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룬 구시가, 작별 (염개미 편) 21
추일서정 (김광균)
낙엽(落葉)은 폴란드 망명정부(亡命政府)의 지폐(紙幣)
포화(砲火)에 이지러진
도룬 시(市)의 가을 하늘을 생각게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瀑布)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포플라 나무의 근골(筋骨) 사이로
공장의 지붕은 흰 이빨을 드러내인 채
한 가닥 구부러진 철책(鐵柵)이 바람에 나부끼고
그 위에 셀로판지로 만든 구름이 하나.
자욱한 풀벌레 소리 발길로 차며
호올로 황량(荒凉)한 생각 버릴 곳 없어
허공에 띄우는 돌팔매 하나
. . . . . . .
전문(FULL TEXT)은 아니다. 염개미에게 토룬은 '중세 컨셉트 관광도시 토룬'보다 이 시의 '도룬 시'가 먼저였다. 고딩시절 가을의 황량한 풍경을 잘 표현한 모더니즘의 대표시라고 배웠던 시를 마흔 넘어 다시 읽었을 때의 정서를 잊을 수 없다. 포화에 이지러져 흰 이빨처럼 보이는 근골만 남아 힘없이 나부끼는 폐허. 게다가 쓸모를 다 하고 나무에서 떨려나간 낙엽과 휴지조각이나 다를 바 없는 '망명정부의 지폐.' 굳이 풀벌레 소리마저 발로 차버릴 정도로 '황량한 생각'이라고 못박지 않아도 이보다 쓸쓸하고 적막하며 메마른 늦가을이 또 있을까. 마흔 즈음 내게 시의 '도룬'은 어쩐지 다 타버린 꽁초 연기 한 줄기 뱉으며 걷는 지치고 옹색한 사내의 구두 끝에 달라붙는 낙엽 같은 도시였다. 당시 나의 정서와 생활 기반은 시의 '셀로판지 구름'처럼 얄팍하고 비루하기 그지 없었고, 생활에 지쳐 예민하고 불안한 내면은 작은 일에도 쉽게 바스러지고 황폐해졌다. 보여주는 웃음 뒤에 숨은 내 알맹이는 사람들의 발길 끊어진 겨울날, 무수한 발자국만 어지러이 남은 비수기의 해변 모래사장 같다고도 생각했었다. 돌팔매질을 해서라도 휘적휘적 벗어나 볼 염 조차 가지지도 못하였었다, 그 때는. 스산하고 적막하고 한없이 건조한 늦가을 낙엽의 정서를 읽으며, 폴란드를 가게 되면 내게 토룬은 선택 아닌 필수 여행지가 되겠구나, 생각했었다.
글이 아닌 직접 와서 다녀본 토룬은 낯선 이에게 무표정한 채 뚱하거나, 상업적인 미소를 보여주거나, 가끔은 호기심 어린 눈을 깜빡이기도 하였지만, 온통 자유로웠다. 전란의 포화 감도는 어수선한 토룬은 당연히 있을 리 없었고, 적막하고 쓸쓸하며 메마른 토룬 역시 없었다. 작은 규모에 적당히 북적이고 적당히 속물스럽지만, 그 이상 활기차고 자유로운 관광도시 토룬만 있었다. '도룬' 시에 이입되었던 나의 정서에 공명할 길 없어 좀 허탈하기는 하였어도, 활기차고 긍정적인 장삿속을 보이는 토룬을 자유롭게 걷는 연짱이를 보면서, 나 역시 발자국만 어지럽게 남은 겨울 모래사장에서 벗어나려고 휘적휘적 열심히도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자유로운 아이의 뒤를 따라 걸어 다녔다' 는 토룬 뿐 아니라 폴란드 여행 전체를 관통하는 내 정서이기도 하였다. 내 삶 전체를 가로지르는 바람이라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나의 아이처럼, 활기찬 토룬처럼, 몹시 자유롭고 싶었다.
그런 중세도시 토룬을 떠나는 날이었다. 진득한 아쉬움이 고여들지만 남은 일정이 있으니.
그만 이 번 여정의 마지막 목적지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토룬 중앙역으로 환승없이 가는 버스정류장은 숙소에서 그리 가깝지 않았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여러 번 횡단보도를 건넌 뒤 겨우 도착하여, 숨 돌릴 새도 없이 버스를 탄 것 까지는 문제 없었으나, 내려야 하는 중앙역을 지나치고 말았다. 중앙역 반대편을 보며 서 있어서 내릴 역을 놓친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옆에 서 있던 동승객 오빠가 "중앙역 가는 거야? 저건데," 라고. 알려주신 건 참 고맙지만 그걸 지금 알려주시면.
동승객 오빠가 알려준 토룬역까지 이어지는 공원 지름길은 구글맵이나 약도야데에도 나오지 않는 길이었다. 게다가 공원길은 눈이 녹아 질퍽해진 진흙길이어서 연짱이도 나도 들어갔다 다시 나오느라 고생 많이 하였다. 지름길을 포기하고, 보행로 드문드문한 길을 다시 되짚어 토룬 중앙역으로 오는 길은 험난하였지만, 폴란드 운전자들은 차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우리를 충분히 배려해주었다. 나와 연짱이가 횡단보도를 건너도록 일부러 멈춰주거나, 넌지시 기다려주거나, 보도로 다니라고 여유롭게 손짓해주었다. 생각해보면 폴란드 어느 도시에서든, 자신의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든 버스,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 운전자든, 운전자들 열 중 아홉은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를 기다려주거나, 조금 멀리서 걸어오더라도 횡단보도를 건널 것으로 보이는 보행자가 있으면 멈춰서서 보행자가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나와 연짱이는 그게 고마워서 건너면서 꾸벅 인사를. 그런 작은 것들이 하나 하나 쌓여 폴란드라는 나라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만들어주었던 것이겠지.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달방식이 무뚝뚝해서 그렇지, 뭐 물어보면 도와주려고 애쓰고 보답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 사람들인데, 어쩐지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유의 무표정 덕분에 그리 긍정적인 인상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다. 적극적이고 선량한 사람들이 사는 좋은 우리나란데.
폴란드는 우리나라보다 국민소득은 낮을 망정 마음 씀씀이나 여유까지 우리보다 적은 나라는 결코 아니었다. 여유는 넓은 시야를 확보해준다. 폴란드와 폴란드 국민들은 물론 내 나라와 내가 넓은 시야를 갖고 21세기 전체를 여유롭고 우아하게 영위하기를 마음 깊이 바랐다.
온갖 고생을 다 하며 도착한 아담하고 아담한 토룬 중앙역.
"엄마, 아까 공원 진흙길에서 엄마가 왼쪽이 지름길이 맞는 것 같다고 했는데, 내가 많이 성질내고 오른쪽이라고 고집부려서 미안해. 나는 그 오빠가 오른쪽이라고 말해줬다고 생각했거든."
"그런 것 같더라. 네가 힘들어서 그렇지 엄마는 괜찮아. 엄마였으면 그 공원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을텐데 뭐."
토룬 중앙역에 도착하자마자, 연짱이는 힘들어 땀 범벅이 된 풀 죽은 얼굴로 말하였다. 아이는 잘못을 인정하고 수습할 수 있을 만큼 컸고, 나 역시 아직까지는 판단력 흐릴 만큼 늙지는 않았으니 당연히 괜찮다.
그단스크 행 기차를 탑승하기 위해 언제나처럼 20분 이상 일찍 플랫폼으로 나왔지만, 기차가 20분 연착되는 바람에 오들오들 떨며 오래 오래 기다렸다는 슬픈 사실이 숨어 있는 토룬 플랫폼.
여행 중에는 늘 긴장을 하기 때문에 잘 몰랐는데, 작긴 작구나. 보이는 것이 전부인 복잡할 것 하나 없는 토룬 역이었다.
잘 있어요, '도룬.'
폴란드 여느 도시들보다 조금은 힘겹게 토룬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