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삶에 누군가가 머무르다 떠나가는 순환에는 고리란 게 맺어지기 마련이다. 불편함과 편함이 그것이다. 편하다고 해서 각자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고 불편하다고 해서 함께가 안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각자이어도 불편함이 있고 함께라서 편함도 있을 것이다.
'각자를 자각해야 각각이 되는 거야. 가족이자 각각이어야 오래갈 수 있는 거고' (불편한 편의점 2 中에서, 김호연)
감정의 고리란 건 생활의 편의성과 연결되어있다. 같이 지내는 가족이라면 이해가 쉽다. '불편한 편의점' 시리즈에서 '편함'과 '불편함'이란 편의성을 구축하지 못한 편함과 불편함이 아니라 서로의 고리에서 체결된 관계에서의 불편함일 것이다. 즉 다시 말해 관계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서로가 아닌 각자의 관계이다.
같이하는 삶에서 생활의 편의성보다 흐뭇함의 감정의 고리가 우선한다면 편함이지만 일단 편의성에 침해받는 삶에서는 불편함이다. 각자를 자각해야 된다는 뜻이란 '함께'는 둘만의 관계가 아닌 '여럿'의 관계를 말하는 전제에서, 편의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흐뭇함의 감정은 당연히 전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모두가 현명한 사람들의 시대다. 부모가 잠시 아들네에 머무르는 것도 불편하고, 딸네들이 친정에 잠시 머무르는 것도 불편하다는 것을 서로 모두 잘 알고 있어 일찍 가도 붙잡지 않는다. 즉 서로 각자이어야 오래갈 수 있으며 좋은 관계는 절로 맺어지지 않으며 스스로 살피고 찾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란 걸 서로 잘 알고 있다.
살다 보니 잠시 머물러가는 삶이 스쳐간다. 받아들이며 같이 갈 수도 있겠다는 순간의 흐뭇함은 그 각자의 고리 앞에서 착각이란 것을 자각한다. 각자 티를 내지 않을 뿐 받아들임의 정당성 이전 그 근본엔 그 각자는 그 삶의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존재란 배재할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살아가다 보니 이제 영원히 떠나가려는 삶이 보인다. 각자를 자각하는데 이제 가족이 아닌 채로 자각하려고 하니 또한 오래갈 일도 없을 것이다. 완전한 각각의 각자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보는 그 가족의 각자는 편의성과는 무관한 불편함을 받아들일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니 아쉬움과 상심도 깊어간다. 삶이란 계절처럼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것이란 걸 각자의 자각 속에 간직하며 겨울을 또 담담하게 맞이하게 된다. 어쨌든 불편함을 녹아내리게 할 봄이 오는 것과 불편함과 편함의 고리를 순환하다 또 새로운 자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의 고리이기 때문이다.
' 행복은 바라지도 않는다. 삶의 순간순간에 만족하는 찰나가 잦길 바랄 뿐이다.'
-2022년, 가을의 절정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