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점은 그런 흑백 이분법의 세계를 그려내려고 하지 않는다. 각자 마땅히 해야 할 자신의 일을 하는데도 맞닥뜨리게 되는 죄와 벌의 오류를 찬찬히 드러내 보이고 있을 뿐이다'
(백조와 박쥐, 히가시노게이고, 옮긴이의 말 중에서)
하루키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다는 게이고 작품은 알 수 있듯이 추리작품만은 아니기에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게이고의 작품형식은 대개 일단 가족사의 블록에서 하나하나 확장해 꼬여있는 심리의 실타래를 형사나 수사관을 통해 객관적 사실을 , 그리고 작가의 진중한 개입으로 주관적 의견으로 전개된다.
추리의 형식을 빌려 문학의 장르를 승화시킨 영역이라 인간의 본성에 기인한 명료하지 않지만 그 현실적 주제의 고뇌 또한 뚜렷이 전달하고 있다. 나는 게이고의 작품을 단순흥미의 결말을 추구하면서 접근하지는 않는다.(또한 추리만을 쓰는 작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말을 봐도 뚜렷한 통쾌함보다는 안타까움이 깊어지는 작품이 더 많다. 이러한 죄와 벌의 단적인 균형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몫은 언제나 독자이다. 좋은 작품이란 작가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자연스레 독자의 역할을 이끌어 내는 작품이다. 그러한 균형을 이룬 전개와 결말의 구조가 내용과 별개로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문학에서 작가의 연륜이란 대략 수십 년의 작품에서 보면 분명히 변화가 감지된다.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월의 흐름에 글의 방향성흐름을 지탱하면서 의견이나 표현의 변화인데 그런데 자칫하다간 문학 등 예술분야에서 어설픈 변화는 쇠락으로 흐를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문학은 작가의 사회적 공명(共鳴)이 1차적으로 평론가에게 진동으로 전달되고, 그 후 2차적으로 현명한 독자들의 판단으로 이어진 후, 3차적으로 일반적 대중으로 전파된다. 이러한 메커니즘의 비단 문학의 영역만은 아니지만 글이란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이고 문학은 그 글의 적의(適宜)를 철저히 의존한 영역이다.
글(文)은 말(言)과 다르다. 따라서 혼과 정성을 다하지만 때론 글 사이로 새 나오는 이질적 거리감으로 표출되는 난해함을 극복하기 위해선, 이 3가지의 문학적 메커니즘을 신중하면서도 작가만의 고유함을 상실하지 않는 사명과 기본에 충실해야만 사회적 낙담(落膽)과 외면에 익숙한 3단계 마지막 대중까지 진심이 전달된다.
게이고의 35주년 작품 '백조와 박쥐'는 게이고의 충실한 역할론이 촘촘히 배어있는 소설이다. 제목에서 게이고가 말하려는 주제가 다 투영된 작품이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를 그 흔한 반전을 통해 묘사하며 독자를 쥐락펴락하지만 독자는 작가의 흐름에 이끌리지 않고 독자의 지조와 자존을 지키게 해 준다.
게이고의 결말이 결국 작가의 독단적 결말이라 하더라도 독자를 낙심하거나 책을 읽다 말고 덮어버리는 희피하지 않게 만드는 그 장본인도 바로 게이고 그 자신이다. 작가와 독자의 서로의 거리를 지키면서 서로의 주관을 침해하지 않고 결국 죄와 벌, 정의와 공정, 양심과 인정 등의 균형의 번뇌를 독자에게 안긴다.
작가의 그 진심의 핵심은 두 번째 단계인 독자들이 거의 판단해 준다. 일명 마니아층과 문학메커니즘의 2번째 독자는 별개의 것이다. 게이고는 어쩜 마니아층보다 사회적 아픔과 고뇌 쉽지만은 않은 상실된 휴머니즘을 상기시키는 대중적층의 독자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게이고는, 많은 책을 읽지 않아도 문학에 서툴러도 문학의 추구성에 자신의 가치를 녹이게 만든후, 3번째 대중을 먼저 설득시키고 2번째 독자를 감동시키는 그가 추구하는 반전의 메커니즘을 추구하는 작가가 아닐까? 아니면 아예 고정관념의 메커니즘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새로운 독자영역을 따로 추구하는 작가는 아닐까?
' 빛과 그림자, 낮과 밤, 마치 백조와 박쥐가 함께 하늘을 나는 듯한 얘기잖아요'
게이고는 이 두 선명한 명암을 대비하여 독자에게 혼란대신 항상 곧 맞닥뜨리게 되는 우리의 선명하고 뚜렷한 삶이 현혹되지 않게 진심 어린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전개를 택하지 않았나 싶다. 신칸센에서 미레이의 손을 잡은 가즈마의 침묵의 대목에서 무언가를 똑같이 이해하는 것 그것을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다.
세상이란 결국 선명함과 뚜렷함을 알 수는 없지만, 누구든지 삶 속에 녹아있는 그 진심의 해답을 가꾸어가는, 그것은 세상에 내버려진 삶의 가치를 조각조각 모아 완성해 나가는 것이며, 스핑크스 수수께끼의 낮과 밤처럼 끝없는 반복된 명암을 특정하고 경계하지 않는 그의 진심 어린 35주년 작품을 게이고의 언어로 느껴본다.
- 2023년 3월 쓰다, 여전히 쇠락을 맞닥뜨리지 않게 할 그의 헌신을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