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vere Jan 30. 2023

요가 5년

마음이 아니라 몸에 집중하는 일, 그러면서 마음을 이어가는 일, 그리고 그 마음에 그 몸을 일치시키는 일,

그래서 요가는 아직도 나의 최고의 투두리스트이다.


삶의 애환은 대략 마음을 쓰는 것에 매여있는 법이다. 남의 의중을 신경 쓰고 알아야 되고 그러다 보면 그 집단이 제일 잘하는 것이 일이 아니라 '짓'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짓'은 티가 나는 게 아니라 그냥 공허하며 쉽게 보인다. '짓'은 속이 비어있기 때문에. 그게 사물이든 사람이든.


인연과 안면의 차이가 있듯이 '일(do good)'과 '짓(thing)'도 차이도 있다. 앞에서 요가를 '일'이라 표현한 이유는 '짓'과 구별하기 위함이다. 삶의 무게에 짓누르고, 삶에 짓이기고 몸부림치는 짓들의 일상에서 그래도 나 하나만의 일은 있어야 숨 쉴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게 5년째 이어져온 요가이다.


요가는 혼자 할 수 있지만 요가를 가르치는 것은 혼자 할 수 없다. 요가를 배우는 것 또한 혼자 할 수 없고 같이 모여해야 된다. 요즘 남과 시선을 같이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다시 말해 내가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다. 나에게 잘할 수 있는 일은 몰라도, 잘하거나 잘하는 척하는 짓은 할 줄 모른다.


짓은 혼자 할 필요가 없다. 여럿이 있을 때 타인의 시선에 고정되어 척하는 것이 짓이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땐 짓을 하지 않고, 스스로 일을 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또한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땐 불가능하고 온전히 완전 혼자이어야 가능한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아마 직업적 선택의 영역에서 보면 아주 협소적이고 제한적인 일의 영역일 것이다. 대부분의 생계는 타인들의 시선과 같이 해야만 하는 짓들이 대부분이고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하고 먹고산다.


짓은 힘이 들지만 일은 힘을 빼야 한다. 힘쓰는 짓보다 힘 빼는 일이 더 힘들다. 그렇지만 짓보다 일을 더 추구하려는 이유는 바로 삶의 의미와 가치가 짓에는 없고 일에는 있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따라가는 대로, 어쩌면 요가가 추구하는 몸과 마음! 흐름의 일치 아닐까 싶다.


혼자만의 요가가 반드시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동작이 맞나 하는 의구심을 자꾸 곱씹게 된다. 그러나 혼자는 사색이 있다. 괜찮은 사색에서 몸을 바로잡아 보려 한다. '요가 5년'이 '요가 1년'보다 더 쉽게 쓰지만 쉽게 쓰는 글이 어렵게 써지는 글보다 더 힘들다.


짓을 하는 곳에는 어쩌면 오래 머물러야 하며 몇십 년이 지나도 그곳은 안면들과 같이 지낼 뿐 인연으로 승화하지는 않는다. 일을 하는 곳에는 아마 대략 오래 머물지를 못하지만 일을 같이한 인연들은 아무리 짧은 기간이어도 인연으로 남는다. 나에게 요가를 선물해 준 구루 또한 나의 가슴속 영원한 몇 안 되는 인연이다.


내 곁에서 꾸준히 머무르게 한 5년의 요가! 역시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오래 할 수 있고 어쩌면 잘할 수 있는, 그것이 나의 일과 나의 마음인 것 같다. 그래서 그저 몸짓이 아닌 마음과 일치된 사랑의 요가는 여전히 멀다. 이번엔 사랑의 요가를 쓰고 싶다고 했으나 5년째도 나의 삶 속에서 승화하지는 못했다.


거창하지 않고 활짝 열린 혼자 영역인 요가,

커피와 함께 읽는 책들의 즐거움과 때론 글한 줄,

혼자 또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


부질없는 짓(thing)들의 무리에서 이탈하여, 일(do good)들의 친근한 벗들과 거창하지 않고 사소한 일상의 행복을 실천하는 일이 사랑으로 가는 요가로의 합류 아닌가 싶다.


'그 리스트는 흉터가 아니라 근육이야. 누가 날 해쳐서 남은 흔적이 아니라 내가 사용해서 남은 흔적이야'

(나주에 대하여 中에서, 김화진)


-2023년 1월 마지막 월요일, 외딴 스타벅스에서 쓰다.

작가의 이전글 해방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