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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Jul 31. 2022

진심

'이 세상에 진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또 음악가들이 음악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지,

저는 제가 음악을 하기 때문에 음악가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음악에 쓰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저는 음악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진짜라고 생각해서 인간에게 음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


7월 보복 모임과 여행이 폭주했다. 리조트의 바다, 산속의 펜션, 맛집 식당, 대형 베이커리 카페 등 여름에 어울리는 장소는 다 둘러간다. 겹칠 땐 결정해서 하나는 포기하고 또 하나는 선택한다. 오랜만의 모임엔 선택하지 않았던 모임도 있고 일부러 선택한 모임도 있다. 아마 귀찮더라도 이젠 안 가야겠다, 별로 안 가고 싶다란 맘이 들어도 그래도 만나면 또 반갑다면 그 모임은 계속 이어지게 되어있다.


前 밥벌이터 올드 모임에 근 몇 년 만에 모였다. 前 밥벌이터도 그 시절엔 現 밥벌이터였을 터이니 그 당시 끼리끼리 멤버가 그대로 옮겨온다. 정권이 바뀌면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부터 내쫓는다. 국사를 다루고 대의를 논하는 정치집단도 끼리끼리인데 하물며 일개 소시민이 세상에 자비와 선행의 업을 쌓기엔 부덕한지라 여전히 코드가 맞는 사람끼리 모인다. 편한 것이 최우선이다.


前 밥벌이터의 모임에서 지나간 이야기를 하던 중 앉은자리에서 2번 이직의 경험도 듣게 되었다. 회사의 양도, 양수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많은 상처가 지나간 모양이다. 점령군은 피점령지의 민낯을 들추게 하는 법이다. 어차피 진심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별반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았다 하나 상흔은 여전히 회복하기 힘든 법이다.


직장윤리란 단어가 사라진 요즘, 예전처럼 '가족'같은 구질한 내부 용어도 안 통하니, 조직적 목표에 개인적 도의를 장려하여, 회사가 일일이 모든 것을 다 관심(감시)에 함유하여 경제적 의무 보단 집단적 의무로 재규정하려는 거슬리는 조직관리에는 다 티나 나게 되어있다. 보복 만남이 폭주해도 現 밥벌이터에서는 끼리끼리도 지겹고 그냥 안 만나게 되는 이유가 그 긴긴 시간 동안 진심을 상실한 데에 있다.


18세 어린 나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저 어린 피아니스트 연주가 세상을 통하게 한 것은 진심을 전달한 감동이다. 그 배경엔 애당초 콩쿠르 참여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사제의 동감과 그래도 세상 사람들이 제자의 피아노를 들어봐야 되지 않냐 하는 스승의 조심스러운 조언과 제자의 진심이 통하니, 그 결과 음악이 세상과 교류한 것이다. 스승의 말처럼 하나가 되게 하는 힘이 바로 음악이고, 이제 대중은 이 어린 피아니스트에게 감정적 의무로 조직적 목표에 옭아매지 않게 놔둘 줄 아는 현명함을 제공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회사 조직의 이솝우화 미화로 중무장한 오락부장 출신의 이곳저곳 파트너들의 놔둘 줄 모르는 훈계 속에는 진심이 없다. 진심은 그저 우러나는 것이지 요구하기도 요구받는 것도 아니다. 이미 상실한 진심이 머무는 곳에서는 어떠한 행위도 부질없는 것이다. 하부서 전문성을 논해도 잘난 척이 되는 것이고 상부의 진심을 알아달라는 것은 뻔한 위선처럼 들린다. 그래서 양측 다 부질없는 짓이고 안 하는 것만 못하다.


'같은 공간에서 지척에 몸을 두고 눈을 맞추고 진정으로 아낌없이 소통하는 듯 하나 각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지요. 저는 그런 감정의 허무함과 정서의 불균형 같은 어색한 분위기가 좀 싫어진 거 같습니다. '

(지인의 말씀중에서)


여름 여행 속, 파종과 모심기가 이미 끝난 정리되어있는 농촌의 논과 밭을 보면서, 관계하고 있는 주위와 주변을 떠올려본다. 농부는 풍요로운 수확을 거두기 위해 논과 밭을 가지런히 하고 돌과 잡초를 정리하고 비료를 뿌려 땅의 건강함을 유지하듯 우리의 관계도 한 번씩은 비료를 뿌리고 논밭을 고르듯 관계를 정리하여야 새로운 건강한 만남을 또 기원할 수 있다.


건강한 만남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병든 만남으로 인한 고통을 예방해주는 슬기로운 끼리끼리 원천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신감과 스스로의 신뢰이며, 자주는 아니더라도 길게 유지되는 만남의 구동력은 아마 그 자신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무심함을 받아들일 줄 아는 끼리끼리 서로 각자의 선량한 진심이 아닌가 싶다.


'인생 뭐 있겠어? 믿고 싶은 사람 말을 믿으면 되지'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中에서, 황보름)


-2022년, 7월 한여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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