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기웃거려도 결국 빈손인 것을, 혹시나 하는 이기심에 시키는 대로 시나리오대로 그렇게 티나게 어색한 표정과 질문, 숨은 그림 찾기 놀이에, 기다리고 시간 맞추고 신타클로스 놀이에 디지털에 의지한 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는 주종의 공식은 결국 기생충의 먹이사슬로 시간낭비하고 있다.
이 연극과 게임의 시작과 결론은 비극이다. 기생충이 희극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듯이 애쓰고 기쓰고 해도 지시받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물리적 지시를 하던 정신적인 지배를 하든 다 기생충이 기생하듯 그렇게 기웃거려도 기생하는 피지배의 행실에는 변동이 없다.
정치꾼들의 집단광기처럼 그렇게 죄책감 없이 한 사람 인생 망가뜨리는데 안락한 참가자로 일조하면서 알아서 잘들 기고 있다. 한 번뿐인 인생에 시간낭비가 얼마나 헛된 것인지 그걸 자각하고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기생충의 속성을 잘 충실히 소화해내고 있다.
혼란스러움에 번복에 시행착오를 겪은 후 좀 알아지는 것이 있다. 결국 기생충들끼리 놀아난다는 것. 각자 자기 인생으로 돌아갈 것 같진 않다. 끝까지 기생충으로 살듯하다. 결국 자기 인생 스스로 갈아먹는 관계를 형성하다 망각될 것이다. 넌더리 나고 짜증스러움은 끝없이 진행 중이다.
끝을 맺어 줄 이탈자는 기생충은 아니지만 지금 주변엔 기생충들 밖에 없다. 남의 사생활에 너무 관심이 많은 기생충들! 남일에 관심이 없다면서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둔다. 다들 모순의 가책은 없다. 그래서 끝은 본인이 내야 된다. 그것이 이 게임의 마지막 해답이다.
책 한 권 끄적끄적, 그저 깊은 산하나 찾아가 깃발 꼽는 것, 그런 거 하자고 이 난리를 치나 싶기도 하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그런 일 몇 개 그냥 누구든지 하는 거, 아무 감흥도 없는 그런 거 하자고 훈계하고 가르치는 유치함에 치를 떤다. 기생충은 그 유치를 먹고사는 것인가 묻고 싶다.
이치에 위배되고 잦은 모순이 깔린 논리는 수용되지 못한다. 방법을 바꾸든지 아님 각자의 인생으로 리턴해라. 교실방만 옮기는 척하지 말고, 남의 인생 관여하지 말고 각자 인생에 복귀해라.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연극과 게임에 스스로를 엮어 버린 슬픈 기생충들!
나중에 비극에 엮여서 헤어나지 못할 때는 도망가고 싶어도 못 간다.'나의 아저씨, 오징어 게임, 영화 신세계' 실제와 극 중 모두 비극이었다. '기생충'또한 처절한 비극이었다. 비극은 한걸음 한걸음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결국 나만 느끼는 것인가?
-2025년 6월의 마지막날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