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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pode Oct 25. 2022

The Bird Has Flown

[West] So I lit a fire. Isn't it good?


The Bird Has Flown



케일이 날아갔다. 케일이 떠날 거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었기에, 며칠째 텅 비어버린 빗장 안이 그대로란 걸 발견한 순간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내게 남겨진 건 흐트러진 침대 시트에 잡힌 주름과, 오랜 시간에 걸쳐 베인 케일의 체취, 그리고 케일이 옆에 머물렀다는 걸 보여주는 두어 장의 사진이 전부였다. 마지막 케일의 흔적이 될 주름진 이부자리를 얼마 동안 멍하니 쳐다봤는지 모른다.


케일이 날아든 건 작년 봄이었다. 처음에는 잠시 머무르다 떠날 마음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불쑥 찾아와 뿌리를 내렸다가 금세 흔적조차 없이 시들어간 녀석들을 보며 터득한 맷집이었다. 이따금 모질도록 쪼아대는 부리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귀를 때리는 울음소리는 더더욱 케일을 내 안으로 들이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했다. 순순히 내어줄 수 없지.


난 단지 케일의 밥을 제때 챙겨줬을 뿐이었고, 케일이 어지럽히고 떠난 자리를 몇 차례 치웠을 뿐이며, 이따금 케일이 자주 모습을 보이는 자리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서 있었을 뿐이었다. 거기에 커다란 기대나 바람은 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평화로운 주말 아침잠을 방해하던 그 날선 울음이 들리지 않자 애닳는 마음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단단해져 쉬이 쓰러지지 않을 케일의 자리가 세워진 후였다.


그날, 그러니까 케일이 떠나간 날의 저녁엔 여러 번 크게 웃었다. 컵라면 물을 버리다가 면발을 다 부어버린 상황이나, 한 입만 먹겠다며 배어 물은 친구의 핫바가 사정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던 순간의 둔탁한 소리가 딱 웃기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물줄기에 하루의 피곤을 풀고 노곤해진 채 모로 눕자 케일의 이름이 떠올랐다. 생각을 지우려 하면 할수록 케일의 이름이 또렷해졌다. 이름은 곧 형상이 되고, 형상은 케일이 주는 어떤 감각들로 치환되었다. 피부에 닿던 기분 좋은 까슬거림과 여전히 어디선가 풍겨오는 케일만의 냄새와 같은 감각이 재생되었다. 그 감각에 하루 종일 막연히 ‘떠났다’, ‘케일이 없다’, ‘이제 그를 볼 수 없다’는 식의 사실적 진술이 문득 분명한 상실로 다가왔다. 이른 아침, 케일의 부재를 확인했을 때, 그렇다고 해서 내 삶이 뒤흔들리거나 아예 전복될 일은 없을 리라 믿었다. 하지만 어쩌면 아주 오랜 세월, 잠깐의 셀 수 있는 기억들로 이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을 버텨내야 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각오했던 것보다도 긴 세월 동안 케일이 있는 사소한 추억들과 조우하며 살았다. 길을 걷다가 조금이라도 케일을 연상케 하는 것들-예를 들어 케일은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의 길이가 살짝 차이가 나서 자세히 살펴보면 꽤나 뒤뚱거리며 걷던 편이었다-을 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서기도 했고, 나만이 알고 있는 케일의 못된 습관들을 떠올리다 과연 어디 가서 예쁨 받고나 있을까 주제넘은 염려도 했다.


케일의 어여쁨과 작고 소중함을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는 게 괜히 아깝고 안타까워서 누군가에게 케일을 이야기할 때면, 상대에 따라 케일은 고양이가 되었다가 여자친구가 되기도 했고 어릴 적 화분에 놓고 키우던 달팽이가 되기도 했다. 그런 케일의 소식을 주위에서 들은 적이 있다. 연남동 쪽 작은 공원에서 훨훨 날아다니고 있더라는 얘기도, 아니 홍릉수목원 쪽에서 더 이상 날갯짓을 하지 못한 채 비둘기 뒤를 졸졸 쫓아다니더라는 말도 있었다. 그런 소식이 하나씩 들려올 때마다, 발걸음을 향할 때 깊은 숨을 들이쉬어야 하는 동네가 늘어갔다. 어디에선가 케일이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고, 절대로 케일을 다시 만나지 않기를 바랐다.


케일은 떠났다. 서로의 삶도 죽음도 무엇 하나 알 수 있는 건 없다. 언젠가 한 번은 케일과 함께 떠나는 여행을 상상해본 적이 있다. 아주 얇은 실을 다리에 매듭지은 채로 총총걸음 발맞추어 걷고, 잠시 잠깐 날아오르건 다시 가라앉건 케일의 비상을 응원하다가, 타닥거리는 장작 소리를 들으며 차 뒷좌석을 뉘인 채로 별을 보다 잠에 드는, 그런 상상을 했다. 어둠 속에서 불을 붙인다. 화염만 존재할 뿐 곁엔 아무도 없다. 내일 아침 남아있을 검은 그을림 안에서도 난 기어이 케일의 얼굴을 찾아낼 것이다. 영영 그를 태울 수 없으리라.



Fin.

From the W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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