제거, 위험요인을 대체하는 대체, 위험요인과 작업자를 격리하는 공학적 통제, 작업방법변경등의 행정적 통제, 그리고 개인보호구사용의 PPE 등이 있는데 효과가 큰 순위는 제거, 대체, 통제, PPE 순이다.

생명의 중시뿐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의 무거운 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사업주는 안전대책의 계획하고 실행하여야 하는데 안전 또한 투자의 성격이므로 이윤추구의 기업적 집단들은 가장 저렴한 비용에 쏠리게 되어있다. 제거 같은 효과가 큰 근원적 대책보다 PPE처럼 효과가 작은 대책을 선호하게 된다.


물론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효과는 나타난다. 안전교육을 강화하고 안전에 관한 규정, 규칙, 지침등을 강화하고 데이터상의 실적을 쥐어짜면 행정적 효과의 경각심은 발생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한다. 그러나 이 정책은 피할 수 있는 죽음은 막아낼 수 있으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은 방어하지 못한다.


피할 수 있는 죽음과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비교우위는 없다. 죽음은 그 자체로 동등한 죽음일 뿐이다. 고귀한 생명이 꺼지는 그 자체로 비극일 뿐이다. 급격한 산업화의 속도는 죽음의 속도 또한 스피디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피곤하게 안전을 외치게 만들어도 위험의 요소가 제거되지 않는 한 미봉책으로 그 위험을 계속 반복되게 방어할 뿐이다.

근로자는 안전 의식 못지않게 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 일 할 의무가 사고의 위험 요소라고 한다면 의무는 의지로 둔갑한다. 마치 산악인이 산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다. 말도 안 되는 비약으로 왜 그렇게까지 일하냐고 안전사고의 귀책사유를 사고 당사자로 내몰리는 현실은 비일비재하다.


합리적이지 못한 이분적 논리로 결국 일 하는 성실함은 과도한 애착으로 변질되어 육체적인 죽음 후 정신적인 죽음으로 완전히 죽게 한다. 그래서 부지런 함은 죄악인가 싶다. 월급루팡들이 자기 욕심만 채우고 나몰라 하는 사이 일 할 의무를 고전적으로 해석한 이들은 항상 위험요소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세상은 그렇게 불평등이 아닌 비평등으로 돌아가고 있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위험한 싸움은 국민이 이겼고 다시 평온함을 되찾았다. 그렇게 힘들게 다시 되찾은 세상은 장사가 안 돼 죽겠다는 상인들, 쥐꼬리월급으로 하루하루가 피곤한 샐러리맨, 학자금 대출이자에 허덕이는 학생등을 해방시켜주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투쟁했고 항거했냐는 근원적 물음의 대답은 각자의 방식대로의 행복추구 일 것이다.


그 행복은 민주주의라는 근원적 평온의 토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근원을 수호한 것이다. 그렇다면 근로자의 일 할 의무이든 의지이든 어떤 단어든 간에 사업주는 재해예방의 그 중요한 근원적 대책에 우선적으로 눈을 돌려야 행복도 찾아지는 것이다. 그래야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과도한 노동시간, 보장받지 못한 휴식, 행정적 편의주의, 그리고 관료적 경영 등 진전이 없거나 더딘 노동 정책이 결국 경제규모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결과를 도모할 뿐 이 세상은 더욱더 더디게 그렇게 오늘도 찾지 못한 영원한 내일에만 존재하는 행복의 근원을 추구하면서 버티고 있는 것만 같다.


'하나는 공장이 문을 닫는 밤시간에 다시 공장으로 들어갔고 3층에서 추락했다. 혼자서라도 사출기의 구조를 분석하고 파악 한 뒤 운용해 보려 했다가 사고가 난 걸까. 혹시, 그저 분풀이로 사출기 한대를 망가 뜨리려다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고 발이 미끄러진 것은 아닐까'

(조해진 단편집 소설 '환한 숨'중에 '하나의 숨'편중에서)


'샘, 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안 될까요?' (사고 전 하나가 기간제 담임교사에게 한 이 세상에 마지막 남긴 말 중에서)


-2024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날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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