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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ere Jan 16. 2023

해방 2

합류(合流)

'쉰 넘어서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_작가의 말 中에서)


옛 밥벌이터 후배가 이직(移職)을 했다. 성격 좋은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역시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다. 달래 보기도 하고, 공감해주기도 하고, 냉정해보기도 해 봤지만 역시 안될 인간들은 안된다는 것을 안, 그 역시 마음을 비우다 이번 결정을 하고 고향 근처로 갔다.


밥벌이터에서 마음을 비운다는 말은,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도 아니고, 그래서 편안하다는 뜻도 아니다. 그건 그곳에서 마음이 떠났다는 뜻이다. 마음이 떠났으니 뒤따라 몸이 떠나고 비로소 그곳에서의 해방이 현실화된 것이다. 이직의 경험이 여러 번 있는 나로서는 후배에게 경험적 조언으로 기대와 위안을 동시에 전했다.


이동은 이탈과 합류를 동시에 함유한 단어이다. 이동하기 전에는 합류인지 이탈인지 모르다가 그곳에서 부딪혀봐야 비로소 어느 것인지 판단이 선다. 후배의 케이스는 합류이다. 수도권에서 고향 시골 골짜기 근처로 이탈한 것 같지만 사업의 영역에 따라 골짜기가 주 본근거지가 된 것은 거기가 실질적 본사이기 때문이다.


우선 인력의 이동성에 놀랐다고 한다. 설비투자가 거의 무인화로 이루지는 시대적 흐름에 인력배치의 포인트는 인맥의 유대관계도, 소속감의 의리도, 자기 사람 주고 뺏기기 싫은 윗선의 아집도 아닌 거대한 장비가 안착하는 것처럼 고급, 중급, 초급의 매겨진 인력자체의 덩어리의 이동을 목격한 것이다.


미국 인력시스템도 아니고, 소위 네카라쿠배 IT 인력시스템도 아닌 멀쩡히 보는 앞에서 마치 프로스포츠의 스토브리그처럼 더 나아가 국적까지 이동하는 국대의 선발시스템인가? 도저히 후배는 적응이 안 된다고 한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의 현실은 이 좁은 나라안에서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단지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을 뿐!


아무튼 서서히 적응해 가는 후배의 소식에 이 업종에 소식이 그곳이 제일 빠른 것 같다고 한다. 아무리 수도권이라도 좁은 사무실 안에서 자기 일만 하는 구조 속이나, 규모 큰 대형사업장이라도 몇십 년 동안 갇혀있는 구조속이나, 모두 우물 안 개구리는 마찬가지다.

이탈은 어쩌면 배신이라는 통상적 관념이 그곳에선 자연스러운 합류라는 흐름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장치와 기계가 세분화되어 있듯이 사람도 등급으로 세분화되어 있어 언제든지 퍼즐처럼 끼워 맞춰져 사업장 인연에 따라 주고받는 룰이 정착화되어 있는 것, 즉 업종이 유사한 사업장간의 이동은 이직(移職)과 전환배치(配置)의 경계가 없다.

하지만 그곳에선 사람의 냄새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저 서로의 이해에 따라 합류하고 이탈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이유는 Give And Take의 사회적 룰이 여전히 지켜지기 때문인 것 같다. 통념상의 윤리는 작동한다는 뜻이다. 항상 주고받는 사회적 Rule의 막연한 동경 속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신선한 감정적 계기를 후배의 경험으로부터 느껴본다.


이제 이탈의 목적이 개인의 성장이나 경험 같은 미사여구의 거대담론이 아니며, 일단 먹고살기 위한 생계유지의 밥벌이의 냉정한 명제선에서, 이제 누구에게도 얽히고 매여있을 그런 인간적 존재는 부여하지 않으며 그저 이탈(離脫)하여 다른 곳서 합류(合流)하여 다시 그 안에서 분류(分流)되어 덜 지겹게 버티는 짧은 해방이 목적일 뿐이다.


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부주의한 혼란과 혼탁, 그리고 촘촘한 그물망 속 시스템 중심에는 여전히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누군가에 따라 또한 사람들은 이탈하고 합류한다. 그리고 비로소 해방하는 것은 그 사람들에 의해서도, 그 사람들을 벗어나서도 아닌, 자신의 해방이란 것을 뒤늦게 알아챈다.


"골목골목 추억이 묻어있는 교토를 마음껏 돌아다녔고, 다음 도쿄로 넘어가 원 없이 한없이 다녔네요. 구글지도로 어디든 원하는 곳을 문제없이 갈 수 있는 이 시대의 IT 기술에 감탄하며, 혼밥도 맛있었고 혼자 마시는 커피타임도 좋았습니다. 뭐니 해도 혼자여행의 묘미는 이야기의 상대가 없으니 사색을 많이 하게 되는 점인 것 같습니다"


애들 다 키우고 여행가능한 이런 물리적인 시간에 감사하는 씩씩한 지인님(내방식의 표현)의 새해 첫 소식에 나도 덩달아 글귀에서 해방이 느껴졌다.


인간의 해방은 기계의 힘을 빌리고 인간미 대신 해방을 Give And Take 함으로, 이제 사회적 Rule 'Give And Take'는 'M2M(Man To Man)'이 아닌 'M2M(Man To Machine)'의 섹터커플링으로 차츰 전환되어 인간적 배신보다 기계적 신뢰를 쫓는 것이 어쩌면 유토피아적 행복보다 실재하는 현실적 행복 아닌가 싶다.


-2023년 1월, 조용히 그리고 해방을 사색하며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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