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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Sep 12. 2020

순수 박물관

오르한 파묵

순수 박물관은 대략 마지막 장을 넘길 때 가슴이 미여지는 로맨스적 정서의 뭉클함과는 거리가 먼, 그렇다고 묵직하고 세련된 밋밋함의 말과 힘의 강렬함도 아닌, 모든 감정의 조화를 아우르는 행복한 문학의 느낌을 전이하게 한 파묵의 재능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본능으로 만들어지고 정렬된 시적인 박물관에서 사랑하는 옛날 물건들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시간'이 사라졌기 때문에 위안을 얻는 겁니다.'


독자들이 왜 고전을 읽을까? 그것은 바로 시대의 흐름에 가변하는 사회성과 불변하는 내면성의 조화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여기 딱 어울리는 고전 '순수 박물관'은 이스탄불이란 우리에겐 대책 없이 친밀한 도시의 이름에서 풍기는 터키의 신비성과 그 배경에서 슬프지만 행복한 사랑을 이야기한 책이다.


소설 속 사랑의 관점은 주인공 케말(男)로 줄곧 이어지나 나에겐 퓌순(女)의 관점으로 더 다가선다. 케말은 그의 상실된 사랑을 채워줄 신이 제공한 부와 그것을 현실화하여 아름다움을 승화시킬 능력으로 충만하지만, 퓌순은 케말로도 채워지지 않는 내적인 결핍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생을 마감하는 인물이다.


반면 파묵은 퓌순의 인간 본연의 비극에 치우치지 않고 케말의 행위를 더 철저하고 세심하게 묘사한다. 케말의 사랑은 중독이 아니며, 이 세상엔 알아야 할 사랑이 있다는 것을 잘 표현하여준다. 알아야 할 사랑이란 알아주었으면 하는 사랑과는 다르며, 그 별개의 매개체를 박물관으로 승화시켜 집요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한다.


알아주었음 하는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알아야 할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박물관은 그의 말처럼 유용한 지식이 아니라 상처의 결과물이다. 5723곳의 박물관을 돌아다닌 것은 자신의 상처를 숨기기 위함이 아나라 자신의 삶의 공간의 깊이를 마음속으로 느끼게 하기 위함이다.


'터키 사람들은 자신의 박물관에서, 형편없는 서양 그림 모작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관람해야 합니다. 우리의 박물관은 부자들이 자신을 서양인인 양 느끼게 해 주는 환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보여 줘야 합니다.'


박물관을 왜 만드는 것을 묻는 게 아니고 이것들을 왜 원하는지 묻는 말에, 상심이나 깊은 고민 그리고 밝히기 어려운 정신적 상처의 깊은 고뇌에 대한 사회적 공감의 부재의 의미 말고 '나의 고민이 무엇인가?'라고 담담하게 표현하는 자조적 물음을 통한 구절에서 파묵의 문학적 철학성을 엿볼 수 있다.


소설가에 소설을 왜 쓰느냐? 독자에게 소설을 왜 읽느냐? 는 물음에 각자의 식상하면서도 독특함을 찾다 애쓰다 결국 표현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가슴에 간직한 답변을 파묵은 어쩌면 사랑이라는 더 초라할 수도 있는 내면적 수치심을 담담하게 끄집어내서 '시간'이 '공간'으로 변하는 진정한 박물관을 만든다.


오르한 파묵은 박물관을 통해 터키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글을 통해 가르쳐주듯이,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글을 읽고 왜곡으로 균열되고 배제된 감정과 절망으로부터 위로와 회복의 과정을 열어주는 희망을 보여주게 하려는 작가 본연의 역할에 충실함이 글 곳곳에 드러나 있다.


그래서 작가는 쓰고 독자는 읽는 것이다. 삶엔 물음이 필요 없듯이 답 또한 요구할 것이 아니다. 정답은 없다고 외치며 세상을 아수라장처럼 만만하게 보는 무리에게, 아니 세상은 깨어난 의식 속에서 정확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따끔한 일침을 놓는 것! 그것을 잊고 지내다 다시 되새기고 영특하게 해 주는 것이 고전의 힘 아닌가 싶다.


조바심과 조심성 그리고 가슴 두근거림에 민감하고 예민한 생체주기와 아슬아슬한 경험하지 못한 조심스러움이 겹치는 시기에 논리적인 글보다 파묵같이 섬세하고 감성적인 글이 좋다는 지인의 소개로부터 시작된 이 책을 나는 최대한 천천히 느리게 읽었다.


케말이 상실감으로부터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이루어 낸 사랑의 위안처럼, 우리의 삶도 그저 보이는 전시관이 아니라 때론 옮기다 깨뜨린 소장품, 유실되고 도난당한 소장품, 구매하지 못한 소장품이 몇몇 발생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자신의 인생과 경험을 소장할 수 있는 자신만의 삶의 박물관을 만들어나가란 뜻이 아닐까 싶다.


조금만 잘 다루지 못한다면 깨어질듯한 나락으로 추락하는 보편적이지만 위험한 소재인 사랑을, 평화로운 강물이 가져다주는 고요함과 성장한 자녀가 엄마를 위하는 안도감께 함께, 모처럼 느긋한 읽기를 통해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다.

-2020년, 프라움 악기박물관의 한적함을 회상하며, 늦여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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