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룬 구시가, 작별 (연짱이 편) 20
동유럽의 눅눅하고 찬 겨울비는 중세 도시 토룬 역시 비껴가지 못하였다. 언짢은 날이라고 건너 뛰어지는 삶도 일상도 없듯, 맑은 날도 흐린 날도 여행자의 하루이기는 마찬가지. 차분히 구시가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토룬 구시가 스타로브카(STAROWKA)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만큼 차분하고 구석구석
아름다웠다.
밤 아니다. 저녁 아니다. 날이 모옵시 흐린 아침이다.
토룬 시청사.
어느 면에서 어떤 각도로 찍었는가에 따라 다른 건물로 보인다. 전면 중앙 뾰족 탑 장식이 있는 아치 입구로 들어가면 시청사 박물관이 있다.
뒤로 성 세례 요한 대성당이 보이는 중심 광장 쪽 거리 한 켠에 웬 당나귀가. 사실 이 당나귀에게는 슬프고 무섭고 소름끼치는 역사가 있다.
금속으로 된 당나귀는 중세에 죄인을 고문할 때 썼던 도구였다. 당나귀 등이 지금은 그냥 금속이지만, 예전에는 날카로운 금속이나 유리를 박아놓고 죄수나 규율을 따르지 않는 경비병을 당나귀 등에 앉혀 고통을 주었는데, 그 죄가 중하면 발에 무거운 물건을 매달거나 돌로 눌러 고통을 키웠다고. 사람들은 만지면서 사진 찍고 그러던데 염개미와 연짱이는 차마 만지지 못했다. 중세시대에는 현재와 같은 사형 집행 개념이 없었다. 징벌 방법은 그야말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어서 해당 죄인이 죽을 때까지 고문에 고문을 하였다고 들었다. 종교재판에 회부되는 일이 흔했던데다 신분제 사회였던 중세시대에 이 당나귀에 앉았던 사람들이 과연 진짜 죄인 뿐이었겠나. 그런 생각을 하니 너무 괴롭고 무섭고 소름끼쳐서.
폴란드와 토룬의 자랑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이 사진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연짱이가 사진을 찍으려 동상에 다가갔을 때 웬 어린이가 그 앞에 멍하니 서 있었는데, 사진을 찍을 것이라는 제스처를 하니 아이는 얼른 동상 뒤편에 숨었다. 그러니까 이 사진에는 코페르니쿠스, 모자를 쓴 여인, 그리고 보이지 않는 폴란드 어린이가 들어 있는 셈이다. 뒤편으로 숨은 어린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아이는 씨익, 웃어주었다. 나와 연짱이가 폴란드를 좋아하게 된 많은 이유 중에는 뭔가 츤데레스러운 폴란드 어린이들과 사람들이 나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드러내놓고 동양인을 경시하는 시선이나 불친절 역시 경험하지 않은 바는 아니었지만, 염개미와 연짱이가 여행 중 만난 폴란드 사람들은 비교적 합리적이고 침착하였으며 유쾌하였다. 안타깝게도 2020년 하반기 이후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한 동양인 혐오에서 폴란드인들이 얼마나 자유로울지는 아직 겪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만.
시청사 앞 바이올린 켜는 청년과 개구리 분수.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비스와 강에 개구리 떼가 몰려와서 토룬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혔는데, 사공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개구리 떼를 토룬에서 쫓아주었다고. 또한 분수에 장식된 개구리 등을 쓰다듬으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떼' 에 대한 공포를 행복을 가져다 주는 힘으로 승화시킨 전설이랄까. '떼' 혹은 '무리' 짓는 행위에서 얻어진 힘이 재난이나 공포 아닌 행복을 짓는 힘이기를, 분수를 보며 마음깊이 바랐다.
구시가 광장 주변 행운의 강아지 필루스(FILUŚ).
폴란드의 유명한 풍자가이자 만화가였던 즈비그니에브 렝그렌(ZBIGNIEW LENGREN)의 만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필루스가 물고 있는 모자를 만지면 시험을 잘 보게 되고, 필루스 꼬리를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데, 나와 연짱이는 주인 모자를 물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가 귀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여 머리하고 귀만 쓰다듬어 주고 왔다. 연짱이더러 모자 만지라고 말해줄 것을.
작은 난쟁이 조형물이 구시가 곳곳에 있어 찾는 재미가 쏠쏠한 도시 브로츠와프(WROCŁAW)만큼은 아니지만, 토룬에도 잘 찾아보면 구시가 건물 곳곳에 작은 세라믹 조형물들이 놓여 있다.
안녕, 파란 곰돌이 님.
토룬 건물의 창문 틀이나 건물 벽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세라믹 조형물들은 중세 토룬 주민들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졌는데, 이 파란 곰돌이 님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건물의 용도 -- 카페 혹은 다른 유형의 상업적 용도 -- 를 광고하는 곰돌이 님인 듯.
시청사 앞 건물에서 발견한 세라믹 조형물.
이 건물에 식당과 생강빵 상점이 있었던 걸 생각해 보면 생강빵 요정인 것 같다. 사진 찍을 당시는 몰랐는데, 생강빵 요정이 앉아 있는 창문 틀의 창문에 맞은 편 시청사 시계탑이 비치고 있었네. 각도를 생각해서 지은 것일까 아니면 우연의 산물일까.
사진 찍을 때는 작아서 안 보여 몰랐는데 만년필 브랜드 '파*' 광고 모델이셨네.
우수한 정통성, 원모습으로 보존된 문화,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가진 역사적 자산으로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 목록에 등재된 중세 도시 토룬. 뭔가 우주 대스타 토룬, 이런 느낌이어서 연짱이와 엄청 웃었다. 어필하는 모습도 귀여운 토룬.
시청사 입구 위 토룬을 상징하는 천사 문장.
토룬 천사는 반쯤 열린 성 문 위 세 개의 타워가 새겨진 방패를 들고 있다. 이 천사 문장은 독일(튜튼)기사단이 처음 토룬을 세웠던 1233년 처음부터 토룬 문장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1454년 토룬은 튜튼기사단과 행정적 관계를 단절하였고, 그 후 폴란드공화국에 편입, 합병되고 13년 전쟁을 거치면서 튜튼기사단 시절에 쓰던 문장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문장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470년 천사가 있는 문장이 처음 쓰였는데, 오래 지속되어 토룬에 큰 부담을 주었던 전쟁을 기억하는 토룬 주민들에게 천사 문장은 신성한 도움에 호소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워 보인다. 토룬 천사는 두 번의 세계대전 동안에도 토룬을 지켰으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다가 다행히도 1991년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와, 천사의 보살핌을 받는 도시라니.
구시가 시청사 안뜰.
사진 오른쪽에 티켓 판매소(KASA)가 있고 사진 정면에 시청사 박물관이 있다.
시청사 건물의 창문 틀을 지키는 세라믹 조형물들.
중세 토룬 주민들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 의복이나 문화를 알 수 있다. 이 작은 조형물들은 관광객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토룬의 예술가들이 2007년부터 만들기 시작하였다고.조형물들은 '예수 수난' 을 그린 15세기 중세 그림 속 토룬 주민들의 의복 문화와 습관을 참조하여 제작되었다. 사진 속 시청사 건물의 창문 틀 뿐 아니라 포드무르나(PODMURNA) 거리 곳곳의 건물 벽에서 튜튼 기사,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만든 조형물들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독서에 몰두한 모습의 조형물도 있으며, 슈치트나 거리에서는 한 무리의 천사 역시 발견할 수 있다고. 염개미는 눈썰미가 변변찮아서인지 잘 못 찾겠더라.
중세 토룬의 복식을 보여주는 세라믹 조형물. 직업이나 신분을 알 수 있을텐데.
중세 토룬 아낙네의 모습이려나. 어쩐지 평민 아낙은 아니었을 것 같다.
중세 토룬 주민들은 깃이 목을 덮는 의복을 선호하였나 봄.
중세 토룬 주민들은 깃이 목을 덮는 의복과 함께 빵떡 모자 역시 선호하였나 봄.
궁금하였던 시청사 탑으로.
구시가 전망 타워 입구는 티켓 판매소가 있는 시청사 안뜰에서 밖으로 나와야 있다. 전망 타워에서 토룬 전체를 조망하기에는 악천후에 가까운 날씨였지만, 여행자의 시간에는 '다음 번'이라는 미래의 기약이 들어있지 않은 걸. 하지만 좁은 굴 같은 계단을 열심히 올라간 우리의 첫 번째 관람 시도는 실패하였다. 우리가 구입한 티켓은 시청사 박물관 전용이며, 따라서 전망 타워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퇴짜를 맞아서. 티켓 판매소로 다시 돌아가 전망 타워 티켓만 따로 구매하여 올라갔더니, 티켓 검사원이 그제서야 웃으며 올려보내준다. 관람 티켓이 없으면 보여주지 않는 티켓 검사원 아줌마의 자본주의의 웃음. 당연한 것이겠지만.
시청사 건물도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시청사 건물은 달력을 나타내도록 건축되었다고. 탑은 일 년을, 네 개의 작은 포탑은 사계절을, 열 두 개의 큰 홀은 12개월에 해당하며, 52개의 작은 방은 1년의 주 수를 나타내고, 전체 365개의 창문은 일 년 365일을 상징한다.
시청사 전망 타워 올라가는 길에서 본 사진. 제 1차, 2차 세계대전으로 부서지기 전 1887년 시청사와 안뜰 모습이다. 그 때도 멋있었구나.
제 2차 세계대전으로 부서진 시청사 건물. 다른 사진에서는 훨씬 더 참담하다. 말그대로 몇 백 년을 지내온 유적을 한 번에 말아먹은 대규모 전쟁. 남의 나라 유적이지만 이토록 무너진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전쟁은 크든 작든 어떤 이유에서든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옛 토룬 시청사 모습을 담은 엽서. 1920년 이후, 그러니까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모습이다.
"와, 엄마, 이만큼 옛날에 제작된 엽서는 현재 물가 가치로 환산하기도 어려운 거 아니야? 옛날 우표수준이겠는데?"
2000년 복원된 시청사 모습.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5년 즈음부터 복원에 들어갔을텐데, 현대사에서도 부침이 많은 이 나라에서 2000년에 이만큼 복원한 것도 사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2012년 내가 보는 현재의 모습으로 완벽 복원. 연짱이는 눈썰미가 참 똑부러져서 이 사진을 보기 전 2000년 복원사진을 먼저 보았는데, 아, 지금 시청사 모습은 시계를 덧칠했고, 중간 중간 패턴들을 아마도 사료에 입각해서 복원했나 보네, 그랬다. 나는 두 사진을 번갈아 보고 나서 겨우 깨달은 건데, 연짱이는 여러 번 사진을 찍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2000년 사진 하나만 보고도 달라진 점을 단박에 알아보았다. 여윽시 눈썰미와 예술감각은 확실히 외탁한 -- 나 말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이모 -- 연짱이.
"엄마, 지난 번 루마니아 시비우 복음주의교회에서처럼 탑까지 안 가고 중간에 도망갈 생각은 버려. 계단에 있는 사진만 보고 가려면, 뭐하러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비싼 티켓 샀어. 내가 감시할거야, 엄마 오나, 안 오나."
"엄마 고소공포증도 있잖아, 연짱이."
"아, 엄마는 무슨 공포증이란 공포증은 다 갖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어."
그래도 연짱이 너 키우고, 여행을 가장한 극기훈련 부지런히 다니고 할 건 다 했다고.
경미하든 어쨌든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 시청사 탑 오르기는 고문이었다.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디 좁은데다, 발 아래가 훤히 보이는 90도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네 발로 기어서 울며 올라가고 울면서 내려왔다.
하지만.
와, 기어 올라갈 만한 가치가 있었다. 구시가 전체와 구시가 너머 비스와 강까지 탁 트인 시원한 전망이 말도 못하게 멋졌다. 비바람이 거센데다 탑 꼭대기라서 연짱이는 카메라 보호하면서 사진 찍느라 고달펐지만, 나도 연짱이도 어마어마하구나, 입을 모은 풍경이었다. 흐린 날도 이 정돈데 맑은 날에는 얼마나 멋진 풍경일까.
정확히 구 시청사 맞은 편 풍경. 사진 중앙 노란 건물은 성령교회(HOLY SPIRIT CHURCH). 18세기 중반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세워졌으며, 폴란드 고전주의 주요 건축가인 에프라임 스흐로게르(EFFRAIM SCHROEGER)가 디자인하였다. 처음 건축 당시에는 탑이 없었는데, 19세기 말 추가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1945년 예수회가 인수할 때까지 개신교도들이 사용하였으며, 코페르니쿠스대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이 자주 찾는 이를테면 대학교회가 되었다.
염개미와 연짱이가 열심히 걸어다녔던 구시가 중심 거리. 사진 속 오른쪽 돔 지붕 뒤편 건물은 성모승천교회(THE CHURCH OF THE ASSUM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잘 보존된 고딕양식 건축물로 14세기 후반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에 의해 건축되었다.
왼쪽 높은 건물은 성 세례 요한 성당(THE BAPTIST AND ST JOHN THE EVANGELIST CATHEDRAL). 정말 눈이 호강한다고 생각했던 풍경이었다.
옆으로 비스와 강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토룬 중앙역은 다리 건너 비스와 강 너머에 있다. 사진이라서 그저 비가 내린 후인가 보다 싶고 평온해 보이지만,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더 둘러보고 싶어도 비바람이 너무 거세어서 거짓말이 아니라 날아갈 것 같았다. 너무 차가운 비바람 때문에 숨 쉬기도 힘들어서 연짱이에게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아,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길보다 훨씬 생고생길이었다.
따가운 비바람에 양 뺨 맞아가면서, 찬바람에 저절로 감기는 눈 억지로 떠가면서, 추위에 시달려 곱은 손가락호호, 불어가면서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고, 구시가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담아보겠다고 동당거렸는데. 고소공포증에 덜덜 떨리는 겁쟁이 다리를 간신히 갈무리해가며 힘들게 시청사 탑을 내려왔는데. 그 새 날이 개고 있었다. 그 잠깐 새. 불과 몇 분 새.
시계 위 쪽 공간이 토룬 구시가를 시원하게 내려다 볼 수 있는 시청사 탑이다. 그리고 그 위 언제 흐리고 비바람 몰아쳤는가 싶게 환히 갠 토룬 하늘. 온갖 고생을 하며 혼자 사진 다 찍은 연짱이가 사실 제일 안 됐다.
"엄마, 하늘이 맑게 갰어. 지금 전망 타워에서 구시가 풍경 보면 정말 드라마틱할거야. 더 늦으면 사람들 바글 바글할 수도 있어."
"엄마는 나머지 전시물들 봐야겠는데. 지불한 돈도 아깝고."
"2, 3층은 전부 근대, 현대 토룬 미술 전시품이거나 초상화가 대부분이잖아. 난 봐도 별 감흥이 없어, 엄마."
"엄마는 다시 한 번 더 전망 타워 못 가. 무서워서. 음, 그럼 일단 너는 전망 타워로 가서 사진 찍고 와. 30분 후 전망 타워 입구에서 만나자."
시청사 전망 타워에 혼자 올라갔던 연짱이는 '다른 나라, 다른 도시' 같다고 하였다. 루마니아 시비우 복음주의 성당 전망 타워에서 그랬듯, 여기서도 엄마가 맑은 날 올라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엄마는 네가 찍은 사진으로 만족할게.
"하지만 엄마, 루마니아 시비우 복음주의 성당 전망 타워에서 본 풍경이 더 아름다웠어. 교회 지붕 패턴하고 눈 덮힌 산 정경이 비교불가라고. 그래서 내가 안타까워하는거야."
보지 않았으니 비교할 수 없는 엄마는 네가 찍어온 맑게 갠 토룬 구시가 풍경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아가.
연짱이가 찍어온 맑은 날의 토룬 구시가 풍경은 숨이 턱, 막힐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욕심쟁이라서 이곳에는 그 사진들을 올리지 않기로 한다. 염개미 혼자 두고 두고 보렵니다.
토룬은 구시가 뿐 아니라 비스와 강변 구석 구석까지 연짱이가 가장 사랑한 도시였다. 그단스크 다음으로 체류기간이 길어서 토룬 소재 고딕성당들도 거의 다 돌아보았고, 생강빵 박물관 뿐 아니라 코페르니쿠스 박물관이며, 천문대, 지역사 박물관, 에스켄가문 박물관까지 고루 다 관람하였으며, 체류기간이 긴 만큼 지금껏 머물렀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에피소드도 많았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아쉬움이 없는 아이가 하루 하루 토룬에서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내내 아쉬워하였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연짱이가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곳도 이곳 토룬이었다.
"왜 그렇게 토룬이 좋았어?"
"마음에 들었던 크라쿠프 구시가보다 조금 더 작아서 아기자기하고, 더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이 좋았어. 중세 컨셉트를 전면에 내세운 관광 도시인데도 덜 북적거리고, 생강빵도 맛있고. 그리고 코페르니쿠스의 도시잖아. 나 나름 과학도야, 엄마."
연짱이의 대답은 연짱이가 낡은 중세의 냄새를 품은 옛 것은 좋지만 문명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는 없는 전형적인 21세기 아이여서 토룬이 좋았나 보다, 생각했던 나의 의표를 찔렀다. 천문학에 나름 관심이 많아서 오기 전부터 코페르니쿠스를 품은 도시 토룬을 궁금해하였던 연짱이였는데. 토룬은 김광균 시인의 '추일서정'의 도시이고 생강빵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코페르니쿠스의 도시인 것을 문학도인 염개미는 미처 헤아리지 못하였던 것이다. 기특, 연짱.
연짱이가 참 좋아하였던 단정하고 깨끗한 토룬 구시가 돌바닥, 아니 토룬 구시가 자체.
"엄마, 마지막으로 시청사 한 번 더 찍고. 코페르니쿠스 님도 안녕히 계세요. 엄마랑 손 잡고 겨울에 꼭 다시 만나요. 다시 오면 천문대는 가지 않고 코페르니쿠스 박물관만 한 번 더 갈거예요. 아, 그 때는 어, 토룬 주민들이 헌정하는 꽃 대신 저는 맛있는 생강빵 나눠드릴게요."
고마웠어요, 연짱이가 가장 사랑한 코페르니쿠스와 생강빵의 도시, 토룬.