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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pode Dec 13. 2022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

[East]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



어느 봄날, 우리는 화단의 꽃을 바라보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이 마당을 비스듬히 비추고, 카누 커피의 농도가 완벽하다. 더할나위 없는 순간이다. 집을 나서기 전 아침의 커피 한잔은 엄마와 나의 오래된 행사같은 일이다. 어릴 적 부터 볕이 좋은 날이면 무언가 한 잔씩 들고 현관을 나서던 것이, 내가 서울로 올라간 후로는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아침에 반드시 거치는 일과가 되었다. 우리는 기분 좋은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나는 그 와중에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서, 힘차게 피어난 노란 꽃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색이 유난히 예쁘다. 이정도 타이밍이 되면 엄마가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힘들때가 더 많지만, 인생은 참 선물같은 거야. 안그러니?”


밀란 쿤데라 라는 소설가를, 그의 작품들 중에서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소설을 좋아하기로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철학적인 느낌을 한껏 풍기는 제목과 작가명이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한번쯤 그럴때가 있지 않나, ‘나도 얼른 저 소설을 읽어 본 사람이 되고 싶다' 하는 마음. 그러나 그런 종류의 가벼운 결심이 대개 그렇듯, 실제로는 책을 구매하는데 까지도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입대 후 조금의 여유가 생긴 군생활 중반 쯤에야 천안의 한 중고 서점을 찾았고, 책장에 나란히 꽂힌 세 권 중 너무 깨끗하지 않아 마음에 들었던 한 권을 집어들었다. 번번이 품절이 되어있어 이미 두어번의 방문을 빈 손으로 돌아간 이후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는 그 책을 끝까지 읽었고, 끝내 그 소설과 소설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어느 날, 집으로 가져갈 수고를 들일 만큼 좋아하는 책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리스트의 상단에 위치했다. 좋아하는 책들을 만날 때면 대개 그러하듯, 의도치않게 바닥에 주저앉아 접어둔 페이지들을 연신 펼쳐보느라 필요 이상의 시간을 들이게 되었다. 물론 남는 것이 시간이던 당시로서 그것이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이지 태평한 시절이었던 것이다.


나는 그날의 공기를 이상하리만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초여름 저녁, 그 즈음이면 아무도 찾지 않는 생활관 한켠의 책상 네칸 짜리 간이 독서실, 해질녘의 노을이 간만에 사람의 손이 닿은 책장의 한 모서리로부터 춤추듯 날아오르는 먼지를 비추고, 몰래 오른쪽 귀에 꽂아둔 이어폰에서는 언니네 이발관의 ‘실락원’ 이 흐른다. 나는 잠시 시간도 잊은 채 정신없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뒤적이는 데 몰두했다.


마음껏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마침내 다음 책으로 넘어가려던 차에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표지 뒤편 첫 페이지의 짧은 글귀에 눈이 갔다. 꾹꾹 눌러 쓴 글씨와 사뿐히 내려앉은 마침표. 받을 사람이 좋아할만한 책을 신중히 고르고, 정성스레 첫 페이지에 전하고 싶은 말을 적어내리는 누군가의 모습이 자연히 그려졌다. 이처럼 훌륭한 선물을 왜 중고서점에 팔아 넘겨야했을까. 나는 이런 종류의 이미지에 상당히 유난스러운 편이다.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다가도, 어쩌다 그럴듯한 장면을 한번 상상하고 나면 그 일에 관해서는 괜스레 마음이 요동치곤 하는 것이다.


책을 선물할 때면 꼭 마음에 드는 글귀를 한 문장 써서 선물하곤 하던 엄마가 생각났다. 조금 전 떠올린 누군가의 모습 역시 어릴적 종종 보았던 엄마의 모습일지 모른다. 우리 엄마 말고도 이런 사람이 세상에는 꽤 있구나.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엄마에게 선물 받은 책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여러 갈래로 뻗어나는 생각들에 집중이 흩어진 김에 나머지 책 정리를 마무리 할 생각으로 책을 덮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번뜩 스치는 선명한 예감에 다시 책을 펼쳐 첫 페이지를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무언가 시작할때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이미 변화된거야.’ from 숙 2001. 2.3


분명한 엄마의 글씨체와 닉네임이다. 십수년 전 겨울, 엄마의 손을 떠난 선물이 기막히게도 나에게 돌아왔던 것이다.


경상북도 소재 작은 도시의 어느 가정집 책장에 응당 꽂혀있어야 했을 책은 도대체 어떤 경로를 거쳐 머리를 박박 자른 시기의 나에게 돌아왔을까. 때로 삶이 필요 이상으로 가혹하게 느껴지는 날이면 나는 잠에 들기 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굳이 꺼내어 첫 페이지를 펼쳐보고는 한다. 마치 소중한 것을 넣어둔 외투 주머니에 자꾸만 손을 넣어보듯, 짧은 인생에 일어난 가장 또렷한 기적의 증거를 거듭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잠에 드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일 마저 난해한 숙제처럼 느껴지던 밤들도 어떻게든 아침에게 자리를 내어주곤 한다.


‘요행’이라는 단어의 어딘가 불온한 어감과는 별개로, 작은 기적들을 소중히 여기고 감지하는 일은 삶을 버텨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주머니 속을 더듬어 그것의 생김새를 다시 한번 떠올리고, 잠시나마 훈훈해진 주머니의 온기를 느끼는 일, 그리고 혹여 발밑을 굴러 지나칠지 모를 또다른 반짝이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일은, 언제나 의도치 않게 길고 험난해지는 여정을 조금은 견딜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지 모른다. 요컨대 기적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또 언제 어떤 일이 선물처럼 삶에 찾아올 지 모르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인생은 그리 나쁘지 않은 것일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2 년이 지나도록 매일 아침 담배를 피우는 골목길. 항상 마주보던 담벼락 아래로 못보던 꽃 한 송이가 피어올랐다. 무채색 풍경 한켠에 이질적인 색을 더하는 작은 존재, 꼭 그날 엄마와 함께 바라보았던 것과 같은 노란 빛의 민들레였다. 꽃이라는 것들은 정말이지 지치지도 않고 매년 그림자를 더해가는 얼굴들에게 잘도 선뜻 인사를 건네오는 것이다. 그래봤자 꽃인데 뭐. 모른척 뒤 돌아섰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멋쩍은 눈인사를 건낸다. 얼핏 보아도 봉오리에서 터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말끔한 꽃잎들은 그런것 쯤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듯 해맑게 반짝이고 있다.


간만에 카메라에 새 필름을 채워 무언가를 찍어야 하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기대할 것 없는 하루일지라도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 시작이라는 생각을 한다. 골목을 비추는 햇살이 따스하고, 대기는 어느새 봄 기운을 가득 품고 있다. 방금의 일이 아니었다면 반바지를 꺼낼쯤이 되어서야 봄이 언제 다 지나가 버렸느냐며 한탄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 끝없이 후회를 늘어놓는 인간이란 지루할 뿐이다.


어느 봄날의 따스한 햇살 아래 피어오르던 연기와 찬란한 빛을 내던 또 다른 노란 꽃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그 날 엄마가 나에게 선물했던 문장과 기적처럼 나에게 돌아온 책 한권, 그리고 앞으로 나를 거쳐갈 수많은 더할나위 없는 순간들을 기대해 본다.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결코 주어지지 않을 선물과 같은 순간들. 나는 이것들을 꽉 움켜쥔 채 살아가려 한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첫 장면. 이 세상의 어느 곳이던 날아들 수 있었던 깃털 하나가 마침 포레스트 검프의 발 밑에 도착하고, 그는 익숙한 듯 그것을 책 속에 소중히 보관한다. 아마도 그의 집에는 기적의 증거들이 가득할테다. 힘든 날들이 더 많은 인생은 어떻게 선물이 되는가.



Fin.

From the E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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