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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

시절 인연

by movere

편향되고 극단적인 사람들, 아둔하고 미련한 사람들, 적대적인 사람들은 당연히 멀어지게 되어 있으니 가까이 둘 필요는 없다. 애매모호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외면까지는 안 하고 살아간다. 물론 유효기간이 있지만은 말이다.


그런데 호감이든 악감이든 감정을 갉아먹는 관계는 가까이하면 안 된다. 거리를 둘 수 있다면 확실히 외면해야 되고, 없다면 티가 나든 안 나든 침묵적 외면으로 유효기간만 채우면 된다. 자기와 너무 맞지 않은 사람들은 가급적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모든 인연은 시절이 있다. 그래서 시절 인연이란 말이 있는 것이다. 영원할 순 없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 모든 일은 시절이 지나가면 또 새로운 인연이 들어서게 되고 거기서 멀고 가까운 거리가 생기고 또 그렇게 반복하고 순환하는 것이 순리다.


반복과 순환을 거슬리는 것은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니 서로의 감정만 소모되는 것이기에 시절인연 중에 가까이 두면 안 되는 것들은 잘 분별해서 에너지소모를 최소로 줄이는 게 현명한 처신이다. 그래서 그날 하루 자신에게 충실하고 열심히 살면 되는 것이다.


오늘이든 내일이든 헤어지든 만나든 언젠가는 시절이 다하면 연은 느슨하거나 끊어지게 마련이다. 혼자 있을 때 아늑하고 편안한 감정이야 말로 에너지 충전의 활력이며, 세월에 녹슨 관계를 뒤로 하고 혼자를 즐겨야 할 운명이 인간한테는 숙명처럼 여겨진다.


결국 그렇게 연이 다하고 자연스러운 헤어짐으로 세월을 메우면 또 망각하고 무관심해지는 게 시절 인연인 것이다. 남들이 나한테 관심이 없다는 말은 역으로 나는 남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그래서 서로 의식하지 말고 간섭하지 말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오기 마련 아닌가 싶다. 이렇게 줄곧 꾸준하게 만남과 헤어짐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치이기 때문이다.


세상이치를 먼저 알아야 절충도 타협도 정도도 있는 법이다. 사람과는 외면이 가능해도 세상이치와는 외면이 불가능하다. 더 이상 순리의 이치에 외면하지 말고 시절 인연에 함유된 외면을 수용하라고 그 누구들에게 말하고 싶다.


억지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의 수용과 외면은 그렇게 바퀴에 물려 회전하는 신의 영역이기에 인간은 그 이치를 감히 외면할 수가 없다는 것을 모른다면 아둔한 것이고 아는데 모른척한다면 편향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무리들과는 적대감만 쌓이고 외면으로 서로 등 돌리게 되는 것이다. 신은 이 또한 시절 인연으로 중화시켜 주니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은 참 위대하다. 사람을 바꾸려다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다 문득 깨닫기도 하지만 본래의 자아 그 행복의 기원으로 복귀한다. 노력도 해보고 힘찬 기운에 잠시 심취해 있다가도 본질의 귀소본능으로 그다지 나쁘지 않은 자아에 귀착한다. 그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 정도이다.


그만큼이다고 해서 이만큼 착각할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그 논리엔 이치, 바로 그것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전부 수용되지 못한다. 일부 수용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외면한다. 그 또한 이치를 무례하게 무시한 제안에 대한 인간의 화답이다.


이치를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은 신이 인간에 부여한 수용이며 나를 소모토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은 인간 스스로의 외면이다. 시절 인연에 감사하면 좋은 만남 못지않은 좋은 헤어짐도 배울 수 있는 그 지혜로움이 이치에 대한 신의 화답이다.


-2025년 봄과 헤어진 여름, 그러나 또다시 봄이 오기에 아름다운 헤어짐의 계절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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